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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게 되면 꼭 들르게 되는 들릴 수밖에 없는 장소가 성당이다. 로마제국 시대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국교로 공인된 이후 기독교가 유럽의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차지하면서 성당은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롭게 지어졌고 유럽의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각 성당에 얽힌 역사적 배경이나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유럽, 그리고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성당이다. 물론, 유럽에 가면 성당밖에 볼 게 없다는 푸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유럽에서 성당은 종교시설 이전에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곳이었고 소통의 장소였다.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이 전 유럽을 지배하던 시대 성당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마녀사냥을 주도하거나 면죄부를 판매하는 불법적이고 타락한 공간으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그 역사를 지나고 성당은 많은 유럽인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는 안식처로 그리고 중요한 문화재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방문자들은 그런 배경과 함께 중요 성당들의 엄청난 규모와 섬세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 먼 옛날 어떻에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많은 유럽의 성당들은 실제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건축 기간을 거쳐 지어졌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성당인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1926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지금까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지어지고 있다. 이는 기독교가 많은 서양인들 그리고 유럽인들의 정신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고 성당 건축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름을 알 수 있다. 

 

 

후스토 성당 지도

 

 

이런 유럽의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 인근 마을인 메호라다 델 캄포에 거대한 성당이 지어지고 있다. 이 성당은 작은 마을에 지어지기에는 매우 크다. 더 놀라운 건 이 성당이 한 노인에 의해 60년 넘게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노인의 이름은 후스토 갈레고 마르티네즈, 그는 1961년부터 이 마을에서 대성당을 지어오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이 성당을 짓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쳤다.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성당의 건축가이자 주인이기도 한 후스토 갈레고 마르티네즈 삶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고 이번 제20회 EBS 국제 다큐 영화제에 출품됐다. 제목은 '어느 수도사의 대성당', 이 제목에서 왜 후스토가 자신의 모든 것을 성당 건설에 바치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해소된다. 하지만 그와 대성당의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영화는 대성당 건축과 관련한 후스토의 여정을 그의 옆에서 긴 호흡으로 담았다. 중간중간 그의 일을 돕기도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왜 이 성당 건설에 몰입하게 됐는지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현재의 모습도 영상에 담았다. 이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종교에 심취한 노인인 고집 이상의 아집, 집착이 이 성당을 짓게 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점점 그와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성당 건설의 이유에 공감하고 이 성당이 잘 지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이는 후스토가 성당을 건설함에 있어 자신의 이익을 바라지도 않고 오로지 종교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진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그의 주변 사람들과 마을 주민들은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그의 변치 않은 신념과 의지는 그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늘어나게 했다. 그런 이들의 후원과 도움 속에 후스토는 느리지만, 흔들리지 않고 성당 건설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영화 스틸 컷

 



하지만 그는 90살은 훌쩍 넘어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노인이 됐다. 영화 초기에는 활발하고 힘든 일도 거뜬하게 하는 그였지만, 세월의 흐름을 그도 거스를 수 없었다. 성당 건설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여전했지만,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고 정신도 점점 흐려졌다.

그는 마음이 급했지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성당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다 끝나기 전 성당의 완공을 보고 싶어 했지만, 점점 그렇게 될 수 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 이 성당은 사라질 수도 있었다. 후스토는 어떻게든 성당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성당에서 나와 세상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가 수도사의 꿈을 접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후스토는 청년 시절 수도사의 삶을 살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실현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지병이 있었고 이후 그는 수도원 동료들의 결정으로 수도원을 떠나야 했다. 아마도 수행의 방법에 대한 의견 충돌과 갈등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보다 자유롭고 독자적인 수도자가 되고 싶었지만, 수도원의 규율과 관행은 이런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후스토는 그 틀을 깨고 싶었고 결국 버림받았다. 

하지만 후스토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성당은 건축은 그것을 위한 중요한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땅에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유산으로 받은 땅을 처분하며 재원을 마련했다. 그래도 부족한 재원 탓에 그는 나 홀로 건축을 해야 했다. 문제는 그가 건축과 관련한 교육을 받지 않았고 지식도 없었다는 점이다. 

 

 

 



작은 집을 건축하는데도 복잡한 인허가 과정과 설계, 시공상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의 성당은 바티칸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에 따라 그 규모도 매우 컸다. 전문적인 건설사가 건축에 나서도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후스토는 자신의 영감과 직관적 판단에 의존에 성당을 건축했다. 그 흔한 도면, 설계도 하나 없는 작업이었다. 

또한, 부족한 재원 탓에 대성당에 들어가는 비싼 건축 자재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버려진 건축 폐자재와 재활용품을 이용했다. 그는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을 했다. 이런 그를 보고 주변에서 우려를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를 이해해 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의 땅을 받는 조건으로 성당 건축에 힘을 보태기로 한 이웃들도 그를 외면했다. 

후스토는 주변의 편견과 우려 가득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당 건축을 이어갔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성당은 거대한 외형을 드러냈다. 어딘가 어색하고 엉성해 보이기도 했지만, 성당은 긴 세월 성당을 향했을 비바람과 각종 자연재해 속에서도 그 자리에서 우뚝 서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과 달리 성당은 굳건했다. 전문가들도조차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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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스토는 성당의 완공을 위한 여정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를 수십 년간 돕는 이가 있었지만, 엄청난 자산가가 아니었다. 그 성당이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그들의 기부금이 모이긴 했지만, 마지막 공사를 마무리하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거대한 돔 공사를 마무리할 수 없었다. 

여기에 과거와 달리 주거 지역이 조성되면서 늘어난 마을 인구와 그에 따른 안전에 우려와 민원, 허가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로 언제든 철거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성당은 후스토와 운명을 함께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후스토는 세상에 나갔다. 그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가 성당을 건축하는 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서 벗어날 보금자리를 얻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성당 건축 현장에서 기거하며 작업을 지속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성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행복해 보였다. 그곳에서 그는 그가 추앙하는 절대적인 존재와 항상 만날 수 있었고 마음껏 공부하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었다. 그에 대성당은 자신의 인생 그 자체였다. 

후스토는 이 성당을 지키기 위해 성당을 벗어나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교회는 안전상의 이유, 법적 절차 등의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이유로 도움을 주는 대 주저했다. 그 사이 후스토의 생명의 불꽃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하는 지인들의 마음도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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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후스토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종교 단체에서 성당을 살려내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고 이를 공론화했다. 적극적인 모금운동이 일어났고 그렇게 마련된 자금은 성당을 완공하는데 쓰였다. 후스토 역시 보다 안락하고 편한 거처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었다. 후스토는 점점 흐려지는 정신에도 성당 건축과 관련해서는 매우 열성적이고 전문가적 견해를 거침없이 밝혔다. 성당과 관련한 말을 할 때 후스토는 성당을 처음 건축하기 시작했던 때 그 자체였다. 

이렇게 후스토의 성당은 그의 이름을 딴 이름이 지어졌고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건축도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후스토는 성당의 완공을 볼 수 없게 됐다. 그는 얼마 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는 그의 삶이 너무 덧없고 허망하게 보일 수도 있다. 평생을 거쳐 매달린 성당 건축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한 상황이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성당 건축에 대한 열정을 다른 일에 쏟았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어떻게 보면 후스토의 삶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중세 기사 이야기를 담은 소설에 심취해 기사 행세를 하는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 돈키호테와 같아 보이기도 한다. 후스토의 성당 건축은 매우 무모했고 위험했다. 그에 따른 이익도 없었다. 그렇다고 성당에서 그가 원하는 미사가 열리지도 못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성당은 큰 골칫거리였다. 그의 의도와 달리 성당은 불편함을 주는 존재였다. 

후스토는 그런 상황에도 그의 의지를 꺾지 않았고 묵묵히 성당을 지어갔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성도 보였다. 재활용품 등을 이용한 건축의 양식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모습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위해 인생 말련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가우디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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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만약, 가우디가 후스토의 성당을 짓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의문이 또 생긴다. 아마도 건축가의 의지와 독창성에 큰 박수를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후스토가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면 성당 건축에 대한 반응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다. 

이처럼 세상은 같은 열정과 의지, 노력에도 공평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가고 자신의 꿈을 접게 된다. 후스토는 달랐다. 그는 꿈을 잃지 않았고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행동하고 실천했다. 이는 그의 수도사로의 수행의 방법이기도 했고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었다.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도 건축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그의 모습은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인생 말년에 후스토는 세상의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후스토는 쫓겨나듯 수도원을 떠난 이후 닫았던 세상에 대한 문을 열 수 있었다. 영화 속 그의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를 고민하게 했다.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사는 게 결코 무의미한 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스토와 같이 남과 다른 삶과 모습이 이상한 게 아는 다름으로 인정받고 다양성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본 게시글은 EBS 스토리 기자단 18기 활동(자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진 : EBS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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