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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구단 역사는 프로야구 원년과 1990년대까지 절대 강자의 자리를 유지했던 해태 타이거즈를 빼놓을 수 없다. 해태 타이거즈는 선동열과 이종범 등 다수의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고 강력한 전력으로 9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해태의 위세에 눌려 당대 또 다른 강팀이었던 삼성 라이온즈와 빙그레 이글스 등이 한국시리즈에서 패배의 아픔을 수차례 맛봐야 했다. 

하지만 해태의 시대는 모기업의 재정난 속에서 저물고 말았다. 선동열, 이종범을 해외 리그에 보내고 받은 이적료 등으로 근근이 버티던 해태는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며 더는 야구단을 운영할 수 없는 위치에 놓였다. 결국, 2001시즌 도중 해태 타이거즈는 KIA에 인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구단명에서 해태는 사라졌지만, KIA는 구단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팀 병을 바꾸지 않았고 KIA 타이거즈로 구단명을 정하며  해태 타이거즈의 역사를 이어가는 걸 명확히 했다.

해태 시절보다 한층 풍족해진 재정상황과 구단의 지원이 있었지만, KIA 타이거즈는 성적 면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FA 시장에서 다수의 선수를 영입하고 일본 리그에서 활약하던 이종범의 복귀까지 이뤄냈지만, 성적은 기대와 달랐다. 해태 시절의 기억은 먼 옛날이야기가 됐다. 

이런 KIA가 2009 시즌 마침내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당시 KIA는 막강한 선발진과 시즌 중 트레이드로 영입한 거포 김상현이 몬스터급 활약을 하며 타선을 이끌면서 정규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친 KIA는 그 기세를 한국시리즈에 이어갔다. 

 

 

 



KIA는 상대는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빛을 발하던 SK 와이번스였다. SK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김성근 감독의 짜임새 있고 치열한 야구를 하는 팀이었다. SK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절대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한국시리즈 승부는 7차전으로 이어졌다. 그 7차전도 팽팽한 동점으로 9회까지 이어졌다.

연장 승부가 예상되는 시점에 타자로 등장한 나지완은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터뜨렸다. 타이거즈의 이름으로 이룬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순간이었고 나지완은 그 순간의 주인공이었다. 2009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 장면은 KBO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지완은 2017 시즌 KIA 타이거즈가 11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때에도 시리즈 흐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홈런포로 다시 한번 KIA 타이거즈 팀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나지완은 KIA가 해태 타이거즈의 유산을 넘어 스스로 강팀의 우승 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나지완이 2022 시즌 도중 현역 선수 은퇴를 발표했다. 2008 시즌 KIA에 입단해 KIA 선수로만 활약했던 원클럽맨이었던 그는 KIA 선수로 끝까지 남았다. 한국시리즈 영웅으로 기억되는 그였지만,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었다. 올 시즌 부활을 기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는 엔트리 한자리를 차지하기보다는 깔끔한 마지막을 선택했다. 

나지완은 2008 시즌부터 2022 시즌까지 통산 0.277의 준수한 타율에 221홈런 862타점을 기록했다. 그의 221홈런은 KIA 타이거즈 역대 통상 홈런 신기록이다. 나지완은 돋보이는 거포는 아니었지만, 매 시즌 20홈런 80타점 이상이 기대되는 타자였고 꾸준함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중심 타선에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타자였다. 

나지완은 2018 시즌 26홈런 78타점을 기록한 후 2019 시즌 타율이 1할대로 급락하고 6홈런 17타점으로 급격한 내림세를 보였다. 부상 등 이유도 있었지만, 빠른 에이징 커브의 모습이었다. 마침 그의 부진과 함께 KIA는 젊은 선수들의 야수진에서 중용하기 시작했고 그의 입지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지완은 외야수지만, 부족한 수비 능력이 항상 아쉬움이었다. 지명타자 포지션은 최형우라는 큰 산이 있었다. 뛰어난 타격 능력으로 수비의 부족함을 메워야 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지면서 그의 활용이 애매해졌다. 나지완으로서는 선수 생활 지속 여부가 불투명했다. 

2020 시즌 나지완은 그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게 하는 활약을 했다. 137경기에 출전한 나지완은 17홈런 92타점으로 중심 타자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해 KIA는 팀 타선의 부진으로 고전했다. 하지만 나지완과 최형우 두 베테랑이 타선을 이끌며 분전했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순위 경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 비록, 팀은 6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에 실패했지만, 나지완의 반등은 놀라웠다. 그 해 나지완은 지명타자가 아닌 좌익수로 많은 경기에 나서며 외야수로서 경쟁력도 보여줬다.

이 흐름을 2021 시즌까지 이어간다면 두 번째 FA에서도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2021 시즌 나지완은 큰 부진에 빠졌다. 1군에서 31경기 출전한 나지완은 1할대 빈타에 홈런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는 사실상 1군 전력에서 밀려났다. 결과적으로 2020 시즌의 부활은 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2022 시즌 나지완은 다시 한번 부활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는 2021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FA 재수생인 그로서는 올 시즌이 중요했다. 하지만 부상 회복이 더뎠고 좀처럼 1군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지완은 최근 KIA의 타격 페이스가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나지완은 팀 타선의 분위기를 끌어올려 줄 카드가 될 수 있었다. 또한, KIA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기억이 있는 나지완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지완의 은퇴는 KIA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가 부진할 때 많은 KIA 팬들이 그에 대한 질책을 하기도 했지만, 두 번의 한국시리즈에 보여준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나지완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어렵다. 그가 최근 부진했다 해도 두 번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KIA 타이거즈의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KIA 구단은 그의 은퇴식과 함께 그를 예우할 예정이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지완은 여전히 우타 대타로 경쟁력이 있고 한 방 능력이 있다. 엔트리가 확대되는 시점에 활용도가 있었다. 보통이라면 한번이라도 타석에 더 서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미련 없는 현역 은퇴를 위해 1군 출전의 기회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 할 수도 있다. 나지완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팀 사정과 자신이 팀에 큰 보탬이 안되는 점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KIA 선수로서만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했고 빛나는 선수 이력을 쌓았다. FA 계약시에도 빠르게 잔류를 결정했다. 그에게 KIA는 각별했다. 그는 팀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시즌 중 은퇴였다. 그는 이렇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지만,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하는 7차전 끝내기 홈런의 기억은 영원히 남겼다. 이 기록은 역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지완은 성공한 야구선수였다. 


사진 : KIA 타이거즈,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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