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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관련한 외신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소식은 개인들의 총기와 관련한 살해와 사고 관련한 내용이다. 최근 발생한 텍사스주의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18살의 고교생이 총기를 들고 학교 교실에 난입해 수십 명의 학생과 교사를 살해했다. 그 현장에 많은 경찰들이 있었지만, 경찰은 총기 난사가 아닌 인질극으로 상황은 오인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이 총기 난사사건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됐지만, 그는 사건 발생 전 자신의 개인 SNS에 총기 난사 범행을 예고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의 범행에 대한 죄의식이나 거리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에 미국 내에서는 총기 규제와 관련한 여론이 다시 강하게 일어났다. 미 의회는 2022년 6월 총기 구입이 가능한 18세부터 21세까지 연령대의 구입자 신원 조회를 강화하고 정신병력이 있거나 범죄 이력이 있는 위험 총기 구입을 제한하는 내용의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다양한 루트의 총기 구입 경로를 모두 통제할 수 없고 총기 구입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성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상당수 미국인들에게 총기 소유는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다. 미국 헌법에도 총기 소유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인구 대비 총기 소지 비율이 세계 1위고 전 세계 총기의 40프로 이상이 미국에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일상에서 총기는 사실상 생활 필수품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기 규제를 한다 해도 미봉책이 그칠 뿐이고 법의 허점이 존재하는 속에 총기 사고와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그 대상은 불특정 다수를 향하고 있고 힘없는 학생들이 피해자가 되고 있다.

 

 



즉, 총기에 의한 무고한 희생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예기다. 그 위험성이 분명하지만, 총기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내용과 함께 미국 역사에서 총기 소유가 가치는 의미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 대륙으로 찾아온 청교도들이나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찾아온 세계 각국의 이주자들이 미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이 공존하는 국가가 미국이다. 그 이민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오랜 세월 살아가던 인디언들에게는 침략자였다. 이민자들과 인디언들이 공존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점차 인디언들의 영역이 침범당하자 그 관계는 강력한 대립과 대결로 변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살육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민자들은 인디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장이 필수적이었다. 

개인의 무장은 인디언뿐만 아니라 새로운 개척지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동물을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또한, 본격적인 서부 개척 시대가 열린 이후 사람들이 서부지역으로 빠르게 진출하면서 개척자들이 자리한 곳의 부실한 치안상태도 개인의 무장을 필요로 하게 했다.

정착민들에게 강도와 범죄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은 총기였다. 심지어 개척지의 치안을 담당하는 존재인 보안관 역시 필요시 총기를 사용했다. 총기는 신대륙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었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게 새워진 총기 소유의 자유 전통은 미국의 역사 속에 완벽하게 뿌리를 내렸다.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한 총기 소유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 정치세력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이런 개인 총기 소유가 더 본격화된 계기는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 전쟁이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긴 전쟁을 치렀다. 개전 초기 미국 연방군은 병력 규모나 화력 면에서 영국군에 크게 밀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지킨 건 무장한 민병대였다. 그 민병대는 이후 연방군에 편입되어 영국군과의 대결에서 주축을 이뤘다. 

여기에 미국의 남북 전쟁은 총기의 보급은 더 가속화했다.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은 총기 제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했다. 자연스럽게 기존에 사용되던 구식 총기들이 시장에 유입되고 거래됐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 역시 개인 총기를 가지고 전역했다. 총기 소유가 보편화됐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총기와 관련한 사건과 사고를 불러왔다. 1929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마피아 조직 간 총격전과 대량 학살 사건은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미국 국민들은 총기의 위험성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1934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최초의 총기 규제 관련 법인 국가 총기법이 제정됐다. 통제받지 않던 총기 소유가 제도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 법안은 자동화기 규제를 강화하는 수준으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었다. 최초의 총기 규제 관련 법이었지만, 그 한계성은 명확했다. 이는 향후 제정되는 총기 규제 관련 법안의 불완전성을 상징했다. 

불완전한 총기 규제 속에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의 대상은 유명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건은 1963년 11월 22일 발생한 미국 대통령 케네디 암살사건이었다. 당시 텍사스 댈러스를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은 영부인 재클린과 함께 오픈카를 타고 시내 카퍼레이드를 하는 중이었다. 그 순간 대통령 일행이 지나가는 길에 자리한 건물에서 암살범 오스월드는 자신의 소총으로 총격을 가했고 그중 2발이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저격 상황은 실시간으로 정국에 생중계됐고 전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케네디는 지금도 미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 중 가장 위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대로변에서 한낮에 총격을 당하는 장면은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은 이후 저격범 오스왈드가 총격을 당하고 사망하는 등 각종 의혹들이 가득했지만, 오스월드의 단독 범행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문제는 오스월드가 저격에 사용한 총기를 우편을 통해 너무 쉽게 구입했다는 점이었다.

오스월드는 미 해병에 입대해 몇 년간 근무했고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동경해 망명을 신청했고 소련에서 거주한 이력도 있었다. 냉전체제가 유지되는 시점에 어떻게 보면 위험인물이었던 그였지만, 그는 너무 쉽게 총기를 구입해 사용할 수 있었다. 총기 규제와 관련한 여론이 다시 일어났다. 

 

 

 



그 와중에 1968년 4월 4일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총기에 의해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암살당한 J.F 케네디의 동생이자 유력 대권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같은 해 6월 6일 총기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새로운 총기 규제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1968년 제정된 법안에서는 총기 구입 시 신원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했고 심신미약자 및 마약 중독자 등의 총기 구입을 제한했다. 또한, 중화기의 우편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 총기가 밀거래되고 있고 다양한 권총들이 유통되는 실정에서 총기 사건의 공포에서 미국인들이 벗어난 건 아니었다. 

총기 암살사건은 다시 이어졌다. 1981년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정신병력이 있는 암살범 힝클리의 권총에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레이건은 가까스로 치명상을 면했다. 20대 청년이었던 힝클리는 정치적 이유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배우의 관심을 얻기 위해 범행을 했다는 진술로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이후 그는 40년간 치료감호를 받았고 현재 석방됐다. 이 사건 과정에서 백악관 대변이었던 브래디는 힝클리의 총탄에 머리를 맞고 불구의 몸이 됐다. 

이후 브래디는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총기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주도로 또 다른 총기규제법제정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노력은 긴 세월이 흘러 결실을 맺었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 그의 이름을 딴 브래디 권총 폭력 예방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총기 규제의 범위를 권총으로 확대했다. 총기 구입 시 신원 조회 절차와 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범죄자, 정신이상자, 부적격자를 판정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해 총기가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을 줄이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한계가 분명했다. 여전히 총기 소유가 합법인 미국에서 총기 사건의 가능성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부적격자를 선별한다고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구입 루트에서만 가능하다. 미국의 총기 구매의 상당 부부분은 개인간의 사적 거래 밀거래가 많다. 최근에는 3D 프린터를 이용하는 사제 총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총기 유통의 다양성을 법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한, 연방법의 규제와 달리 각 주마다 총기 규제 관련 법안이 다른 점도 총기 규제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또한, 미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강력한 로비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영향력도 총기 규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NRA는 보수적인 단체로 총기 소유의 자유와 권리를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적인 네트워크와 행사를 통해 총기에 대한 홍보와 대중들의 접촉면을 넓히는 한편, 막대한 정치자금의 지원하고 있다.

특히,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공화당과 NRA는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총기 규제에 적극적인 민주당이 관련 법 제정을 시도할 때마다 공화당에 막혀 좌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NRA는 심지어 총기 관련 사건이 발생해도 그런 위험에 대비하게 위해 총기를 소유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며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총기 관련 사건은 여전히 미국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총기 사건은 양상은 점점 특정 대상이 아닌 아무 연관이 없는 불특정 다수와 무고한 시민들을 향하고 있다. 범인들의 연령대도 10대로 내려가고 있다. 실제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 상당수는 10대 청소년이다. 그들은 너무 쉽게 중화기를 구입하고 심지어 총기 사격을 연습하기도 했다. 또한, 개인 SNS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들은 사회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고 극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즉, 언제든 동일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 

 

 

 


1990년 이후 청소년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비일비재하고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장소에서도 총기 난사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 수십 명이 사망한 플로리다 성소수자 클럽 총기 난사 사건, 2017년 10월 라스베이거스의 공연장에서 일어난 최악의 총기 난사사건도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사건은 이전과 달리 비교적 부유한 백인 남성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즉,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렇게 심각한 총기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와중에서 실질적인 총기 규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총기 소유가 합법이고 규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이를 위한 법을 제정해야 할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움직임에 소극적이다.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강화된 총기 규제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에서 총기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미국인들이 그 위험성과 규제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지속적 여론이 만들어지고 지속적으로 정치권을 압박하지 않는다면 총기 관련 사건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건 아무리 역사와 나라의 이념 가치가 소중하다 해도 인간의 생명보다 소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자신의 무력으로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할 서부개척 시대도 아니고 무법자들이 활보하는 시대도 아니다. 법과 제도가 있고 공권력이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시대다. 앞으로 미국에서 총기와 관련한 보다 전향적인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사진 : 픽사베이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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