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충격적인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으로 국내에서의 열기는 식었지만, 2023 WBC가 이전 대회를 크게 능가하는 흥행과 함께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야구팬을 보유한 미국과 일본의 선전도 영향을 주고 있지만, 경기의 박진감과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마치 월드컵 축구를 연상하게 하고 있다. 이제는 WBC가 야구의 월드컵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WBC는 애초 이벤트성 성격이 큰 대회였다. MLB가 주관하는 이 대회는 프로선수들이 모두 참가하는 국가대항전을 통해 야구의 저편을 넓히려는 취지로 2006년부터 시작됐다. 시작은 거창했지만, 프로리그가 활성화된 나라가 전 세계에서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국가별 수준차가 매우 컸다. 참가국 수준도 많지 않았다. 여기에 대회 시기가 3월로 정해지면서 선수들의 참가에 제약이 발생했다.
이 시기는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시기로 선수들의 컨디션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는다. 대회 준비를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루틴으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부상의 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고액의 연봉을 받는 스타 선수들의 참가가 부진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 역시 선수들의 출전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대회 주체측은 투수들의 투구 수를 제한하는 등의 규정으로 선수들을 보호하고 출전 선수 규정에 있어 국적을 유연하게 적용하면서 야구가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들의 참가를 유도했다. 하지만 흥행에 보다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팀을 크게 배려한 경기 일정과 심지어 편파 판정 논란도 있었다. 수익 배분 측면에서도 MLB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구조가 다른 나라들의 불만을 불러왔다.
시작은 불안정했지만, WBC는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관심도를 높여왔다. 야구 국가대항전에는 매우 진심인 한국과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해당 국가 기업들의 스폰서 참여로 대회의 수익성도 제고됐다. 야구 저변을 넓히려는 목적에 더해 돈이 되는 대회로 WBC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우리나라는 2006년, 2009년 WBC에서 당시로는 높은 벽과 같았던 미국과 일본 등 야구 강국들에게 승리하며 4강과 준우승에 오르는 성과를 내면서 프로야구가 다시 한번 부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2023 WBC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회가 6년 만에 열렸다. 야구 국가대항전에 목말랐던 야구팬들의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대회에 임하는 나라들의 자세도 매우 적극적으로 변했다. 아시아 국가들 외에 WBC 참가하는 선수들은 대회에 대한 절실함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느슨한 국적 규정으로 인해 국가대표의 의미도 다소 퇴색되는 면이 있었다. 이에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23 WBC 나서는 선수들은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으로 선수단의 단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도미니카나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선수들도 강한 동료애와 투지를 보였다. 미국 역시 스타 선수들이 대거 대회에 참가하면서 우승에 대한 열망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경기의 박진감을 더했고 흥미를 더했다. 특히, 미국을 포함해 메이저리거들의 다수 포함된 중남미 국가들이 속한 예선 C조와 D조의 경기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연상하게 하는 수준 높으면서 치열한 경기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의욕으로 부상 선수가 나오는 등 문제도 있었지만,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도 아시안 국가들 못지않은 대회에 대한 진정성을 보였다.
명승부도 속출했다. 4강에 오른 멕시코와 미국은 8강전에서 기적 같은 대 역전성을 일궈냈다. 야구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경기 내용이었다. 야구 변방국들의 약진도 돋보였다.
예선 A조에서 메이저리거가 다수 포함된 네덜란드와 홈 팀 대만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8강에 오른 이탈리아가 돋보였고 예선 B조에서는 우리나라에 충격적인 패배를 안기며 8강에 오른 호주가 눈길을 끌었다. 이탈리아는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활약할 당시 포수로 함께 했던 마이크 피아자가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우리 야구팬들에게도 관심을 받았다. 호주는 겨울에 열리는 자국 프로리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구성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이 밖에 선수들 대부분이 별도 직업을 가지면서 야구를 병행하는 체코 야구 대표팀의 스토리도 대회 내내 화제가 됐다. 이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예상 이상의 경기력은 야구의 저변 확대라는 WBC의 취지에도 잘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WBC는 야구 국가대항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MLB와 다수의 스폰서 기업이 있는 일본의 입김이 강한 대회의 한계성을 극복해야 할 문제다. 대회 주체측은 흥행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미국과 일본의 결승전을 위해 8강전 대진 일정을 변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다른 나라들이 이에 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팀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면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는 향후 WBC에서 대표팀 차출에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3월 대회 개최에 대한 개선을 논의할 필요도 있다. 선수들이 본래 루틴을 깨고 대회를 준비하는 건 분명 큰 부담이다. 이에 따른 부상 위험과 함께 그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WBC 참가 후 해당 시즌에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다수 있었다. 주요 나라들의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 대회를 개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MLB가 대회의 주도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대회 구조 역시 참가국들의 의사가 다양하게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야구 국가대항전의 보편성과 확장성을 더 크게 할 수 있다.
이런저런 문제가 상존하긴 하지만, WBC는 야구 국가대항전도 선수와 각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야구 수준을 높이는 순기능도 있다. 실제 2023 WBC에서는 각 나라의 경기력이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종합하면 WBC는 앞으로 지속 가능한 야구 국가 대항전으로의 위상을 유지하고 더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나라들도 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KBO 리그의 수준을 이 대회를 통해 분명히 깨달은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 : WBC,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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