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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중요한 바이블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고 어떻게 보면 황당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고대의 역사와 생활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그 신화를 통해 역사를 기록했다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도 남아 있는 각종 건국 신화와 그에 파생되는 탄생 신화 역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그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 프로메테우스는 저항의 신으로 불린다. 그는 신들 중 가장 큰 힘과 절대적 권위를 가진 제우스에 맞서 싸우고 저항한 신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긴 세월 쇠사슬에 묶인 채로 산에 매달려 있어야 했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극한의 형벌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그를 조롱하며 저항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 저항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었다. 그는 인간들이 신들에 의해 고통받지 않게 보호하려 했다. 그는 인간을 창조한 신이었고 그 인간들에게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 인간 위에 군림하려 했고 심지어 인간들을 멸종시키려 했다. 제우스는 지금의 정치와 비교한다면 전형적인 폭군, 독재자의 모습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이였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먼저 존재한 신들이었더 티탄족의 일원이었다. 그는 인간을 창조한 신이었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파이토스 이전 장인의 신이었다. 또한, 예지 능력을 가진 신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에 있는 프로는 영어의 pro로 최초, 처음의 의미가 있다. 다재다능한 신이었던 그는 티탄족이면서도 티탄족과 제우스의 올림포스 신들이 세상의 지배권을 놓고 대전쟁 당시 제우스의 승리를 미리 인지하고 제우스에 투항했다. 그 덕분에 대부분 티탄족들이 전쟁 후 지하 세계에 봉인되는 처지가 됐지만, 그는 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전쟁이 끝나고 그는 인간들을 위한 신으로 일했다. 이런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은 제우스가 그에게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절대적인 신인 제우스에게 인간은 하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생각이 달랐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제우스가 인간의 삶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불을 빼앗았고 이를 안 프로메테우스는 그에 이어 장인의 신이 된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에서 몰래 불을 훔쳐 인간세계에 전했다. 다시 찾은 불로 인간 세상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이에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를 신으로 존경하고 숭배했다. 이를 알고 있었던 제우스는 자신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프로메테우스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코카서스 바위산에 쇠사슬로 묶여 지내도록 하는 형벌을 내린다. 프로메테우스는 평소 그를 존경했던 장인의 신 헤파이토스의 만든 쇠사슬에 묶여 30,000여 년을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에 그를 아끼는 신들이 제우스에게 용서를 빌고 형벌에서 벗어날 것으로 권유하기도 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이를 거절했다. 오히려 제우스가 몰락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을 하며 도발했다. 더 분노한 제우스는 쇠사슬로 묶여 있는 그에게 독수리가 찾아와 그의 간을 쪼아 먹는 벌을 추가했다. 그는 매일매일 살이 찢기고 간을 파 먹히는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이와 함께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끼는 인간들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된다. 제우스는 남성들만 존재하는 인간 세계에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를 만들어 내려보냈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테우스에게 선물로 보내진다. 이는 제우스의 음모였다. 이를 알고 있었던 프로메테우스는 에피테우스에게 제우스의 선물을 절대 받지 말 것을 신신당부였다. 하지만 에피테우스는 판도라를 거절하지 못했다. 

 

 

 



판도라는 다양한 능력을 함께 받은 인간이었고 호기심 가득한 인간이기도 했다. 판도라는 에피테우스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항아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에피테우스는 판도라에게 그 항아리를 열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항아리를 열고 말았다. 그 항아리 안에는 분노, 슬픔, 절망, 전쟁 등 인간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판도라가 그 항아리를 열면서 인간들은 그들을 불행하게 하는 각종 요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평화롭던 인간 세상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신화 속 이야기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는 재난의 근원, 알면 안 되는 비밀을 뜻하는 말로 지금도 통하고 있다. 신화속에서 판도라가 연 항아리 안에는 단 한 가지만 남았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당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상징하는 말이었고 이런 꿈을 꾸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었지만, 인간에게 남겨진 희망을 힘든 삶 속에서 인간들을 지탱하는 힘이 됐다. 

희망이 남긴 했지만, 당장의 현실은 참혹했다. 인간들의 시련을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제우스는 인간 세상에 대홍수를 일으켰고 인간 세상을 멸망의 위기에 몰렸다. 그 속에서 두 명의 인간이 생존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퓌라였다. 이들은 대홍수를 예측한 프로메테우스의 말을 따라 대홍수를 피할 수 있는 배를 만들어 죽음을 면했고 대홍수가 끝난 이후 모든 것이 사라진 육지에 내렸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어미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라는 신탁을 받았다. 이들은 그 신탁의 의미를 파악했다. 어미는 대지, 돌은 그의 어미의 뼈였다. 그들은 돌을 등 뒤로 쉼 없이 던졌고 그 돌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인간들은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번성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시작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의 시조는 프로메테우스로 할 수 있다. 이로써 인간들을 멸종시키려는 제우스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프로메테우스의 꺾이지 않는 신념과 저항이 이룬 결과였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나오는 간은 실제 재생이 가능한 장기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민중들을 억압하는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프로메테우스의 저항은 수만 년의 세월이 흘러 결실을 맺게 된다.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자 그리스 신화 속 대표적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등장으로 프로메테우스는 마침내 긴 형벌에서 벗어나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 여신의 계략에 빠져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12과업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헤라 클라 수는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프로메테우스를 괴롭히던 독수리를 처치하고 그를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 헤라클레스의 중재를 통해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는 화해를 한다. 마침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몰락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을 알려줬다. 대신 그는 제우스에게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시도를 중지하고 법과 정의에 의한 통치를 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를 통해 인간과 신의 세계는 신이 인간을 통치하는 일방적인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각자의 세계로 존재하게 됐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지키는 신으로 그 위치를 더 공고히 했다. 

이런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보는 듯하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왕정시대를 거쳐 소수의 귀족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나라였다. 이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포스 신들이 세상을 통치하는 그리스 신화 속 세상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균열이 발생한다. 그리스의 영역이 확대되고 활발한 교역을 하게 되면서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평민들이 부를 축적하고 정치, 경제적 입지가 강화됐다. 이들은 기존의 소수 권력자들이 독점하는 사회 시스템에 반기를 들었다. 권력자들은 가혹한 법과 형벌, 힘으로 민중들을 억압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지만, 평민 세력들의 힘이 커지면서 더는 힘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 없었다.

이는 정치적 역학 관계를 변화시켰다. 평민들의 지지를 얻은 이가 권력자로 등장했다. 민중의 지지를 얻은 새로운 권력자 참주가 등장했다. 참주 정치의 시작이었다. 지금의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 모습도 유사했다. 하지만 참주 정치는 점점 독재화됐다. 참주들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민중들의 정치적 관심을 멀어지게 하기 위해 각종 축제와 볼거리 놀 거리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극장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공연들이 그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현대에서도 독재권력이 사용하는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향상되고 그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면서 아테네의 정치 환경도 변했다.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도편 추방제 등을 통해 나라에 해악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을 시민으로 뜻으로 권력에서 제거하는 시민 참여 정치가 점점 활성화됐다. 결국, 참주 정치는 몰락했고 기원전 500여 년 경 아테네에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정치가 시작됐다. 물론, 참여 대상이 아테네 성인 남성으로 제한되는 한계가 있었지만, 참여 정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런 아테네의 민주 정치는 현대 민주 정치의 근간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는 어느 곳이든 시민의 참여를 전제하고 있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얻어야 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은 그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 이런 민주주의의 원형이 고대 그리고 아테네에서 만들어졌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는 그런 민주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제우스는 절대 권력자, 올림포스의 신들은 귀족들, 인간들은 그리스의 평민, 시민들로 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시민의 편에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대표이자 지도자라 할 수 있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만 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그의 노력과 저항을 통해 절대 권력자 제우스는 힘의 통치만을 하려는 폭군에서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성군으로 변모했다.

이런 변화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선각자들과 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민주주의 발전은 판도라가 연 항아리 안에 유일하게 남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고 긴 저항과 투쟁,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짐을 알 수 있다.  이에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역사 발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되는 이야기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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