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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지칭하는 말 중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고 성공의 가능성도 열려 있는 나라가 미국임을 의미한다. 미국은 태생적으로 유럽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주류를 이룬 이민자의 나라였고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이 나라를 건국하고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이민자들이 미국에 들어와 정착했다. 그 속에서 이민자들은 성공의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성공을 위한 이민자들의 노력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큰 에너지원이 됐다. 그 힘을 바탕으로 미국은 여러 민족과 인종들이 공존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나라가 됐고 이런 다양성은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드는 또 다른 원천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민의 역사에서 밝은 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해 살아온 인디언들에게는 비극의 역사였다. 이민자들은 인디언들의 땅을 잠식해 들어왔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인디언들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인디언들의 눈물과 함께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차별이 발생했다. 각각의 상황과 배경에 따라 인종에 따라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위치가 달라졌고 계층이 발생했다. 이는 이민자들 사이 갈등을 불러왔다. 지금도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갈등은 폭력적으로 발현되고 있고 미국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 한편에서는 검은 세력들의 성장도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돼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범죄조직 미국 마피가 그들이다. 마피아는 이탈리아 영토인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를 그 뿌리고 하고 있지만, 유럽인들의 미국 이민이 본격화되는 시기 그 조직 역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마피아는 범죄 조직의 대명사가 됐고 미국의 지하경제를 장악했다. 막대한 자금과 조직력을 갖춘 마피아는 미국 정치와 사회, 경제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밤의 지배자이자 법위의 존재였다. 

 

 

 



애초 시칠리아 섬의 마피아는 일종의 자경단이었다. 여러 나라로 분할되어 있던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국가나 통합이 더디게 진행됐다. 1860년대 들어와서야 하나의 나라로 통합이 됐다. 지중해 중심부에 자리한 시칠리아는 역사적으로 이민족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지배 세력들이 수없이 변경됐다. 이탈리아의 통일은 지역의 안정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탈리아 본토와 거리가 있던 시칠리아의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지역의 치안은 항상 불안했고 치안을 담당해야 할 경찰과 행정 조직은 부패했다. 그 팀에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큰 힘을 발휘했고 주민들은 억압했다. 이에 지역민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와 경찰 등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는 타지역에 대한 배타성과 함께 자치권의 확대로 연결됐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줄 존재가 필요했다.

마피아는 시칠리아 각 마을을 지켜주는 일종의 존재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피아는 그들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익 집단, 범죄 집단으로 변질됐다. 보호비를 명목으로 지역들에 대한 착취를 했고 더는 지역민들의 보호자로서의 존재가 사라졌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까지 마피아는 시칠리아에서 나쁜 방향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시칠리아 섬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화산 폭발과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해 섬이 파괴되고 황폐화됐다. 섬 전체가 빈곤에 빠져들었다. 마피아 조직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새로운 약속과 기회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 열풍이 불었다. 많은 서민들이 미국으로 향했다. 그 이민 행렬에 마피아들도 함께 했다. 이민자들이 급증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대 이주 시기 마피아들도 새로운 기회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도 마피아들의 범죄 조직으로서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시칠리아 마피아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뉴욕 동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초기 그들은 이탈리아인들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했다. 이미 그들에 대한 악명을 익히 알고 있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땅 미국에서 차별을 받는 대상이었다. 그들을 지켜줄 존재가 필요했다. 최선을 아니지만 차악을 선택해야 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미국 이민자들의 주류를 이뤘던 개신교 신자들이 아닌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먼저 이민을 와 자리를 잡은 민족들과 여타 이민자들에 비해 그 기반이 단단하지 않았다. 특히, 다른 유럽의 범죄 조직들에 의해 협박과 갈취를 받아야 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보호비를 내면서도 또 다른 악을 막아내기 위해 악마와 손을 잡아야 했다. 이를 통해 마피아 조직은 미국에서 뿌리를 내렸고 이후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갈취하고 조직을 키워나갔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마피아는 기업의 형태로 발전했다. 물론, 정상적인 기업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1세대 마피아 조직이라 할 수 있는 모렐로 패밀리는 위조지폐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폭행과 강도, 납치 등 범죄 조직으로서의 모습도 유지했다. 초기에는 어둠 속에 있던 조직이었던 그 범죄 행각이 언론 등을 보도되고 대중들도 마피아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칠게 없었다. 사업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는 한편, 커진 이권을 차지하려는 내부 암투가 극심해졌다. 

내부 암투와 조직 간 경쟁 속에서 먼저 주도권 잡은 세력은 모렐로 패밀리였다. 이들은 1920년 미국에서 발효된 금주법을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 활용했다. 모렐로 패밀리는 밀주를 제조하고 그들의 조직망을 이용해 유통했다. 마피아의 밀주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다. 범죄를 예방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금주법이 오히려 마피아의 세력 확장을 돕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결국, 조직의 수장 모렐로 위조지폐 제조 등 혐의로 수감되며 조직에 위기가 찾아왔지만, 한 번 뿌리내린 마피아 조직은 와해되지 않고 더 분화되고 세력은 뉴욕을 넘어 미국 각지로 확대됐다. 

마피아의 세력과 사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 내부 권력 투쟁이 더 격렬해졌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 급기야 반대파에 대한 살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그 안에서 상호 배신과 음모가 끊이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패러디 되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는 인기 연화 대부는 이런 마피아들의 권력 암투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마피아 내부의 권력 투쟁은 치열했고 유혈이 낭자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 사이 마세리아가 새로운 마피아의 최고 권력자고 등장했다. 그는 1세대 마피아 보스라 할 수 있는 모렐로와 손은 잡았고 세력을 규합했다. 하지만 그를 반대하는 마란자노 세력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다. 그 경쟁은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이 대결은 승자는 마란자노였다. 마란자노는 마세리아의 측근인 루치아노를 포섭했고 루치아노는 그의 보스 마세리아를 살해하며 그 조직을 장악했다. 마란자노는 마피아 조직을 5개로 개편하고 최고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마피아는 5개의 거대 파벌이 자리하게 됐다. 

그의 시대도 오래가지 못했다. 마세리아를 살해한 루치아노는 마란자노와의 갈등이 생겼고 급기야 루치아노는 마란자노를 청부 살해하며 마피아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루치아노는 마피아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일종의 집단 지도체제를 구성하며 조직을 안정시키는 한 편 조직 내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유지했다. 

 

 

 



이렇게 뉴욕의 마피아 조직 내 세력이 재편되는 가운데 신흥 마피아 조직이 부상했다. 그 중심인물은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카포네였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이 아닌 시카고를 거점으로 마피아 조직을 발전시켜 그 세력을 미 전역으로 확장했다. 그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 여느 마피아와 마찬가지로 밀주를 제조해 이를 유통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927년에는 연간 수입 1억 달러를 돌파하며 미국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알카포네는 인상 좋은 아저씨 같은 느낌의 범죄자와는 거리가 먼 외모였고 그의 말투나 행동 역시 범죄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는 조직을 위한 냉혹함과 잔인함이 숨어있었다. 그는 1929년 2월 14일 아일랜드 계 경쟁 마피아 조직의 조직원들을 집단 살해한 성발렌타인데이 학살을 배후 조정하며 악명을 높였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알카포네는 교묘히 사건과 무관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처벌을 피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알카포네는 1931년 금주법에 반대하는 미국 내 여론이 커지고 금주법이 힘을 잃자 밀주 제조 유통을 하던 조직을 이용해 우유 생산과 배달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신선한 우유를 아침 일찍 배달해 주는 시스템은 알카포네가 고안했고 우유사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식품의 유통기한 표시제를 강력히 주장하며 로비를 하기도 했다. 이제는 보편화된 식품 유통기한 표시제는 알카포네에 의해 가시화했다. 

이런 알카포네도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1931년 알카포네는 탈세 등의 혐의로 체포되 재판을 받았고 유죄를 선고받은 후 흉악범들의 수감 장소로 악명이 높았던 샌프란시코 알카트라즈 섬 감옥에 수감됐다. 이후 그는 1939년 출소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알카포네와 달리 뉴욕 마피아 조직을 장악한 루치아노는 건재했다. 그는 마피아 조직을 전 미국화 글로벌화했다. 이후 마피아는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들의 이익 추구의 방법은 더 교묘해지고 다양해졌다. 사업 역시 마약과 매춘 등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분야로 더 확대됐다. 그만큼 마피아가 미국에 주는 부정적 영향력도 커졌다.

결국, 루치아노는 다양한 범죄 혐의로 1936년 수감됐다. 하지만 그의 조직 내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각종 살해 지시를 내리고 체계화된 시스템을 통해 그의 명령이 이행됐다. 살인 주식회사로 불리던 마피아의 살인 시스템은 명령을 내리는 핑거맨, 실행하는 히트맨, 사후 처리를 담당하는 이베포레이터로 구성됐고 명령자는 그 혐의를 피해 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런 살해 시스템과 막대한 부를 이용한 정관계 로비 등으로 인해 루치아노는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은 그와 마피아 조직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미국 정부 당국은 전쟁 당사국인 독일과 이탈리아 계 사람들에 의한 테러를 경계했다. 이에  미 정보당국은 이탈리아계 사람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테러 징후 등을 파악할 방편으로 마피아의 협조를 구했다 그 수장인 루치아노는 이에  협조하는 대가로 조기 출소를 약속받았다. 실제 루치아노는 이탈리아로의 추방을 조건으로 가석방됐다. 하지만 그는 다시는 미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이렇게 루치아노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마피아 조직은 이후 그 세력이 다 강해졌다. 사업 영역은 확대되고 특히, 마약 사업은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70년대까지 미국 사회의 큰 문제가 됐던 마약과 관련해 마피아는 마약의 중요한 공급자로 악명이 높았다. 마피아는 유럽 조직과 연계한 유통망을 통해 미국으로 헤로인 등의 마약을 지속적으로 공급했다. 미국이 마약으로 오염되어 가면 갈수록 마피아들은 더 많은 이권을 얻고 이권 획득의 영력을 넓혀나갔다. 이제 마피아는 거대 기업으로 발전했다. 

이런 마피아에 미국 정부는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정보 당국과의 연계성과 경찰 당국의 무능, 범죄 조직이라면 항상 의심할 수 있는 돈을 매개로 한 정치권과의 유착 등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마피아의 범죄를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약 제조와 유통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마피아의 척결은 마약의 확산을 막는데도 필요한 일이었다. 

1957년 마피아 문제에 대한 중요한 전환점이 발생했다. 미국 한적한 마을에 열린 마피아 수뇌부의 비밀 회의를 미국 경찰이 급습했고 회의에 참석한 마피아 지도자급 인사들이 대거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아팔라친 회합 또는 아팔라친 회의로 불리는 이 사건은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마피아 척결에 나서는 첫걸음이었다. 이후 미국은 연방경찰 FBI를 중심으로 마피아 척결에 나섰다. 

1970년 10월에는 마피아 조직 와해를 위한 리코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범죄 조직의 불법 행위를 처벌함에 있어 명령자와 실행자 그리고 그 조직을 모두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두어 범죄에 대해 실행자만 처벌받고 명령자는 빠져나가는 병폐를 없애도록 했다. 범죄 집단은 그 스스로 그들의 적법성을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형사 처벌은 물론이고 부당이득의 환수와 함께 피해자들의 징벌적 손해배상권까지 규정했다. 이 법은 이후 기업범죄와 기업들의 담합행위, 부정부패 사건들에도 적용됐다. 이 법은 범죄 조직에는 치명적이었다. 

 

 

 



이후 미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더해지며 마피아 조직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갔다. 1980년 대 들어서는 마피아의 중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뉴욕 마피아의 5대 조직 보스들이 함께 처벌받으며 조직에 큰 타격이 발생했다. 당시 뉴욕 검찰은 마피아의 의사결정 기구인 마피아 위원회를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방법으로 감시해 증거를 수집했다. 그 결과 마피아 조직이 건설 노조 등에 침투에 그들을 조정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와 함께 마피아가 연계된 미제 살인 사건 등의 증거가 드러나면서 마피아 보스들은 리코법에 근거해 벌할 수 있었다.

이런 미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마피아 조직의 붕괴로 연결됐다. 이후 2000년대까지 마피아 조직의 불법 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죄됐다. 여전히 마피아의 세력은 남아있지만, 그 힘은 이전보다 크게 약해졌다. 이렇게 100년이 넘은 미국 내 마피아의 역사는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방심한다면 언제든 그 세력이 부활하고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마피아 조직과 같은 조직폭력 조직의 역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세력은 기업을 위장해 합법을 가장하고 있다. 유흥업소는 물론이고 건설 현장, 심지어 대학교 총학생회 등 이권이 있는 곳에서 그 힘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조직폭력 조직들은 정관계 인사들과 연결되며 힘을 얻었고 이권을 극대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미국 마피아 조직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조직폭력 조직과 관련해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들은 미화하고 마치 범죄자들과의 관계를 의리로 포장하는 등으로 그들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게 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조직폭력 조직 등 범죄 단체는 우리 법에서도 매우 큰 처벌을 받는 중범죄이고 그들은 결코 공익과는 무관한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이미 미국 역사에서 마피아들이 이를 입증했고 우리 역사에서도 정치 깡패들과 각종 범죄 단체들이 이를 입증했다.

마피아는 미국 이민사의 큰 오점이다. 하지만 미국 마피아의 역사는 결코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어떤 누구든 조직이든 공정한 경쟁과 방법을 통한 성공이 아닌 불법과 편법, 폭력을 통한 성공은 그 자체로 사회에 큰 해악이고 건강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피아의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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