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국민들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안타깝게 하기도 한 밴쿠버올림픽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예년과 다른 추운 날씨와 폭설로 지친 국민들에게 날씨의 심술을 잊게 할만큼 국가대표 선수들의 메달 소식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쇼트트랙을 포함한 빙상 종목 모두에서 메달을 획득했고 다양한 종목에 선수들을 출전시키면서 동계종목 편식 현상을 개선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보한 동계 올림픽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성적에서도 이승훈 선수이 스피드스케이팅 5,000미터 은메달을 시작으로 연일 메달 행진을 이어가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스케이터들은 선배들이 수십년간 도전하면서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한번에 이루어 내면서 3개의 금매달을 획득했습니다. 오랜 도전과 꾸준한 투자..
두산의 2010년은 큰 기대에 차 있습니다. 매년 전력보강 없이 자체 선수 육성으로 좋은 성적을 내왔지만 포스트 시즌에서의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던 두산이었습니다. 특히 SK와의 대결에서 계속 패배하면서 SK 징크스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습니다. 작년 시즌 5판 3선승의 대결에서 2승을 먼저 하고도 패한 시리즈는 SK 징크스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2010년 두산은 선수 보강을 위한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외국인 선수 영입의 거듭된 실패를 만화하려는 듯 오랜 기간을 두고 선수를 물색했고 두명의 선발 요원을 영입했습니다. 여기에 이현승이라는 10승 선발을 더해 완벽한 5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했습니다. 기존의 강력한 중간진과 함께 투수력에서는 한단계 업그레이된 모습이 기대됩니다. 완론도, 이..
3.1절 연휴에 보기 어려운 경기를 보았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와 일본의 소프트뱅크의 시범경기를 스포츠 방송에서 중계했습니다. 부산, 후쿠오카 도시간 관광 교류차원의 친선 경기였지만 동계 훈련 성과를 미리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양팀 모두 주전급으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하면서 단순한 친선 경기 이상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경기였습니다. 시범경기에도 많은 관중들이 들어찬 모습이며 멋진 돔 구장 시설에 살짝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일본 관중석 사이로 롯데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반가웠고요. 일본의 소프트 뱅크팀은 이미 시범경기 일정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고 롯데보다 좀 더 준비가 많이된 듯 보였습니다. 한화의 이범호 선수를 주전 라인업에서 볼 수 있어 좋았고요. 실제 롯데 타자들의 타격감은 좋지 못했습니다. 초반..
2009년 삼성은 젊고 빨라졌습니다. 가능성 있는 젊은 타자들이 한꺼번에 잠재력을 폭발시키면서 팀 분위기도 활기차게 변한 듯 하더군요. 물론 가을 야구 탈락이라는 댖가를 치른 결과이긴 하지만 삼성의 전력은 앞으로의 시즌들이 더 기대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넓은 선수층은 붙박이 외야수 박한이 선수를 벤치에 앉히는 사태를 자주 발생시켰고 팀의 기동력과 타격의 힘 모두에서 그 전력을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작년 시즌만 놓고 본다면 삼성을 지탱하는 힘은 불꽃 타선의 폭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2009년 크게 성장한 젊은 사자들은 2010년에도 팀의 주축으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채태인, 박석민, 최형우 선수에 뒤늦게 기량이 만개한 강봉규, 신명철 두 중견 선수, 군에서 제대한 선수들까지 전력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24일 새벽 새벽잠을 설치고 본 스피드스케이팅 10,000m 는 말 그대로 각본없는 드라마였습니다. 5,000m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은메달을 회득하면서 한국 선수단의 메달 행진에 탄력을 불어넣은 상승세의 이승훈 선수였지만 3번째 도전하는 선수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세계 랭킹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출발 순서도 레이스를 조절하기 힘든 앞 순서였습니다. 이승훈 선수의 레이스가 시작되고 첫번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초반 부터 1위와의 기록을 앞서나가던 이승훈 선수가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그의 기록은 점점 단축되었습니다. 그리고 중반 이후 올림픽 신기록을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지칠줄 모르는 그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직까지 이어졌습니다. 같이 경기를 펼치던 선수을 한 바퀴이상 ..
최근 3년간 롯데의 주전 포수는 강민호 선수였습니다. 고졸 7년차의 젊은 포수는 그의 이름을 딴 노래가 경기장에서 울려퍼질 정도로 그 위치가 확고했습니다. 타팀 포수들 대부분이 서른을 훌쩍 넘긴 노장 선수들이 주류를 이루는 현실에서 너무나도 귀한 젊은 포수이기도 하고요. 이런 강민호 선수에게 2009년은 생애 처음 맞이한 위기의 시즌이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과 WBC 대표로 선발되면서 영광의 순간을 같이 한 강민호 선수에게 팬들은 더 원숙해진 기량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시즌초 부터 강민호 선수는 애증이 교차하는 팬들의 시선을 받아야했습니다. 로이스터 감독은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지만 그가 나서는 경기에서 투수들의 방어율은 크게 치솟았습니다. 그의 투수 리드에 대해 팬들의 비판은 커져갔습니다. 공격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