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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즌을 준비하는 프로구단들의 해외 전지훈련장에서는 치열한 내부 경쟁이 한창이다. 상대 팀 선수들과 대결하기에 앞서 선수들은 주전 확보를 위한 대결을 이겨내야 한다. 최근 내부 육성에 대한 구단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능성이 있는 젊은 선수들의 발탁도 늘어나고 있다. 한번 주전이 영원한 주전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기류는 나이 든 베테랑 선수들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온다. 전성기를 지난 선수들은 항상 세대교체라는 파도와 맞서야 한다. 대부분 구단들은같은 연봉이라면 젊은 선수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선수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서도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중용해야 하는 구단들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상당수 베테랑들은 설 자리를 잃은 경우가 많다. 레전드라 불리는 선수들도 다르지 않다. 


SK의 베테랑 유격수 박진만 역시 올 시즌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1976년생인 박진만은 프로야구 통틀어도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에 들어간다. 당연히 연봉대비 효율성에 대해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나이에 따른 체력저하와 내야수비 폭의 감소, 배팅의 날카로움도 무뎌진 박진만이다. 여기에 SK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던 나주환이 병역을 마치고 팀에 합류했다. 박진만의 주전 자리가 위태로워진 상황이다. 


현재 SK의 유격수 자리는 팀에 복귀한 나주환과 꾸준한 출장으로 기량을 닦아온 최윤석, 지난해부터 두각을 나타낸 김성현, 그리고 박진만이 주전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다. 나주환이 입대 전 기량을 되찾는다면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익근무로 병역을 마친 나주환에게는 2년의 공백을 극복하는 것이 급하다. 이들 후보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박진만은 지난해 부상이 겹치면서 57경기에만 출전했다. 타율은 0.210으로 크게 떨어졌고 세월의 무게감을 조금씩 느끼는 모습이었다. 포스트 시즌에서 박진만 이런 주변의 시선을 깨뜨리는 활약을 했다. 노련함에 나오는 노림수는 하위 타선의 폭발력을 강화시켰고 안정된 수비 역시 팀에 큰 보탬이 되었다. 큰 경기에서는 역시 노장의 힘이 필요함을 확실하게 보여준 박진만이었다. 


1996시즌 지금의 히어로즈, 현대에 입단한 박진만은 고졸 선수임에도 이례적으로 팀의 주전 유격수로 발탁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야수 부분은 대졸 선수가 주류를 이루던 상황이었다. 박진만은 주전 유격수 발탁은 파격 그 자체였다. 박진만은 이런 구단의 선택을 배신하지 않았다. 수비의 안정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졌고 화려하지 않지만, 타격에서도 꾸준히 제 역할을 다해주었다. 


박진만의 유격수로 자리한 현대의 내야진은 촘촘한 그물망 수비를 자랑했다. 박진만은 과거 현대유니콘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였다. 이런 박진만의 활약은 국제경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박진만은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 유격수였다. WBC와 올림픽 등 중요한 국가 대항전에서 박진만은 대표팀의 내야진을 지휘하는 선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확정 짓는 더블플레이도 박진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한 2009 WBC에서 대표팀은 대회 내내 내야수비 불안으로 전전긍긍 해야 했다. 기량을 출중한 선수는 많았지만, 박진만이 가진 경험과 큰 경기 노하우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박진만에게도 나이에 따른 내림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2005시즌 FA 계약을 통해 현대에서 삼성으로 팀을 옮긴 박진만은 FA 먹튀 논란을 빗겨가는 꾸준한 활약으로 삼성의 수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했지만, 200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잦은 부상으로 내림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0시즌을 마치고 박진만은 선수생활 연장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세대교체기의 삼성에 박진만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런 박진만을 잡은 건 고향팀 SK였다. 박진만은 2011시즌을 앞두고 SK로 전격 이적했다. 삼성 역시 그를 조건 없이 풀어주면서 베테랑 선수에 대한 마지막 배려를 해주었다.


2011시즌 박진만은 SK의 엄청난 스프링캠프 훈련량을 소화하며 부활의 가능성을 보였다. 2011년 박진만은 100경기에 나서며 0.280의 타율과 함께 활력을 되찾은 수비로 SK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박진만은 최정, 정근우와 함께 강력한 내야진을 구축했다. 하지만 박진만의 부활은 지속성이 없었다. 그를 괴롭히던 부상이 2012시즌 그를 다시 찾아왔고 박진만의 경기 출전 수는 급격히 줄었다. 그 사이 젊은 선수들의 기량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박진만의 팀 내 입지는 다시 좁아졌다. 


2013시즌 박진만은 더 많아진 경쟁자와 함께 세월이라는 무게감도 이겨내야 한다. 현재 박진만은 부상 없이 스프링 캠프를 소화하고 있다. 건강한 박진만이라면 아직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박진만이 가지고 있는 이기는 야구의 노하우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진만으로서는 한층 강해진 내부 경쟁을 이기는 것이 급선무다. 


SK는 박진만이 젊은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을 도보하는 기폭제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박진만은 이런 기대를 뛰어넘어 주전 유격수로 개막전에 나서길 바라고 있다. 박진만이 마지막이라는 베테랑 선수에 따라붙은 그림자를 떨쳐내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올 시즌 보여줄 수 있을지 아니면 은퇴라는 선택지 앞에 설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들의 은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Gimpoman/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http://www.facebook.com/gimpoman)

사진 : SK 와이번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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