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벗어나 세계사로 그 영역을 넓힌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현대 세계사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그중 독일과 공산주의 소련이 대결한 독. 소 전쟁을 다뤘다. 올해 80주년이 되는 독.소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사에서 우리에게 많은 알려지지 않았다. 전쟁의 당사자가 중 하나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공산주의 진영의 맹주 소련이었다는 점에서 언급하기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하지만 독.소 전쟁은 나치 독일과 민주주의 서방 진영이 대결한 서부 전선과 비교할 수 없는 파괴적이고 엄청난 피해를 남긴 전쟁이었다. 그 전쟁의 결과는 세계의 흐름을 뒤바꿔 놓을 정도로 그 후폭풍이 거셌다. 역사저널 그날 323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개와 함께 독.소 전쟁의 발발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중국의 중요한 고전 삼국지연의 후반부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제갈공명 제갈량이다. 그는 유비가 익주, 지금의 쓰찬 지역을 장악하며 촉한을 건국하는 데 있어 책사로서 큰 역할을 했고 유비 사후 국정의 전반을 책임지는 승상으로 국가 운영의 전반을 책임졌다. 승장 제갈공명은 뛰어난 지략가였고 국가 운영에 있어서도 큰 역량을 발휘했다. 그에 대해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만큼 촉한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고 그의 존재로 위촉오 삼국 중 가장 약한 국력에도 촉한은 나라를 보존하고 경쟁할 수 있었다.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제갈량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봤다. 제갈량은 삼국이 세력 대결을 펼치던 격전장인 형주 지역의 인물이었다. 형주 지역은 사통팔달의 ..
세계의 주요 인물들과 사건들을 입체적 살피고 있는 역사 예능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 얼마 전 다른 인물은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격변기에 혼란스러운 프랑스의 상황을 정리하고 프랑스가 유럽의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인물이었다. 한편에서는 그가 황제 자리에 올라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훼손하는 반동의 정치를 했고 유럽 전역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침략자라는 부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프랑스 대혁명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프랑스 대혁명은 국민들의 봉기로 봉건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체제를 들어서게 한 사건이었다. 혁명 당시 프랑스는 극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의 나라의 권력과 부를 독점..
중국 고대사의 중요한 장면인 위, 촉, 오의 삼국시대를 소설 삼국지를 중심으로 소설과 실제 역사를 함께 살피며 재 조명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 321회에서는 유비와 손권의 관계를 유비를 중심으로 다뤘다. 유비와 손권은 조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삼국지에서 가장 뜨거운 전투였던 적벽 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에 승리했다. 조조는 적벽대전의 패배로 중국을 통일하려는 야망을 접어야 했다.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형주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 지역으로 중국에서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다. 형주 지역은 중국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이 지역을 차지한다는 건 천하삼분지계를 통해 삼국이 형성된 시점에서 삼국 경쟁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과거..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 여름 특집으로 중국의 고전 삼국지와 그와 관련한 중국사를 살피고 있다. 조조를 중심으로 한 삼국지 초반부에 이어 320회에서는 위촉오의 삼국시대를 도래하게 하는 결정적 사건인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당시 시대상을 되짚었다. 중국 후한 말기 왕권의 약화됐고 각 지방의 군벌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 혼란이 시기가 찾아왔다. 중국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역은 황화 유역의 화북지역을 놓고 조조와 원소가 대결을 펼쳤다. 삼국지의 첫 번째 대전인 관도대전이었다. 이 전쟁에서 조조는 원소에 승리하며 화북지역을 장악했다. 후한 왕조는 존속했지만, 그들의 실권이 없었다. 조조가 대승상의 자리에 올라 권력의 일인자가 됐다. 그와 함께 조조는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조조는 그와..
경기도 중부에 위치한 안양시는 관악산과 삼성산이 주변을 감싸는 분지 지형으로 도시에는 안양천을 포함한 하천이 흐른다. 마치 서울과 흡사한 지형의 안양은 북쪽으로는 서울 금천구와 관악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시흥과 광명, 동쪽으로는 과천과 의왕, 남쪽으로는 군포, 안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일산, 분당과 함께 1기 신도시로 조성된 평촌 신도시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안양의 지명은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안양사라는 사찰을 건립한 데서 유래됐다. 안양이 도시로서의 독자적 발전을 하게 된 건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안양역이 생기면서부터다. 이후 철도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도심이 형성됐고 안양은 지역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안양시는 근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