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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스타 출신 지도자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실제 선수 시절 쌓았던 명성을 지도자로서 날려버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은퇴 후 지도자로 성공하지 못하고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선수로서 경기에 임하는 것과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분명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방증한다.

프로야구도 다르지 않다. 30년이 넘는 연륜이 쌓인 우리 프로야구고 그동안 레전드라 불리는 선수들도 다수 배출했지만, 그들이 팬들이 기대하는 지도자로서 선수 시절 같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올 시즌을 준비하는 구단들의 감독 면면을 살펴도 선수시절 스타 출신이 상대적으로 적다. 아직은 프로야구에서 선수로서의 활약이 좋은 지도자로 가는 지름길이 되지 못하는 것인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새내기 지도자가 있다. 올 시즌 두산의 투수 코치로 합류한 이상훈이 그렇다. 그가 더 큰 관심을 받는 것은 선수 시절의 빛나는 활약과 함께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던 독특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선수시절 이상훈은 독특함을 넘어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선수였다.

이상훈은 90년대 LG의 에이스로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 투수였다.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상훈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긴 생머리를 하고 경기에 나섰고 누구에게도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를 두고 야구팬들은 야생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강속구로 타자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상훈, 선수로서의 성공 지도자로도 이어갈까?)





성적도 출중했다. 이상훈은 1993년 프로 데뷔 첫해 9승 9패 3.76의 방어율로 성공적인 신인 시절을 보낸 이후 1994시즌 18승 8패, 1995시즌 20승 5패를 기록하며 최고 투수 반열에 올랐다. 신인 시절 공을 빠르지만 제구가 불안하고 변화구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금새 극복하고 완성형 투수로 거듭났다. 더 놀라온 건 두 시즌 모두 2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이상훈은 안정적인 투수이기도 했다. 1995시즌에는 20승을 거두면서 12완투 경기를 하는 철완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데뷔 3년 만에 놀라온 성과를 거둔 이상훈이었지만, 1996시즌부터 이상훈은 고질적인 어깨 부상 등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내림새를 보였다. 1995시즌 무려 228.1이닝을 소화한 것은 그만큼 혹독한 후유증으로 나타났다. 이상훈은 이런 어려움을 마무리 투수 전환으로 새로운 기회로 삼았다. 1996시즌 10세이브를 기록한 이상훈은 1997시즌 37세이브로 이 부분 1위를 차지하면 선발 투수에 이어 마무리 투수로도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성공적인 변신이었다.



선발투수로 마무리 투수로서도 성공을 거둔 이상훈은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는 해외 진출을 관철해 일본과 미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계속 국내에 있었다면 최고 자리에서 있을 수 있었지만, 야생마 같은 그의 성격은 더 큰 무대로 가는 길을 선택하게 했다. 이상훈은 2개의 해외 리그를 모두 경험하는 첫 국내 선수였다. 물론, 그 과정에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진으로 2군행이나 마이너의 쓰라린 경험도 감수해야 했다. 이상훈은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도전을 계속했다.


1998시즌부터 시작된 이상훈은 해외 도전기는 2001시즌까지 이어졌다. 2002시즌 이상훈은 긴 해외 경험을 뒤로하고 친정팀 LG로 돌아왔다. 2002시즌 18세이브, 2003시즌 30세이브를 기록하며 이상훈은 LG의 수호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상훈만의 개성과 카리스마 다양한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한 투구는 팬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LG와의 새로운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04시즌을 앞둔 시점에 때아닌 이상훈 트레이드설이 불거졌다. 당시 하위권으로 쳐진 팀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체질 개선을 시도하던 LG 구단은 이상훈의 자유분방함을 문제 삼았다. 그의 행동이 팀 케미를 깨뜨리다는 이유였다. 구단과 이상훈의 대립이 점점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터진 트레이드설은 양 측의 사이를 완전히 돌아서게 했다. 결국, 이상훈은 SK로 팀을 옮겼다.

LG는 팀의 레전드를 격에 안 맞는 선수들과 트레이드하는 우를 범했고 이상훈은 큰 회환을 안은 채 정들었던 팀을 떠나야 했다. 이는 이상훈과 LG에 모두에 최악의 트레이드였다. 이상훈은 SK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시즌 중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이후 선수 이상훈은 볼 수 없었다. LG 역시 이상훈을 내주고 영입한 선수들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팀 분위기 쇄신과 체질 개선이라는 효과도 얻지 못 했다. 무엇보다 팬들의 사랑을 받는 레전드를 쉽게 내친 구단의 형태는 팬들의 강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후 LG는 성적에서도 하위권을 전전하며 깊은 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이렇게 이상훈과 LG의 이별은 비극이었다. 이상훈은 은퇴 후 야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가수로서 활동하기도 했고 사업가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장기간 이상훈은 야구와 상관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향한 그의 열망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런 이상훈의 열망을 다시 깨운 건 김성근 한화 감독이었다. 고양 원더스 감독 시절 김성근 감독은 이상훈은 코치로 영입했고 옛 스승의 제안을 그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상훈은 이상훈은 실패를 딛고 새 희망을 찾는 선수들을 지도하며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야구 인생 경험이 고양 원더스 선수들과의 교감에 더 큰 도움이 됐다.



고양 원더스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은 이상훈은 2015시즌을 앞둔 시점에 중요한 영입한 대상이 됐다. 김성근 감독이 있는 한화행이나 친정팀 LG 행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의 행선지는 LG의 서울 라이벌 두산이었다. 이외의 선택이었다. 두산 신인 김태형 감독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한 결과였다. 이상훈은 프로 팀 코치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 수 있게 됐다. 그의 복귀를 간절히 원했던 LG 팬들에게는 분명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를 아는 야구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이상훈은 올 시즌 두산의 투수진, 특히 좌완 투수진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좌완 투수로 최고의 활약을 했던 그의 경력과 경험은 올 시즌 장원준 영입 이후 질적, 양적으로 늘어난 두산 좌완 투수진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훈 개인으로서도 길었던 공백을 넘어 야구팬들에게 그의 존재감을 다시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타 선수 출신이 지도자로도 또 하나의 성공사례를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과연 아직은 초보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이상훈이 올 시즌 두산 투수진 조련을 통해 그 능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 이를 바탕으로 성공한 지도자로 가는 길의 초석을 놓을 수 있을지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레전드의 곰 조련사 변신이 가져올 결과는 선수들의 활약만큼이나 2015시즌 관심 가는 부분이다. 

사진 : 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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