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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만들어지고 마시는 술 중 하나가 와인, 포도주다. 와인은 대표적인 과실주로 주로 포도의 즙을 발효시켜 만드는 양조주다. 과거에는 포도주를 의미했지만, 여타 과실 등을 발효해 만드는 술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와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인류 문면의 시작과 그 맥을 함께 한다. 각종 유물과 기록들을 종합해 와인의 시작은 기원전 7천년 경 유럽 조지아를 그 기원으로 하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와인을 마셨다는 주장도 있지만, 신석기 시대 조지아에서 채집활동을 통해 수집한 포도를 토기에 보관하다 그 포도가 발효되어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와인을 음용한 것이 시초라는 와인 기원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에 조지아의 와인인 지금도 지금의 양조장 등에서 관리하는 와인이 아닌 와인이 최초로 등장할 당시처럼 인위적 손길을 최대한 배제하는 내추럴 와인, 자연산 와인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조지아에서 시작된 와인의 역사는 조지아 와인이 여러 교역로를 통해 각 지역으로 수출되고 알려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와인 수입에 적극적이었던 이집트에서 와인 제조를 위한 포도농장 등 재배 시스템을 만들고 생산된 포도를 압착해 포도즙을 만들어 발효시켜 와인으로 만드는 현대적 와인 생산 기술을 도입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와인이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수 있었고 보급이 확대될 수 있었다. 

 

 

 

 

 

 

인류문명과 함께 한 와인의 역사 



하지만 와인의 생산은 한정적이었고 생산을 위한 시설에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다. 이집트에서도 국가가 그 생산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고 소비층은 권력자들에 한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와인은 매우 귀한 술이었고 귀족들의 전유물이 됐다. 

이 와인이 서유럽의 중요한 술로 자리하고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 건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부터다. 고대 그리스의 중요한 신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는 그 자체가 와인의 신이자 축제의 신이었다. 디오니소스의 존재는 와인이 중요한 행사 등에서 자주 마시는 술이었음을 의미한다. 디오니소스의 존재감을 고대 로마시대 바쿠스 신으로 계승된다. 이렇게 대중성을 가지게 된 와인은 당연히 더 많은 생산과 유통을 위해 포도 재배법보다 와인을 제조하는 양조장 등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고대 로마시대 기독교가 공인되고 이후 국교가 되면서 와인 관련 산업이 더 발전할 수 있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와인인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종 종교 의식 등에서 와인이 보편적으로 사용됐고 기독교적 가치관이 전 유럽에 뿌리내리면서 와인 역시 일상 속으로 깊숙이 자리할 수 있었다. 

이 와인은 고대 로마 제국이 동. 서로마로 나누어지고 서로마가 멸망하는 혼란기를 거치면서 교회나 수도원 등을 통해 그 기술이 전해지고 발전했고 하나의 산업이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가 점점 와인의 주 생산지로 부상하게 됐다. 

이는 왕권과 교황권의 대립과 왕권의 신장 등 중세 유럽의 역사 흐름과 관련이 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서유럽의 패권은 새롭게 부상한 프랑크 왕국이 장악했다. 프랑크 왕국은 프랑스의 기원이 된다. 프랑크 왕국은 교황으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아 신성로마 제국으로 정통성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기 와인산업의 교회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프랑스 와인이 그 존재감을 높인 건 1309년부터 1377까지 교황청이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의해 프랑스 지역으로 강제 이주됐던 아비뇽 유수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 기간 교황은 로마를 떠나 프랑스에 머물러야 했다. 이는 중세 유럽에서 전 세계 교회의 수장이자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엄청난 권위를 가졌던 교황권의 추락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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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의 성장, 프랑스 와인의 발전 



그전까지 교황은 교회의 수장이나 영적인 지도자를 넘어 그 권위를 이용해 중세 유럽 전반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이기도 했다. 각 나라의 국왕들은 교황의 책봉을 받아야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교황은 자신의 권위를 바탕으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등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교황이 주도했던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고 각국 왕들의 힘이 커지는 상황에서 교황의 현실 정치에서 권력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갔다. 한때 국왕을 파문시켜 그들 굴복시켰던 교황의 힘은 점점 줄어들었고 급기야 교황청마저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프랑스는 그곳에서 70여 년을 머문 교황청의 영향으로 와인의 산지로 새롭게 탄생했다. 특히, 포도 재배의 최적지였던 브르고뉴 지방은 새로운 와인 산지로 주목받았다. 천해의 자연환경과 프랑스만의 토질, 교황의 선택한 와인이라는 권위가 더해지며 브루고뉴 와인은 유럽 최고의 와인이 됐다. 당연히 프랑스 와인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세계 각국으로 프랑스 와인이 수출됐다. 이는 프랑스 와인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 됐고 프랑스에 막대한 부를 안겨줬다. 

 

 

 

 

 

 



프랑스 와인 산업의 호황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었던 100년 전쟁의 원인이기도 했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00년 넘게 이어진 양국의 전쟁은 당시 브루고뉴 지방의 영주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국왕의 책봉을 받는 영주가 잉글랜드 국왕이 되는 상황에서 브루고뉴 지방이 잉글랜드로의 편입을 결정했다. 이는 프랑스 영토 내 잉글랜드 영토가 존재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마침 브루고뉴 지역인 대표적 와인 생산지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곳이었다. 프랑스로서는 이 지역의 지배권을 놓칠 수 없었고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주요 원이었지만, 백년 전쟁은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기도 했다. 그만큼 와인산업이 유럽에서 차지는 비중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고 프랑스 와인이 가지는 가치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이에 양질의 포도를 생산할 수 있는 프랑스만의 토질과 자연환경을 뜻하는 테루아는 프랑스만의 포도 재배 시스템을 뜻하는 단어가 됐고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생산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와인의 생산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을 넘어 미국과 남미 아시아까지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프랑스 와인은 명품 와인으로 그 입지를 잃지 않았다. 

 

 

 



세계 와인시장의 주류, 프랑스 와인



이렇게 명품 와인의 자리를 차지한 프랑스 와인이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하는 탄산이 더해진 와인인 샴페인의 원산지가 됐고 와인을 보관하는 병 마개인 코르크를 개발하는 등 와인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 프랑스의 와인의 전통은 시대를 지나며 더 공고해졌다. 특히, 보르도 와인은 철저한 품질 관리와 등급제 시행으로 명품 중의 명품 와인으로 자리했다. 지금도 와인하면 보르도 와인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유럽의 역사와 함께 한 프랑스 와인은 현대로 접어들면서 시련기도 있었다. 미국에서 유입된 포도나무 해충인 필록세라의 창궐로 프랑스 포도 생산 농가에 큰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에 의해 광범위하게 프랑스 와인이 약탈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포도농가는 필록세라에 내성이 있는 미국의 포도나무와 프랑스의 포도나무를 접붙이기해 신품종을 개발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가 하면 나치 독일의 약탈에는 생산한 와인을 숨기는 등의 방법으로 그들의 와인을 지켜내기도 했다. 

이런 시련이 있었지만, 프랑스 와인인 그 명성을 잃지 않았다. 고급 와인 하면 프랑스라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76년 와인사에서 파리의 심판이라 불리는 사건은 프랑스 와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프랑스 와인업계는 이벤트 행사로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의 블라인드 시음 태스를 진행했다. 다수의 프랑스 와인 전문가가 포함된 판정단의 시음 결과는 놀라웠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품 와인들이 미국 와인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그 행사에서 미국 와인인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1976년 파리의 심판



와인에 있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인들로서는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이에 프랑스 언론들의 이 결과를 크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들이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세상이 그 사실이 알려졌다. 프랑스로서는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러 2006년 동일한 방식의 블라인드 테스트 이벤트가 열렸고 여기서도 미국 와인들이 프랑스 와인을 꺾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와인 맛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 와인은 여전히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명성은 뛰어난 품질 이전에 긴 역사적 전통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가는 프랑스의 와인의 역사는 단순한 술의 역사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역사, 문화, 사회상이 함축되어 있다. 

다만, 그 역사적 전통이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되고 모든 평가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져다주는 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고급 와인을 즐기는 것이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와인의 진정한 맛과 풍미를 편견 없이 즐기고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즉, 와인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 즐거움을 더해주는 수단이 되었을 때라 할 수 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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