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UN의 난민 협약에 따르면 인종과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이나 소속, 정치적 견해 등에 따른 박해의 공포로 인해 고국이나 출신자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정의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전쟁이나 내전, 심각한 기아 상황과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들까지 포함한 통상적인 난민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하고 보편적 인권의 문제를 정형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난민 협약은 도움이 절실한 많은 난민들을 절망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엄격하게 적용하면 할수록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을 떠도는 난민들의 숫자는 크게 늘어나고 있고 국제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군사적 대결이 이어지고 있고 긴 내전이 지속되는 국가들도 있다. 종교나 사상 등의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도 곳곳에 있다. 그 속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살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이다.
특히, 미군의 전격 철수와 함께 이루어진 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 집권 이후 정치적 탄압과 국가적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나 민주화를 위한 국민들의 혁명이 국제 전쟁으로 비화되며 장기간의 내전으로 나라가 황폐해진 시리아 난민의 문제는 좀처럼 해결의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마인드 게임'은 탈레반의 압제를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벨기에에 정착한 난민 청년 사지드 칸 나시리가 난민의 지위를 얻는 과정을 수년에 거쳐 담아냈다. 스스로의 이름을 줄여 SK로 칭하는 사지드는 수년간의 여정을 거치며 10대 중반의 소년에서 10대 후반의 청년이 됐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친구들과의 유대를 쌓고 사회인으로 성장할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사지드는 가족을 떠나 유럽으로의 여정을 수년간 지속했다. 그를 도울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그는 스스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고비를 넘기며 생존해야 했다.
비행기를 타면 12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유럽이지만, 사지드에게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위해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수년간의 여정을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사지드는 무슬림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증오, 차별을 경험했고 그에 기반해서 자행되는 폭력에 고통받기도 했다. 우정을 나웠던 얼마 안 되는 친구들과 원치 않는 이별도 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밀수업자들에게 의지해야 하기도 했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지드는 매일매일을 불안 속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사지드는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이런 그에게 스마트폰과 SNS는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 서비를 통해 그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보다 안전한 이동로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조금은 걷어낼 수 있었다.
그는 SNS를 통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공유했다. 이는 그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사지드는 이를 통해 자신이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대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사지드는 유럽으로의 여정을 게임이라 했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을 그는 게임이라 했다. 무한 긍정의 표현이었다. 긍정의 힘은 그가 힘든 여정을 버티게 하는 동력이었다. 강한 삶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런 긍정의 마음은 뜻하지 않게 네덜란드 출신의 두 여성 감독과 그를 연결하도록 했다. 사지드와 두 영화감독은 수시로 SNS로 소통을 했고 필요할 때는 유럽 모처에서 만나 여정을 공유하고 사지드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를 영화에서는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지만, 사지드의 SNS 활동이 중요한 이유가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지드는 여정 중간중간 자신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담아 감독들과 공유했다. 그는 난민들의 여정 한가운데서 생생한 장면들을 보여줬다. 난민들의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지드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최대한 담담히 담았다. 감성적인 접근을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 누구보다 감성이 충만할 사춘기 소년은 그런 것이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았는지도 모른다.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항상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삶에 익숙해진 그였다. 그렇게 그는 빨리 어른이 되어갔다.
그런 그에게 두 여성 감독은 중요한 멘토였고 소통의 당사자였다. 사지드는 어떻게 보면 민감할 수 있는 순간들을 감독들과 공유했다. 감독들도 사지드와의 소통을 지속했다. 그 사이에 이들에게는 인간적이 신뢰가 쌓였다. 사지드에게는 자신의 생에 처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외국인의 등장이었다. 이러한 신뢰 관계는 영화 제작의 중요한 바탕이 됐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감독들은 사지드의 여정을 여러 경로로 돕고 함께 했다. 직접적인 지원을 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걱정해 주고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그의 여정을 보다 편안하게 해주는 건 아니었다. 난민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유럽 국가로 가기 위해 사지드는 많은 나라의 국경을 넘어야 했다. 대부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하는 난민들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그들이 유럽으로 몰리면서 유럽 국가들은 난민들의 진입을 최대한 막으려 했다. 독일과 같이 적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국가도 있었지만, 그 수는 제한적이었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에게 난민은 위험한 이들이었고 잠재적 범죄자였다. 또한, 그들에 대한 각 국가 국민들의 시선 역시 차가웠다. 잠재적 범죄자들의 유입이 그들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위기감도 작용했고 인종적, 종교적 혐오와 편견도 작용했다. 여전히 많은 선진국 국민들에게 난민은 테러 집단과 동일시됐다.
여기에 장기화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길어지는 경기 침체 여파 속에 자국 이기주의가 심화되고 삶의 여유가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 난민들은 매우 귀찮은 존재가 됐다. 극단적 민족주의의 자국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극우 정치 세력의 세력 확대 역시 난민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더 심화시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고통은 커져갔다. 그들에 대한 배제는 물론이고 심각한 폭력에도 직면했다. 난민들은 수용소에서 여러 상당수 인권이 제한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고 이동의 자유도 박탈당했다. 나민들의 그들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결국,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난민들은 위험을 여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난민들은 목숨을 건 여정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낯선 나라에서 목숨을 잃었다. 난민들을 태운 보트가 바다에서 침몰해 수많은 이들이 사망하고 어린이들이 희생되는 장면이 나오는 뉴스들은 이러한 여정의 참혹한 결과물들이다.
사지드 역시 유럽으로 가는 내내 자신에 다른 난민들과 같은 고통과 위험을 겪어야 해다. 하지만 사지드는 자신의 신상이 노출되는 것이 신변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음에도 자신의 처지를 알렸고 존재감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런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사지드는 그가 말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의 각 케스트를 통과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의 여정은 혐오와 증오, 폭력과 의심을 넘어야 했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뎌야 했지만 사지드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비관적인 현실에 좌절한 친구의 죽음을 봐야 하는 고통도 있었다.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입증해야 하는 수치스러운 과정도 그는 이겨냈다. 그리고 그에게는 난민을 인정하는 증명서 한 장이 주어졌다. 그렇게 사지드는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새롭게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수년간의 여정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그의 앞으로 미래 역시 난민을 인정받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시련들이 함께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지드는 그 삶이 힘들다 해도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이런 사지드와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난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도 수많은 난민들이 세계 곳곳을 헤매고 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 갈수록 악화되는 난민들에 대한 여론은 그들을 더 막다른 곳으로 몰아가고 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어딘가에 정착할 수도 없는 난민들의 상황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의 진입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계속되는 절망은 결국, 큰 분노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 분노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자칫 이 분노는 불특정 대상에 대한 범죄로 연결될 수 있고 테러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세계 모든 국가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분노의 임계점이 넘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난민의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제주도에 아프리카 난민 다수가 들어와 사회적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구출해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한 일도 있었다. 그때 우리 사회는 난민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지 않았고 경계와 멸시, 걱정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난민 문제에 대해 매우 폐쇄적인 우리나라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줬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특정 종교, 인종에 대한 강한 혐오와 멸시를 조장하는 모습도 있었다.
말로는 난민을 돕는 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한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 우리들이다. 유럽의 난민들에게 대한 비인간적 대처를 비판하면서도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대응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난민의 무한 수용은 어려운 일이다. 국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국민적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어려워진 경제 상황도 난민들의 포용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이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난민 문제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마침 우리나라는 인구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나라의 지속성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이민 정책 수립이 불가피하다. 단일 민족 국가의 틀을 깨야 한다.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이들이라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난민 정책이 가능하면 위험인물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데 주력했다면 사회 구성원으로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난민에 대한 시선도 보다 개방적이 따뜻하게 변할 필요가 있다.
K 팝을 포함해 K 컬처, 우리 문화가 세계의 중요한 문화 흐름이 되고 한국에 대한 대외적 신인도와 긍정 이미지가 늘어가는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산업, 문화의 공급망의 기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그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 문화는 앞으로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산업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문화강국으로 발전하는 한국은 대외적으로 보다 포용적인 정책을 펼쳐야 하고 난민 문제 역시 보다 큰 관심과 긍정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EIDF 별도 구독 채널
영화 마인드 게임은 난민 문제를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나열식으로 보여주지 않았고 그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행동하는 모습을 한 청년의 도전기를 통해 보여줬다. 또한, 난민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1인칭 시점으로 현상을 살피고 여정을 스스로 담았다는 점은 현실성을 더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청년을 응원하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 어쩌면 난민들에게 필요한 건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자리가 아닌 잃어버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앞으로 그들이 보다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전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속에서 제2, 제3의 사지드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자신의 고국을 떠나 가족을 떠나는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적 난민 발생의 중요한 원인인 심각한 내전이다. 그 내전의 원인은 상당 부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충돌에 기인하고 있다. 고통의 근원을 찾아 제거하는 세계적 노력이 절실하다.
이렇게 EBS 국제 다큐 영화제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니면 외면했던 불편한 사실과 문제들을 살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BS 정규 방송이나 온. 오프라인을 통해 사회의 여러 면을 보는 건 우리 사고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그 기회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게시글은 EBS 스토리 기자던 18기 활동(자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 EIDF / 픽사베이, 글 : jihuni74
'문화 > 미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IDF 2023] 독일의 전쟁 영화 '특전 유보트' 다큐를 전문가와 살핀, 다큐 토크 (48) | 2023.08.25 |
---|---|
[EIDF 2023] 편견을 이해로 바꾼 수십 년의 신념, 영화 '어느 수도사의 대성당' (44) | 2023.08.24 |
[최강야구 시즌 2의 54회] 11승 달성 몬스터즈 그리고 비선수 출신 선성권의 성장기 (21) | 2023.08.22 |
[EBS 세계테마기행] 브라질의 또 다른 매력 확인한 북동부 여정 (43) | 2023.08.21 |
[벌거벗은 세계사] 극적인 삶만큼이나 극과 극의 평가받는 인물, 에비타 (41) | 2023.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