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의 홍성흔은 화려하지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홍성흔은 1999시즌 두산에 입단한 이후 진갑용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르고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한 이후 팀은 물론이고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로 큰 활약을 했고 국가대표에도 선발되기도 했다. 홍성흔은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바탕으로 공경과 수비능력을 모두 갖춘 포수였고 두산을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포수로서 특히, 수비능력이 떨어졌고 시련이 시작됐다. 소속팀 두산은 그의 타격 능력을 살리기 위해 포지션 변경을 원했고 홍성흔은 포수자리를 지키고 싶어 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의반, 타의반 지명타자로 변신한 홍성흔은 2008시즌 0.331의 타율로 이 부분 리그 2위에 오르며 ..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두 편의 역사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와 장영실의 공통된 배경은 고려말 조선 초기다. 육룡이 나르샤는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기를 그리고 있고 장영실은 건국 초기 조선을 그리고 있다. 그 안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조선의 제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조선건국과 조선 최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세종대왕 시대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조선의 역사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의 창업과정과 권력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에 대한 피의 숙청을 단행한 인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함께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방원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악역이 되는 걸 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무리한 과정도 피하지 않았다. 비록 그 과정에서 악업을 쌓았지만, ..
메이저리그 진출과 일본 잔류, 심지어 국내 복귀까지 거론됐던 거포 이대호의 행선지는 메이저리그였다.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시애틀과 1년 계약을 맺으며 큰 무대에 대한 도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긴 기다림의 결과로 체결한 계약 조건은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선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이 보장되지 않은 마이너리그계약에 계약 기간은 1년에 불과하다. 스프링캠프 초청권을 얻었지만, 경쟁에서 밀리면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수 없는 마이너리그계약이다. 보장금액도 인센티브를 모두 획득해야 받을 수 있다. 오랜 기간 우리 리그와 일본리그에서 팀의 중심타자로 리그 탑 클래스 성적을 기록했고 국가대표 4번 타자로 활약했던 그의 이력을 고려하면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이대호로서는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크게 상할 수 있는 ..
단일 리그제인 우리 프로야구에서 진정한 우승팀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내야 한다. 정규리그 우승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현 제도하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지난해 삼성이 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5년 연속 우승을 이뤄냈지만, 최후의 승자는 그들이 아니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서 패한 삼성의 최후 순위는 2위였다. 정규리그에서 상당한 격차로 3위를 차지한 두산은 준PO,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에 모두 승리하며 우승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억은 올 시즌 두산에 디펜딩 챔피언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두산은 지난 시즌 우승의 영광을 뒤로하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됐다. 김현수라는 팀 간판타자가 메이저리그 진출로 팀을 떠났지만, 두산은 지난해 우승 멤버..
현대 야구에서 1, 2번 타자, 흔히 말하는 테이블세터진의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테이블세터라는 별칭에서 나오듯 득점 기회를 만드는 역할은 기본이고 최근에는 해결사로서 공격적인 면에서 중심 타자 못지않은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빠른 선수들이 테이블 세터진에 주로 자리했지만, 최근에는 힘 있는 타격을 하는 선수들도 자주 테이블 세터진에 포진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같은 테이블세터진이지만, 타순의 가장 앞선에 있는 1번 타자는 팀 타선의 시작점이고 도루나 주루 플레이 등으로 팀 공격의 또 다른 옵션으로 그 역할 범위가 넓다. 이런 활약을 시즌 내내 꾸준히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건 팀 타선 구성에 있어 상당한 장점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롯데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지난해 롯데는 ..
태종과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세종으로부터 재주를 인정받은 장영실이었지만, 노비의 신분은 벗을 수 없는 굴레였다. 하지만 장영실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 애쓰기 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맞은 봐 소임에 온 힘을 다했다. 이런 장영실을 신뢰하고 있던 세종은 그에게 큰 임무를 맡겼다. 그는 서운관의 책임자 장희제와 더불어 명나라 사신단에 참가해 명나라의 앞선 천문 기술을 보고 배우도록 했다. 세종은 이를 바탕으로 조선만의 천문관측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조선의 역법을 만들려 했다. 이전 중국의 역법에 의존한 천문관측이 나라 실정과 맞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세종의 마음이 담긴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명나라는 천문기술의 대외 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