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월 16일, 한 젊은 시인이 타국의 차디찬 감옥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윤동주,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저항 시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시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고 학생들의 교과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조사하면 그의 이름은 어김없이 상위권에 자리한다. 이런 윤동주지만 그의 생애와 작품들은 자칫 영원히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 동안 작품집을 발표하지 못했고 그 원고 또한 꽁꽁 숨겨야 했다. 그 작품들이 빛을 본건 그가 세상을 떠나고 광복이 찾아온 이후 1948년에 가서야 가능했다. 그의 삶을 살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지금은 중국의 조선족 자치주 용..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2023 카타르 아시안컵의 아쉬운 결과와 그로 인한 책임론은 이제 대회 기간 중 선수단 내분 사태까지 드러나며 점입가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신을 통해 보도된 선수단 내분은 축구협회가 이를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내용은 요르단과의 4강전을 앞둔 시점에 선수단 내 큰 다툼이 발생했고 그 중심에 손흥민과 이강인이 있었다. 두 선수의 다툼은 물리적 충돌과 몸싸움으로 번졌고 그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에 부상을 입었다. 이에 손흥민은 4강전에서 손가락을 테이핑을 하고 경기에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대회 후 선수단 내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이유가 밝혀졌다. 16강전과 8강전에서 연이어 극적인 승리를 ..
스프링 캠프가 열리기 직전 터진 김종국 감독의 충격적인 배임 수재 혐의 사건과 계약 해지 후 야구팬들의 큰 관심사였던 KIA 타이거즈의 신인 감독으로 이범호 현 KIA 타격 코치가 선임됐다. KIA는 2월 13일 이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3년에 계약금과 연봉을 포함해 총액은 9억원이다. 이범호 감독의 선임으로 KIA는 갑작스러운 감독 공백 사태를 빠르게 정리했고 시즌 준비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 또한, 내부 승격을 통해 외부 인사 영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내부 동요를 최소화하고 팀의 운영의 연속성도 확보했다. 이범호 감독의 선임은 프로야구에서도 최초의 1980년대 감독으로 감독의 세대교체 시작이라는 의미도 있다. KIA의 이런 선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고 현 상황에서 가장 최상의 선..
최근 드라마 등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고려의 역사, 고려 거란 전쟁에서 여러 인물들이 새롭게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과거 고려 거란 전쟁은 3차 고려 거란 전쟁의 마지막 전투, 귀주대첩으로 대표됐고 그 승리를 이끌었던 강감찬이 중심인물이었다. 흔히, 고려와 거란의 역사는 귀주대첩 강감찬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를 통해 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양규라는 위대한 장군을 알 수 있었고 위기의 고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하공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고려사에서는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았던 현종에 대해서도 다시 살필 수도 있었다. 현종은 고려 왕조의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겨야 했다. 그의 즉위 역시 강조의 정변으..
2023 카타르 아시안컵이 개최국 카타르의 우승과 함께 마무리됐다. 카타르는 이번 대회 돌풍의 팀, 요르단에 3 : 1로 승리하며 대회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카타르는 그들이 개최한 2022 월드컵에서 조 예선에서 3전 전패 탈락 이후 침체한 분위기를 되살리며 아시아 축구의 강자로 존재감을 분명히 했다. 카타르의 우승과 함께 이번 아시안컵은 아시아축구의 빅 4라 할 수 있는 한국, 일본, 이란, 호주가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하며 아시아 축구 판도의 변화 가능성을 보였다. 그동안 아시아 축구는 프로 축구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출범시킨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일부 중동 국가와 오세아니아에서 아시아 축구 협회로 편입한 호주가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이 구도는 세월이 흘러도 큰 틀..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는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가들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은 혼란한 사회를 안정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상을 만들고 설파했다. 그중 각 나라의 권력자들에게 적극 채용된 사상은 유가사상, 유교였다. 유교는 '수기치인',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것을 위정자들의 중요 덕목으로 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유교는 학문을 넘어 중국 왕조들의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여졌고 시대 흐름에 따라 발전을 거듭했다. 중국의 왕조들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중국의 문물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됐다. 그 속에서 문화, 예술, 정치 시스템, 학문도 포함됐다. 우리 역사에서도 유교는 삼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