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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큰 전란 속에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세 편의 영화 시리즈가 세 번째 작품 노량의 개봉과 함께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다. 다만, 세 번째 작품 '노량 죽음의 바다'는 한국 영화 최다 관객 기록을 가지고 있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명량'과 두 번째 작품 '한산'과  비교해 흥행에서는 다소 부족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작품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전투 장면이 지나치게 비장하고 거북선이 적선에 파괴되는 모습은 작위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전투신은 분명 이전 이순신 시리즈보다 발전되고 완성도를 더했지만, 몇 가지 부분으로 그 노력들이 가져지는 느낌도 있다.

한편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반일 선동 영화라고 한다든지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이 마치 부하들의 희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전쟁광으로 표현했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는 평도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노량의 흥행이 실패하길 바라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비록, 영화 개봉 당시부터 언론에서 제기됐던 손익 분기점에 근거해 현재 흥행 지표는 실패라 할 수 있지만, 500여만 명이 넘는 흥행은 최근 극장 개봉작들의 흥행 결괴를 고려하면 결코 떨어지는 수치가 아니다. 또한, 해외 상영과 OTT 스트리밍 등으로 추가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영화의 화제성 등에서 노량은 실패라 단정할 수 없다. 그전 개봉됐지만, 아직도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지속 흥행에 가려진 측면도 있다.

 

 





이순신 시리즈 완결편 '노량, 죽음의 바다'


이에 영화 노량은 이순신 시리즈 전체를 놓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단연코 이순신 3부작 시리즈는 결코 실패했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량의 흥행이 이전보다 못한 건 이순신의 최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을 잉태하고 있고 영웅을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도 그 저변에 있다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시작은 1598년 임진왜란 막바지 노량해전을 앞둔 시점의 조선 상황과 엇갈리는 이해관계 속 갈등으로 채워져 있다. 임진왜란의 후반부라 할 수 있는 채운 정유재란은 개전 초기 일본군이 육지와 바다에서 연전연승하며 기세를 올렸다. 특히, 한산도에 본영을 두고 남해안의 재해권과 일본군의 호남 및 서해 진출을 마고 있던 수군의 칠천량 해전에서 궤멸적인 패배를 당한 건 조선에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파직 후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재 기용된 이순신의 기적 같은 명량해전 승전과 육지전에서 조. 명 연합군 반격이 본격화되면서 전쟁 양상이 반전됐다. 이후 일본군은 초반 기세가 꺾이면서 남해안 일대로 후퇴했고 왜성을 쌓고 수성전을 전개했다. 이에 조명 연합군은 사로병진책으로 요약되는 작전으로 일본군 주력부대가 있는 울산성과 사천성, 순천성에 대한 대대적 섬멸전에 나섰다.

영화는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 공. 수가 뒤바뀐 대치 국면에서 전쟁의 원흉이었던 일본의 권력자 토요토미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일본군의 철수를 지시했다. 이에 임진왜란은 빠르게 종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토요토미는 마지막 순간까지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못했지만, 죽임의 순간, 아직 어린 아들에 대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일본의 패권을 놓고 대결했던 정적 도쿠가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요토미는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에 대한 철수를 유언으로 남겼다. 자신의 중요 가신들이 조선 침략전쟁에 참전한 상황에서 도쿠가와를 견제할 국내 가신 세력이 없었다. 그는 그의 아들과 가문을 지켜줄 수 있는 군대가 필요했다. 이후 조선의 일본군의 서둘러 본국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정치적 혼란기에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조선의 일본군들을 철수가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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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전 얽히고 섥힌 역학관계 그리고 이순신 


모두가 급한 상황, 순천성의 고니시는 완전히 발이 묶여 있었다. 육지에서는 조. 명 연합군이 압박을 지속하고 있었고 중요한 철수로인 바다는 이순신과 명나라 제독 진린이 이끄는 조. 명 연합 함대에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니시는 육상에서는 작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명나라 장군 유정에게 막대한 뇌물을 제공하며 공격을 멈추게 했지만, 정작 중요한 바닷길이 문제였다.

해전으로는 조. 명 연합 함대의 포위를 뚫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고립된 상황에서 비축된 식량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같은 규슈 지역의 영주인 라이벌 가토가 철군하면서 도쿠가와 편에 섰다는 점은 고니시를 더욱더 초조하게 했다.

이에 고니시는 명나라 제독 진린에 대한 회유에 나섰다. 그에게 많은 뇌물과 함께 공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제공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현실론을 바탕으로 철수 길을 열어줄 것을 주장했다. 사실 명나라 군들은 임진왜란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더는 무리한 공격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적의 최고 수장이 세상을 떠났고 철군하는 적을 공격해 피해를 입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명나라 군으로서는 이미 승리한 전쟁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남의 나라 전쟁에서 살아 돌아가는 게 더 중요했다. 

진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린은 이순신을 높여 부르는 등 크게 예우했지만, 전쟁의 마무리에 있어서는 견해가 달랐다. 그는 무리한 전쟁보다는 빠른 종전을 원했다. 이에 진린은 이순신을 여러 방법으로 회유했다. 더 이상의 피해는 무의미하고 이미 충분히 공을 세웠다는 논리로 이순신을 설득했다. 한편으로는 이순신에 마음속 한 편에 자리한 일본군에 대한 강한 원한과 분노를 덜어줄 명분도 제공했다. 

이순신은 삼도 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된 시점에 가족에 비극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의 아들이 일본군의 보복에 고향인 아산에서 살해당했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백의 종군길에 오른 이후 그를 만나기 위해 한양으로 상경하다 세상을 떠났다. 세상 그 어떤 슬픔보다 큰 것이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순신에게 아들과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 수 있었다. 여기에 그에게서 가장 힘든 시련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그 비극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영화적 상상이지만, 진린은 이순신의 아들을 살해한 일본군을 대면시켜 그의 원한을 풀어주는 방법을 택했다. 진린은 이순신이 전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마음 깊숙이 자리한 원한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순신은 마음속 원한을 스스로 억누르고 전쟁에 더 집중했다. 

 

 

고니시




조선 백성의 민의를 대변한 이순신의 전쟁 


이순신은 개인의 원한보다는 조선 백성들의 원한이 먼저였다.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 일본군은 침략자이자 가족들의 생명을 앗아간 원수였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수많은 조성의 백성들이 살해되고 노예로 끌려갔다. 재산상 피해도 막대했지만, 인적 손실이 너무 막대했다. 그와 관련해 많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발생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당연히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최고조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백성들에게 전후 여러 상황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7년의 전쟁 기간 이순신은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백성들과 함께 했다. 그들의 일본에 대한 원한과 원망은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없었다. 그건 백성들의 민심이었다. 이순신은 그 민심을 따른 것뿐이었다. 영화 속 이순신의 악몽에 등장하는 아들의 전사 장면은 조선 백성들의 비극을 함축하고 있다. 백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순순히 일본군의 철군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에게 전쟁의 끝은 침략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피해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이 전쟁을 보는 관점은 달랐다. 영화에서 잠깐 등장했지만, 선조와 대신의 대화는 적의 완전한 섬멸보다는 전후 정치적 관계에 시선이 가 있었다. 특히, 이순신은 당시 남인의 영수인 류성룡이 발탁했고 붕당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자신이 원치 않아도 특정 붕당 소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인과 대척점에 있었던 서인과 북인에 있어 이순신의 공이 커지는 건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이순신의 무력과 단단한 정치적 입지를 가지고 있는 류성룡의 조합은 다른 붕당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이순신이 순천성의 고니시를 굴복시키고 성을 접수한다면 그 위상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선조와 서인, 북인에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서 한때 파직당하고 고초를 겪었던 것도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게 관련되어 있었다. 

선조는 전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이 두려웠고 큰 전공과 함께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이순신이나 권율, 여타 의병장들의 활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 전란의 끝자락에 다수 의병장들이 숙청 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의 아들인 세자 광해군마저 정적으로 여기는 선조로서는 이순신과 광해군이 함께 하는 그림을 가장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치적 역학 관계를 이순신이 모를 리 없었다. 이순신으로서는 노량해전을 앞두고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긴 전쟁과 함께 개인적으로 큰 고초를 겪어 쇠약해진 몸에 가족들의 잇따른 불행, 전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이순신의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명분 그리고 


마음 한 편에서는 자신의 병력을 최대한 보존해 이를 발판을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도 고려할 수있었다. 만약, 이순신의 수군이 건재하다면 그리고 이순신이 한쪽에 힘들 실어준다면 조선 조정의 판도를 달라지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런 마음이었다면 마지막 전투를 무리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이순신의 그런 결정을 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 이순신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일본군을 섬멸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이 마음속 여러 잡념들을 물리치고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그리고 또 하나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중 전사들을 위해서도 그는 전쟁을 그대로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이순신은 전쟁 중 병사들의 공적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세세하게 기록해 장계를 올렸다. 이런 철저한 신상필벌은 군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었고 병사들의 동기부여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이순신에게 전사들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중간중간 전사자들을 언급하는 장면은 이순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의 흔들림 없는 의지는 전쟁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영화의 긴장감을 계속 높여나갔다. 이순신은 국내외 여러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안위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전쟁 후를 걱정하는 대외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이런 이순신 곁에는 그와 함께 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전투를 위한 여러 배경과 갈등의 시간이 흘러 영화는 마지막 클라이맥스 전투신으로 향했다. 역사적 사실대로 고니시는 사천성에 주둔하고 있었던 영주 시마즈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조. 명 연합 수군을 앞뒤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마침 시마즈의 부대는 임진왜란 기간 명나라 군도 두려워할 정도로 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부대였고 많은 승전을 기록했다. 특히, 칠천량 해전에서 시마즈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시마즈의 부대는 상대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두려움이 덜했고 이는 전쟁에 대한 큰 자신감으로 연결됐다. 

시마즈의 부대는 수백 척의 함선을 이끌고 노량해협으로 향했다. 이순신은 이 시마즈의 함대를 선제 타격하기로 했다. 그는 명나라 진린의 거듭된 회유와 소극적인 태도에도 이를 멈추지 않았다. 조선 수군의 독자 출전에 명나라 수군은 마지못해 따라야 했다. 

이렇게 시작된 노량해전은 장거리 포격전에 이어 근거리 접근전과 백병전까지 모든 전투의 장면이 망라됐다. 이순신의 한 척의 함선, 한 명의 수군이라도 더 지켜 다음 전투에 대비했었지만, 마지막 전투에서는 이를 깨고 전면전을 이끌었다. 이순신의 대의에 조선의 병사들이 동의하고 지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또한, 일본에 대한 원한은 누구 못지않았다. 

치열한 전투는 노량해협에서의 타격전에 이어 관음포 일대에 고립된 시마즈 함대에 대한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의 섬멸전으로 이어졌다. 시마즈의 함대는 수적 우위를 앞세워 조선과 명나라 수군 배에 상륙해 그들의 장점인 백병전을 전개했고 강하게 맞섰다.

하지만 이순신의 시의적절한 전략과 화력의 우위에 그들은 점점 밀렸다. 약속과 달리 고니시는 전투의 상황만을 지켜볼 뿐 참전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고니시의 부대는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남해 바다를 돌아 홀로 도주했다. 결국, 시마즈의 함대는 관음포에서 수배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나포됐고 수십척만의 겨우 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실감나는 전투 장면, 이순신의 전사 


이 전투 장면의 하일라이트는 이순신이 직접 북을 치며 독전하는 장면이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함께 했던 전우들의 환영을 목격했다. 그들은 영혼이 되어서도 일본군과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었다. 이런 환영은 이순신의 심장을 더 뜨겁게 했다. 이순신은 자신이 북을 치며 전투를 독전했다. 이는 조선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일이었지만, 스스로 적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는 이순신의 전사와 관련한 여러 추측들을 반영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은 역사적으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일각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린 자살설도 주장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가 전투 중 전사를 위장에 몸을 숨기고 말련에 은둔 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어쩌면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에서 자신의 다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전투가 적군과 아군의 배가 뒤엉키는 혼전인 상황에서 대장선도 예외일 수 없었다. 전투 과정에서 제대로 조준되지 않는 총탄과 포탄이 난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최후의 승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이순신이 아군의 사기를 꺾는 일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호전 과정 속에 유탄이 그에게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일본군들은 이순신의 얼굴을 알 수 없었다. 일본군이 이순신을 겨냥해 집중 공격을 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이순신의 북소리는 아군의 심장을 더 뜨겁게 했고 강한 의지와 전투력으로 연결됐다. 일본군에게는 좀처럼 끝나지 않은 조선군의 공세를 상징하는 소리로 그들의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그 북소리는 이순신이 적의 총탄에 맞아 쓰러진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역사 기록에 이순신은 그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에서 전쟁 상황을 걱정했고 그의 죽음을 알리지 말도록 유언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조선 병사들은 이순신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조선 병사들은 크게 울리는 북소리로 그의 건재를 확신했고 싸우고 또 싸웠다. 

 

 

 




이순신을 위한 진혼곡인 거대한 북소리


그 북소리는 그가 세상을 떠나고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강하게 울렸다. 대장선의 북소리는 다른 함선에서도 울렸다. 이 장면은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떠나가는 영웅에 대한 진혼곡으로 들렸다. 혹자는 큰 북소리가 영화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 북소리에는 영웅에 대한 깊은 슬픔이 함께 하는 느낌이었다. 

그 힘찬 북소리와 함께 그리고 이순신의 장렬한 최후와 함께 임진왜란도 마침표를 찍었다. 이순신은 전장에서 그 생을 다했다. 그렇게 구국의 영웅은 조선의 바다를 이순신의 바다로 만들었다. 아마도 일본군들에게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순신은 전쟁의 양상을 바꾼 인물이었고 그의 극적인 삶은 그를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가 수없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가운데도 많은 호응을 얻는 건 영화의 북소리처럼 그 삶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울림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이순신의 연작은 마무리되지만, 대중들은 그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다. 아마도 또 다른 이순신이 등장하며 그에 열광할지도 모른다. 영화 말미 깜짝 장면에서 이순신을 상징하는 대장별이 사라지지 않고 반짝이는 건 그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경의를 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이름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벅차게 하는 이름 이순신, 3편의 대작 시리즈는 한층 실감 나고 웅장한 전투 장면을 통해 그의 영웅 스토리를 더 빛나게 했다. 한편으로 한국 영화의 기술적 발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 등에 대한 혹평도 있지만, 우리 역사 최고 영웅에 대한 헌시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언젠가 더 멋지고 완성도 높은 또 다른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영화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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