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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폐막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수영에서 우리나라는 남자 수영 부분에서 참가한 선수 대부분이 메달 리스트가 되면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수영은 과거 특출난 선수 한 명이 수영계를 이끌어 갔다. 그들은 한국 수영의 영웅으로 불렸다. 그 속에는 아시안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의 최윤희가 있었고 한국 수영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박태환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 수영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황선우가 있었다.
 
하지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황선우뿐만 아니라 장거리 부분에서 김민우라는 새로운 스타가 등장해 다관왕이 됐고 미지의 영역이었던 50미터 초 단거리 종목에서 지유찬, 백인철이 깜짝 금메달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외에도 출전 선수의 고른 기량이 필요한 계영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수확하면서 한국 수영은 한 개인이 아닌 모두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선수들이 모두 전성기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앞으로 있을 파리 하계 올림픽과 다음 아시안게임에서도 큰 성과가 기대된다.
 
수영의 선전과 함께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메달 유망 종목인 양궁이 역시  세계 최강의 면모를 과시했고 최고 인기 구기 종목인 남자 축구와 야구에서도 금메달로 그 여정을 마무리했다.

 

 

 




수영의 선전 돋보였던 항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한국 육상의 희망인 높이뛰기 우상혁은 세계 최고 높이뛰기 선수인 카타르의 바르심과 명승부를 펼치며 클래스를 입증했습니다. 남자 높이뛰기는 아시안게임에서는 보기 드문 세계 톱 랭커들의 대결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이 외에도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4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89개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애초 목표로 했던 금메달 50개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메달 종목이 다변화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이런 아시안게임에서 몇몇 신설 종목도 큰 주목을 받았다. 종합 스포츠 이벤트 사상 최초로 정식 종목에 채택된 E 스포츠가 성황리에 경기가 열렸고 우리나라는 개최국 중국의 텃세를 이겨내며 LOL 부분에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또한, 40대 게이머 김관우가 스트리트파이터 부분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되며 또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설 종목 브레이킹도 그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 종목에서 우리나라는 남녀 각각 2명의 선수가 출전했고 세계적인 비보이 김홍열, 닉네임 홍텐이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그와 함께 출전한 김헌우, 넥네임 윙은 30대 후반으로 비보이로서는 많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할 시점이었지만,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내년이 있는 파리 올림픽 출전을 위해 치열한 선발전을 통과해 대회가 참가했다.
 
홍텐은 그보다 한참 어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뛰어난 기량과 열정으로 임했고 우리나라 브레이킹 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는 아시안게임 폐막식 한국 선수단 기수로 나서는 영광도 안았다.

 

 

 




특별했던 신설 종목, E 스포츠 그리고 브레이킹 

 
많은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브레이킹 경기를 보면서 방송에서나 보는 춤으로만 알고 있었던 브레이킹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고난도의 동작을 막힘없이 수행하는 모습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또한, 일대일 대결이 쉼 없이 이어지고 열린 공간에서 매우 자유롭게 진행되는 경기 방식 또한, 기존 스포츠에서 볼 수 없는 색다름이었다.
 
이렇게 아시안게임에서 스포츠로서 가능성을 확인한 브레이킹은 힙합문화의 한 부분으로 시작됐다. 힙합은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 지역에의 거리 문화였다.
 
당시 이 지역은 도시 재개발에서 소외되고 슬럼화된 가난한 흑인들이 거주지였다. 브롱크스는 낙후되고 열악한 지역의 환경속에서 각종 강력 범죄와 방화가 끊이지 않는 우범지역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갱단들이 지역을 장악하고 유혈충돌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지역의 갱단들은 협약을 맺었고 폭력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그 속에서 지역 청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리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거리 곳곳에서 열렸던 블록파티가 유행되면서 그 속에서 춤과 DJ가 음악을 가공해 내보내는 디제잉이 결합된 힙합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생겨났다.
 
이를 통해 지역의 청년들은 그들의 열정을 발산할 통로가 마련됐고 서로 간의 갈등을 이를 통해 해소했다. 이렇게 시작된 힙합은 리듬에 따라 말하듯 가사를 내뱉는 랩, 고난도 기술이 결합된 춤인 비보잉, 브레이킹과 얼굴없는 예술가 뱅크시로 대표되는 거리 벽화 그래피티, 역동적인 음악의 디제잉이 결합되어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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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힙합은 뉴욕 지역 흑인들이 중심이 된 서브 걸쳐, 특정 지역 소집단의 문화였지만, 점점 그 영역을 확대했다. 1980년대 뮤직비디오가 등장하고 음악이 듣는 음악에서 보여주는 음악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면서 힙합은 미국 전역에 그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특히, 뮤직비디오를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이 등장은 힙합의 확산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렬한 비트와 역동적인 리듬, 사회의 부조리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욕설까지 담긴 매우 직설적이고 거친 가사와 화려한 춤이 결합한 힙합은 흑인의 음악을 넘어 미국 젊은 층의 큰 인기를 얻었다. 이와 함께 힙합 문화를 상징하는 헐렁한 바지와 야구 모자, 화려한 장신구 등 패션까지 유행했다.
 
힙합 음악의 저변 확대는 힙합을 미국 주류 음악의 한 부분으로 발전시켰다. 힙합 뮤지션들은 슈퍼 스타가 됐고 힙합은 하나의 유행을 넘어 미국 문화의 한 부분이 됐다.
 
이후 힙합은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어 각 나라 음악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힙합은 중요한음악 장르가 됐고 관련 뮤지션들이 대중적은 관심과 인기를 얻었다.
 
이런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힙합의 힙(Hip)은 생기있고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다는 의미답게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차용해 기존과 다른 느낌의 문화, 예술 작품이나 장소, 분위기 등에 대해 힙하다라는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힙합의 역사와 함께 한 브레이킹 

 
이렇게 힙합의 구성 요소로 발전한 브레이킹은 최근 독자적이 스포츠로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는 건 그만큼 브레이킹을 즐기는 이들의 저변이 전세계적으로 넓고 수준 높은 기량의 선수들도 많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브레이킹은 기존 춤과 달리 고난도의 동작이 곳곳에 등장하고 화려함이 있다. 물론, 그 하나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비보이라 불리는 이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함께 매일매일 춤에 매진해 자신만의 동작을 완성하고 난이도를 높이는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브레이킹은 서있는 자세에서 리듬에 따라 스텝을 맞추는 탑락, 바닥에 손을 대고 스탭을 맞추는 다운락, 화려한 공중돌기 동작이 수반되는 파워무브, 동작 멈추는 프리즈의 요소로 구성된다. 이 동작들은 현장 DJ가 무작위로 내보내는 음악에 맞춰 순간순간 창작되어 보여진다. 고난도의 동작은 독창성과 예술성이 겸비돼야 하고 임기응변 능력도 필요하다. 브레이킹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그들의 수많은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브레이킹 종목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로서는 그들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다른 감회가 있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과거 거리에서 춤을 춘다는 불량학생들, 일명 날라리들이 하는 짓이었다. 브레이킹을 한다는 건 학생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는 일이고 부정적 시선을 받아야 했다.
 
당연히 브레이킹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춤에 대한 열정만으로 극복하기에는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SNS라는 새로운 대중 소통의 통로가 활성화되면서 점점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에 사회적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최근 댄서들이 등장하는 경연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가수들의 뒤편에서 이름없는 조연으로만 살았던 댄서들이 대중 스타가 되고 있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개성이 중요시되는 사회적 흐름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 더는 나쁜 일이 아닌 세상이 됐다.

 

 

 

https://jisike.ebs.co.kr/jisike/vodReplayView?siteCd=JE&prodId=352&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60399793

 

나는 브레이킹 국가대표다

브레이킹은 음악에 맞춰 역동적인 동작을 춤으로 풀어내는 예술이다.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스트릿 댄스의 일종으로, 흑인들 사이에서 유행이 시작되었으나 힙합이 대중화되면서...

jisike.ebs.co.kr




한국 브레이킹의 새 시대를 연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의 아시안게임, 올림픽 종목 편입은 변화하는 사회적 흐름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춤에 대한 인식을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킬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브레이킹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브레이킹 세계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다수 입상을 하고 있고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선수들도 다수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리스트 홍텐도 그 중 한 명이다. 10대 시절부터 브레이킹 좋아 그의 인생을 걸었던 그는 당장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에도 또 다른 꿈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 외 또 다른 브레이킹 선수들 역시 다르지 않다. 

이제 브레이킹 선수들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실업팀이 생겨나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고 있다. 이는 브레이킹 선수 저변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힐수도 있다. 
 
이렇게 브레이킹은 서브 컬쳐의 한 부분에서 주류 스포츠로 극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왔다. 브레이킹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레이킹이 지속 가능한 스포츠 종목으로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EBS 지식채널 e '나는 브레이킹 국가대표다' 편은 5분여의 짧은 영상에 브레이킹의 발전사와 우리나라 브레이킹 선수의 노력을 담고 있다. 브레이킹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콘텐츠였다. 


본 게시글은 EBS 스토리 기자단 18기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 EBS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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