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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야구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1982년생 야구 선수가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미국 메이저리그를 거쳐

SSG에서 활약했던 추신수가

10월 1일 리그 역사상 최초로

열렸던 5위 결정전 대타 타석이

그의 프로야구 선수로 마지막

타석이었다.

 

추신수는 그 전날인 9월 30일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 대타

타석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칠 것으로 보였다.

 

올 시즌 내내 어깨 부상에 시달렸던

추신수는 팀에 보탬이 될 수 없는

몸 상태임을 이유로 5위 결정전 및

포스트시즌 출전은 고사하려 했다.

 

 

 

 

 

 

 

 

 

SSG의 포스트시즌 탈락

추신수의 현역 생활 마감

 

 

 

 

하지만 5위 결정전 9회 초

추신수는 대타로 경기에 나섰다.

 

이 타석에서 추신수는

삼진으로 물러났고 SSG는

9회 초 득점에 실패하며

3 : 4로 패했다.

 

추신수는 팀의 패배 그리고

포스트시즌 탈락이라는

아픈 결과를 함께 하며

현역 선수로서 이력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분명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마무리지만, 추신수가 야구

선수로 쌓았던 이력의 가치는

매우 크다.

 

추신수의 프로 선수 생활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고

거대한 성공 서사가 함께 했다.

 

추신수는 고교 졸업 후 바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했다.

 

당시 추신수는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우승 멤버였다.

 

그 우승 멤버에는 오랜 세월

우리 야구의 주축 선수로

국가대표로도 큰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1982년생 야구 황금세대

 

 

 

황금세대로 불리던 1982년생들이

그 안에 다수 있었다.

이대호, 정근우, 오승환 등이

포함된다.

 

추신수는 루키 리그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섰다.

 

과정은 험난했다. 그는 손꼽히는

팀 내 유망주였지만, 메이저리그

콜업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마이너리그에서의 기간도

길어졌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차이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여기에 추신수는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이기도 했다.

길어지는 마이너리그 생활은

분명 큰 고통이었다. 여기에

부상도 있었다.

 

훗날 그는 그 시기 KBO 리그

복귀도 고려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포기라는 단어가 아른거리던

시점에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콜업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그가 소속됐던 메이저리그

구단인 시애틀은 이치로라는

최고 외야수가 팀 중심 선수로

자리하고 있었고 그의 포지션은

공교롭게도 추신수와 겹쳤다.

 

상시 출전을 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이런 추신수에게

클리브랜드로의 트레이드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힘겨운 마이너리그 생활 후

메이저리그 성공 시대

 

 

 

2006년,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는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했고

팀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2001년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 후 5년여의 세월의 흘러

추신수는 마침내 메이저리거로

그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가 만약 긴 마이너리그

생활에 지쳐 KBO 리그 복귀를

택했다면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볼 수 없었다.

 

이후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의 길을 걸었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타자 평가

지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겸비한

OPS형 타자로 최적화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16시즌을 활약하며 통산

1671개의 안타, 그 중 218개의 홈런과

782타점, 961득점, 157개의 도루까지

의미있는 기록을 쌓았다.

 

이 기록들이 쌓이는 기간

추신수는 올스타전 멤버로

선발되기도 했고 사이클링 히트

기록도 더했다.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가 되기도 했고

WBC에서도 활약했다.

 

또한, 추신수는

대형 FA 계약을 통해 엄청난

부도 축적했다. 말 그대로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추신수였다.

 

이런 추신수의 KBO 리그행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팀

텍사스와의 계약이 끝난 이후

추신수는 은퇴와 또 다른 팀과의

계약 사이에서 고민했다.

 

이미 선수로 모든 걸 이룬

그로서는 은퇴를 택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전격적인 KBO 리그 행

 

 

 

텍사스와의 계약 마지막 해

부상으로 아쉬운 기록을 남겼지만,

풍부한 경함과 뛰어난 선구안

장타 생산력은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이 있었다. 1년 계약이라면

또 다른 팀을 찾을 가능성도 있었다.

 

여기서 추신수는 SSG 랜더스행을

택했다. SSG는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이후 재창단 과정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팀 전력 강화와

마케팅 역량 강화를 위해

추신수 영입에 나섰다.

 

추신수는 2007 시즌 해외 진출

선수 특별 지명을 통해 SSG의

전신인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은 상황이었다.

 

SK를 인수한 SSG는 이 지명권을

적극 활용했다. 오랜 세월

미국에서 생활했고 모든

생활 기반과 가족들의 일상이

미국에 맞춰져 있는 추신수로서는

한국행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2021 시즌 개막을 앞둔

시점에 추신수는 KBO 리그행을

결정했다.

 

SSG는 그에게 27억 원의

연봉으로 그를 예우했다.

 

추신수는 그 연봉 중 10억 원을

야구 발전 기금으로 기부했다.

이를 통해 추신수는 한국행이

결코 돈과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추신수는 고국에서의 선수 생활

마무리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다만, 전성기를 지난 상황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없는

점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부산 출신으로 연고지 팀

롯데에서의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도 한편으로 가지고 있었다.

 

 

 

 

 

 

KBO 리그에서

선향 영향력

우승의 영광까지

 

 

 

하지만 추신수는 한국에서

현역 선수 생활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SSG 선수가 된 추신수는

KBO 리그에서 높을 출루율과

장타 생산력으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였다.

 

추신수는 이런 성적 외에

팀에서는 정신적인 지주로

계속되는 선행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추신수가 앞장서 주장한

경기장 시설 개선과 관련한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의 소속팀 SSG는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최고의 클럽하우스

환경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추신수가 함께 한 SSG는

2022 시즌 시즌 개막 후 줄 곳 1위를

지키며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사상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다. 이후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한

SSG는 SSG 랜더스라는

팀 명으로 첫 우승의 이력을

쌓았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하지

못했던 우승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아쉽게 마무리 된

현역 선수생활의

여정

 

 

 

이렇게 KBO 리그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던 추신수였지만,

40살로 향하는 나이와 그에 따른

기량 저하를 피할 수 없었다.

 

부상 횟수도 늘었고 성적도 점점

내림세를 보였다.

 

2023 시즌이 어쩌면 그의

마지막 현역 시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추신수는 구단의

강력한 요청과 보다 명예로운

선수 생활 마무리를 위해

1년 더 현역 선수 생활

연장을 택했다.

 

이를 위해 적극적을 부상 치료와

재활에 나섰고 은퇴 시즌인

올 시즌에도 외야수로서 수비에도

더 많이 나서려 했다. 은퇴 시즌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부상의 그림자는

추신수의 바람을 제대로

이룰 수 없도록 했다.

 

오랜 세월 경기자에서 함께 한

그의 몸은 올 시즌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 의지와는

다른 문제였다.

 

시즌 후반기 추신수는

상당 경기를 결장했고

대타로 주로 나서야 했다.

 

하지만 그는 팀의 올 시즌

마지막 여정까지 함께 했다.

순우 경쟁 중인 팀을 위해

은퇴경기와 은퇴식도

내년으로 미루는 결정을 했다.

 

그에게는 야구가 전부였고

팀이 우선이었다.

 

아쉽게도 그의 바람대로

SSG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하면서 그 마지막이

아쉬움으로 채워졌지만,

그가 현역 선수로서 쌓았던

이력과 야구 선수로서의

진정성은 야구 팬들

모두에 마음에 남아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 선수로

활약하는 기간 시즌 중 음주운전

혐의로 적발되어 논란이 되기도

아들들의 한국 국적 포기, 그의

발언과 관련한 논란도 있었다.

 

이에 대한 비판은 분명 받을 수

있지만, 야구 선수 추신수는

우리 야구 역사에 남을

이력을 쌓았고 지속적인

사회 공헌과 선수로서

모범적인 모습은 귀감이 될 만큼

훌륭했다.

 

 

 

 

 

 

기대되는 앞으로 여정

 

 

이제 그는 그의 별명인 추추 트레인처럼

쉼 없이 달려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가 앞으로 지도자 등 야구와

관련한 일을 하게 될지

또 다른 삶을 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가 어떤 삶을 살던

야구 선수 추신수의

존재감은 오랜 세월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 SSG 랜더스

글 : 지후니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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