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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여러 명소중 진도대교가 있습니다.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는 진도대교는 그 아래 물살이 거칠기로 이름난 울돌목이 있습니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으로 거대한 바다가 만나 큰 물살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또 한 곳의 명소, 전라 우수영 관광지가 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 해남팸투어 첫 방문지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조선 수군의 대승이 있었던 명량해전의 격전장이기도 하고요.
당사 조선 수군은 3도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순신을 대신한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무리한 공격으로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함선 대부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는 조선 수군은 함선은 13척, 다시 수군 통제사로 기용된 이순신은 육지전을 권하는 왕의 권고를 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 13척의 함선으로 왜군의 130여척의 함대를 격퇴하고 우리 수군의 재해권을 다시 찾았습니다.
바로 그 해전, 명량 해전의 장소가 진도대교 놓여있는 울돌목이었습니다.
명량해전 기념비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갑자기 강해진 비 바람이 가는 발걸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비바람을 가르고 걷게 만들었습니다.
비바람과 운무에 그 시야는 많이 가려졌지만 바다의 풍경은 멋졌습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는 세찬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밑을 흐르는 울돌목의 물은 잔잔했습니다.
세찬 흐름을 오늘은 쉬어 가는 듯 합니다.
날이 좋으면 이 곳에서 숭어잡기를 한다고 하는데요.
좋지 못한 날씨가 멋진 장면을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넓은 평야와 울돌목의 바다를 더 담았습니다.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화로웠습니다.
그 옛날 이곳에서 엄청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재미있게 생긴 구조물이 있었습니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적선을 물살이 거친 울돌목으로 유인하여 격퇴했습니다.
이 해협의 특성을 모르는 왜군은 조선 수군의 함포에 격퇴되고 울돌목의 물살에 서로가 부딪쳐 괴멸되었습니다.
이 구조물은 거대한 쇠사실로 반대편과 연결되어 적선의 진로를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돋보이는 장치라 해야겠습니다.
저 멀리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저 동상은 울돌목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결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도 이 자리에서 여러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력임을 알고 있었기에 생애 마지막 전투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 장군은 출전에 앞서 병사들에서 살려고 하면 죽을거이고, 죽으려 하면 살것이라 하며 독려했습니다.
그 스스로 앞장서 적들과 싸운 결과,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적선을 물리친 빛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단순한 전적지 이상으로 영웅의 고뇌와 의지를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더 좋은 장면을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는 멋진 사진을 담지 못했습니다. 대신 마음속으로 영웅의 숨결을 느끼고 그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는 진도대교는 그 아래 물살이 거칠기로 이름난 울돌목이 있습니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으로 거대한 바다가 만나 큰 물살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또 한 곳의 명소, 전라 우수영 관광지가 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 해남팸투어 첫 방문지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조선 수군의 대승이 있었던 명량해전의 격전장이기도 하고요.
당사 조선 수군은 3도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순신을 대신한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무리한 공격으로 왜군에게 크게 패했고 함선 대부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는 조선 수군은 함선은 13척, 다시 수군 통제사로 기용된 이순신은 육지전을 권하는 왕의 권고를 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 13척의 함선으로 왜군의 130여척의 함대를 격퇴하고 우리 수군의 재해권을 다시 찾았습니다.
바로 그 해전, 명량 해전의 장소가 진도대교 놓여있는 울돌목이었습니다.
명량해전 기념비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갑자기 강해진 비 바람이 가는 발걸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비바람을 가르고 걷게 만들었습니다.
비바람과 운무에 그 시야는 많이 가려졌지만 바다의 풍경은 멋졌습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는 세찬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밑을 흐르는 울돌목의 물은 잔잔했습니다.
세찬 흐름을 오늘은 쉬어 가는 듯 합니다.
날이 좋으면 이 곳에서 숭어잡기를 한다고 하는데요.
좋지 못한 날씨가 멋진 장면을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넓은 평야와 울돌목의 바다를 더 담았습니다.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화로웠습니다.
그 옛날 이곳에서 엄청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재미있게 생긴 구조물이 있었습니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적선을 물살이 거친 울돌목으로 유인하여 격퇴했습니다.
이 해협의 특성을 모르는 왜군은 조선 수군의 함포에 격퇴되고 울돌목의 물살에 서로가 부딪쳐 괴멸되었습니다.
이 구조물은 거대한 쇠사실로 반대편과 연결되어 적선의 진로를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돋보이는 장치라 해야겠습니다.
저 멀리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저 동상은 울돌목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결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도 이 자리에서 여러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력임을 알고 있었기에 생애 마지막 전투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 장군은 출전에 앞서 병사들에서 살려고 하면 죽을거이고, 죽으려 하면 살것이라 하며 독려했습니다.
그 스스로 앞장서 적들과 싸운 결과,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적선을 물리친 빛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단순한 전적지 이상으로 영웅의 고뇌와 의지를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더 좋은 장면을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는 멋진 사진을 담지 못했습니다. 대신 마음속으로 영웅의 숨결을 느끼고 그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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