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여러 팀을 옮기는 선수에게 떠돌이라는 말로 통하는 저니맨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그 선수에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FA 자격을 얻기까지 팀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우리 프로야구 현실에서 해당 팀에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선수는 본인 의지가 상관없이 트레이드의 대상으로 아니면 방출을 통해 팀을 떠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팀 저 팀을 옮기는 선수가 나타난다.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은 소속팀에서 버림받았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겨내고 선수로서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물론, 상당한 적응력과 노력이 병행돼야 가능한 일이다. 올 시즌 NC에서 활약한 조영훈은 최근 2년간 3개 팀 유니폼을 입으며 저니맨이 되어야 했다. 본인 의지가 상관없었다.
2005년 삼성에 입단한 이래 삼성의 좌타자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던 조영훈이었다. 군 문제도 일찌감치 해결했고 타격에서 날카로운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전 자리를 굳히기 위한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1루가 주 포지션이었던 조영훈은 두터운 삼성의 선수층을 뚫지 못했다. 외야수를 병행하며 출전 경기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백업 그 이상은 아니었다.
삼성에서 조영훈의 자리는 대타나 주전 부상 시 이를 메우는 역할이었다. 한 타석 한 타석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심리적으로 큰 압박이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해야 했지만, 꾸준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삼성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조영훈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2012시즌 중반 조영훈은 KIA 김희걸과의 트레이드로 삼성을 떠나게 되었다.
(조영훈, NC가 방랑의 마지막 장소 될까?)
조영훈에게 아쉬운 일이었지만, 당시 KIA는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공격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조영훈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다면 주전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KIA는 트레이드 이후 조영훈을 주전으로 기용하며 높은 기대를 드러냈다. 하지만 뜻대로 기회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바뀐 환경에 적응이 늦었고 타격도 살아나지 않았다. 2012시즌 조영훈은 타율 2할에 턱걸이했다. 시즌 후반에는 수비마저 흔들리며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다. KIA는 그에게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이런 조영훈에 또 한 번 변화가 찾아왔다. 2013시즌 앞두고 열린 NC의 특별지명에서 조영훈은 신생팀 NC의 지명을 받고 또다시 팀을 옮겨야 했다. 한해에만 두 번째 이삿짐을 싸는 순간이었다. KIA에 적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조영훈으로서는 힘든 일이었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생팀에서 조영훈은 운신의 폭이 넓었다. 조영훈은 충분한 출전 기회를 보장받았다. 이전 팀에서 부진하면 선발 엔트리에서 빠지곤 했던 일이 많았지만, NC는 달랐다. 마음을 부담을 던 조영훈은 타격에서 숨겨져 있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타율은 3할을 훨씬 웃돌았고 중거리 타자로서 NC 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팀의 믿음은 그를 춤추게 한 결과였다.
시즌 막판 체력 문제로 내림세를 보인 것이 아쉬웠지만, 조영훈은 올 시즌 프로 데뷔 이후 처음 1군에서 규정 타석을 채웠다. 성적도 만족스러웠다. 타율 0.282, 107안타, 39타점, 6홈런의 기록은 프로선수로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무엇보다 1군에서 주전으로 풀 타임을 소화했다는 것이 그에게 의미가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린 2013시즌이었다.
이렇게 2013년을 보낸 조영훈이지만 내년 시즌 전망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다. 더 치열해진 경쟁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선수 영입은 조영훈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FA로 영입된 이종욱의 존재는 NC 외야진을 포화상태로 만들었다. 기존의 김종호, 나성범에 이종욱이 가세한 외야진은 백업 선수경쟁을 더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조영훈
- 재능있는 좌타자지만, 열리지 않았던 기회의 문
- NC에서 잡은 기회 외부 변수로부터 지켜낼까?
권희동, 박으뜸, 박정준에 군에서 제대한 오정복이 더해지면서 1군 엔트리 진입을 위한 관문이 더 좁아졌다. 일부 선수의 포지션 이동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1루와 외야수 모두 가능한 외국인 타자 테임즈가 영입되면서 조영훈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올 시즌 1루수로 주로 나섰던 조영훈은 외국인 타자와 힘겨운 포지션 경쟁을 해야한다. 외야수 출전은 앞서 언급한 다수 선수와 경쟁해야 한다. 지명타자는 이호준의 위치가 확고하다.
조영훈으로서는 올 시즌 어렵게 잡은 주전의 자리를 내줘야 할 처지다. NC를 방랑의 끝으로 여겼던 조영훈으로서는 다시 한 번 프로의 냉혹한 현실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애 최고 성적을 거뒀던 올 시즌 이상으로 자신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백업 자리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 조영훈이다. 소속팀 NC는 선수층을 두텁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조영훈에게는 분명 큰 위기라 할 수 있다.
조영훈은 이제 30살을 넘겼고 프로선수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할 위치다. 충분히 그럴만한 재능이 있고 올 시즌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조영훈 자신도 어렵게 잡은 기회를 쉽게 내주고 싶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길었던 인고의 시간을 견뎠던 그의 의지에 계속된 노력이 더해진다면 결코 내년 시즌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내년 시즌 상위권 도약을 노리는 NC에서 조영훈이 어떤 역할을 할지 그리고 주전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 : NC 다이노스 홈페이지, 글 : 심종열, 이메일 : youlsim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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