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은 위로는 안산, 아래로는 평택, 주변에 수원과 오산을 접하고 서해바다와 만나는 도시다. 과거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디고 논밭이 많은 농촌의 풍경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형 신도시가 들어서고 공업단지가 곳곳에 자리하면서 그 풍경이 변해가고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8회에서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화성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정의 시작은 논 가운데 자리한 경비행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이륙하는 경비행기는 바다가 들판이 어울리는 화성의 다채로운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의 비행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동네 탐방을 시작했다. 바닷가 어느 마을에 다다랐다. 여느 어촌 풍경과 같았지만, 마을 한 편에 수북이 쌓은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7회 여정은 우리나라 의류 유통의 중심지 동대문과 인접한 신당동이었다. 과거 아마 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동대문 운동장은 70~80년대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최고 인기를 누렸던 고교야구 대회를 보기 위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세월이 흘러 주변에 의류상가가 밀집하면서 환경이 변하고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야구 경기의 중심이 잠실 야구장으로 이동하면서 야구 성지로서의 기능이 퇴색되었다. 결국, 동대문 운동장에는 지역의 산업 특색과 어울리는 초 현대식 건물인 DDP가 들어섰고 동대문 운동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DDP가 들어서고 과거 동대문 운동장의 조명탑이 남아 이곳이 어떤 곳이었지에 ..
성탄절 다양한 TV 프로그램 중 눈에 띄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일제시대 기독교 목사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손정도의 삶을 조명한 다큐였다. 1882년 태어난 그는 1931년 49의 젊은 나이에 그 생을 다할 때까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지금까지 크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의 삶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정도는 비교적 부유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유학을 배웠고 유학자들의 가장 큰 목표였던 과거 시험을 응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과거 우연한 기회에 접한 기독교 교리를 배우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손정도는 기독교와 서구의 신학문에 동화되어 양반 자제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그는 상투를 자르고 조상의 신주와 사당을 없앴다. 이에 손정도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1번째 여정은 강원도 삼척이었다. 삼척은 맑은 동해바다와 태백산맥의 산세가 함께 하는 곳으로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는 곳이다. 삼척은 수도권에서는 최근 올림픽을 거치며 교통망이 확충된 강릉이나 속초와 달리 관광지로도 다소 소외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과거 삼척은 석탄과 시멘트 산지로 여러 광산들이 함께 하는 광업 도시로 70년대와 8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이곳에서 나는 시멘트는 건설업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고 석탄은 서민들의 난방 연료인 연탄의 원료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연탄보일러는 보편적인 난방 수단이었다. 이렇게 산업화와 함께 발전했던 삼척은 90년대 들어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연탄 수요가 급감하고 값싼 수입석탄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쇠락을 길을..
서울은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지금까지 오랜 세월 수도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서울 정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중심이었고 나라 근대화를 이끌어가는 곳으로 큰 변화를 몸소 겪어왔다. 그 덕분에 서울은 많은 것이 발전하고 새롭고 편리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와 비례해 간직해야 할 과거의 흔적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뒤늦게 그 가치를 인식하고 찾으려 하지만, 이제는 사진 속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상당수다. 우리 주변의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47회에서는 서울 정릉, 삼선동에 발걸음 했다. 시원함보다 차가움이 더 느껴지는 북한산 자락의 계곡을 따라 시작된 여정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의..
한일간의 과거사 갈등과 일본의 경제 보복 속에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컸던 2019년 광복절이었다. 여전히 한일간의 갈등은 진행형이고 남북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긴장은 여전하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도 일본을 옹호하는 국내 세력들이 버젓이 공개적인 활동을 하는 현실은 마음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광복절에 앞서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에 이어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우리 헌법에는 3.1운동의 정신과 우리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민주 공화정의 시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