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압축해 보여주었던 드라마 보좌관 시즌 2가 막을 내렸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정치에 뛰어들었던 주인공 장태준과 강선영, 그들과 대척점에 있었던 비리 정치인 송희섭과 그와 연결된 거대 재벌 성 회장과의 대결로 전개된 이야기는 장태준과 강선영이 그들을 응징하고 정치인으로서 또 다른 여정에 나서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권력과 돈이 결합된 송희섭, 성 회장의 악의 카르텔은 너무나 크고 단단했다. 장태준과 강선영은 현직 국회의원의 신분이었지만, 더 큰 힘에 밀려 계속된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그들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응징을 위한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장태준은 강한 이해관계로 연결된 송희섭과 성 회장의 틈을 파고들어 그들 사..
우리 정치의 어두운 이면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드라마 보좌관 시즌 2가 종영까지 2회만을 남기고 있다. 시즌 1에서는 주인공 장태준과 함께 거대 권력에 맞서던 연인이자 국회의원인 강선영의 보좌관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엔딩이 있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장태준은 그가 척결하려 하는 악의 중심인 비리 정치인 송희섭에 무릎을 꿇고 국회의원 공천을 빌미로 악의 거래를 하며 시즌 2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다. 시즌 2에서 장태준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더 강한 힘으로 송희섭 장관이 중심인 권력과 맞서기 시작했다. 보좌관 신분으로 그와 맞서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장태준은 송희섭의 손발이 되었다. 극 초반 장태준의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이 이면에는 송희섭을 무너뜨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송희..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1번째 여정은 강원도 삼척이었다. 삼척은 맑은 동해바다와 태백산맥의 산세가 함께 하는 곳으로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는 곳이다. 삼척은 수도권에서는 최근 올림픽을 거치며 교통망이 확충된 강릉이나 속초와 달리 관광지로도 다소 소외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과거 삼척은 석탄과 시멘트 산지로 여러 광산들이 함께 하는 광업 도시로 70년대와 8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이곳에서 나는 시멘트는 건설업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고 석탄은 서민들의 난방 연료인 연탄의 원료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연탄보일러는 보편적인 난방 수단이었다. 이렇게 산업화와 함께 발전했던 삼척은 90년대 들어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연탄 수요가 급감하고 값싼 수입석탄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쇠락을 길을..
서울은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지금까지 오랜 세월 수도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서울 정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중심이었고 나라 근대화를 이끌어가는 곳으로 큰 변화를 몸소 겪어왔다. 그 덕분에 서울은 많은 것이 발전하고 새롭고 편리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와 비례해 간직해야 할 과거의 흔적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뒤늦게 그 가치를 인식하고 찾으려 하지만, 이제는 사진 속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상당수다. 우리 주변의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47회에서는 서울 정릉, 삼선동에 발걸음 했다. 시원함보다 차가움이 더 느껴지는 북한산 자락의 계곡을 따라 시작된 여정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의..
경기도 김포는 오래전부터 벼농사가 시작된 곡창지대였고 김포쌀은 중요한 특산물이었다. 지금도 김포에는 벼농사가 활발하다. 김포는 서해안과 맞닿아 있어 어촌의 풍경도 만날 수 있고 김포공항의 비행기들이 오가는 하늘의 통로이기도 하다. 김포는 한강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 하구의 독특한 풍경이 있고 북으로는 북한과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김포는 수도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과 다양함이 가득하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서울과 가깝지만, 도시보다는 농촌의 풍경이 더 연상되었던 김포였지만, 최근에는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고 인구가 크게 늘었다. 이제는 김포만의 특징의 도시를 특색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45회에서는 김포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여정의 ..
일제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의 단체가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 각지에 있었고 독립운동의 노선에 다양했던 탓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모두 총괄하였는지에 대한 이견도 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고 많은 인사들이 이곳에 속해 있었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도 임시정부가 주도하였고 이후 광복군 창설 역시 임시정부가 중심에 있었다.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속에 한반도가 편입되면서 임시정부는 그 존재감을 잃었지만, 다수의 임시정부 인사들이 정치활동을 했고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주공화정의 시작이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