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중요 장면들을 살피는 교양 예능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77회에서는 광복절 75주년 특집으로 꾸며졌다. 2회에 거쳐 방영되는 특징 중 첫 번째는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고 두 번째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일제에 의해 자행된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고수리 학살사건을 살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공군의 존재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 전투로 대표되는 육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은 교과서는 물론이고 영화화되면서 대중적으로 그 전공을 알려졌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추진했던 공군을 활용한 독립운동은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방송에서는 하늘에서 펼쳐진 치열했던 독립운동을 재조명했다. 공군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역설한 이는 도산 안창호였다. 미주지역을 중심으..
1995년 광복절에는 우리 현대사에 남을 사건이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조선의 본궁이었던 경복궁을 가로막고 서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가 시작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에 의한 강점기의 중요한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는 해방 이후에도 존속되어 중앙청이라 불리며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고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3년 길었던 군사독재의 시절을 끝내고 들어선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에 따라 광복 50주년이 되던 해 사라지게 됐다. 역사저널 그날 274회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에 관련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립은 1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일..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마무리하고 한일 협정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제에 의한 한일강제병합과 이어진 식민통치,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교류가 중단되었던 대한민국과 일본은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과 일본의 외교관계에 있어 근간은 1965년 6월 체결된 한일협정이다. 하지만 이 협정은 양측의 해석상 차이와 과거사 문제에 인식이 차이를 비켜간 협정으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전후 배상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일본의 경제 보복과 함께 그 골이 더 깊어졌다. 이로 인해 한일협정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역사저널 그날 273회에서는 협정 당시 국내외 상황과 그 배경, 최근 알려진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80번째 여정은 전라남도 영암군이었다. 영암군은 영산강과 간척 사업으로 조성된 영암호 사이에 위치해 있고 강진군과 접하는 월출산이 굽어보는 곳이었다.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름은 서해바다와 가깝고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하여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월출산 아래 자리한 영암군에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여정을 시작한 곳은 저 멀리 월출산이 보이는 드넓은 녹차밭이었다. 흔히 호남지역에서 녹차밭은 보성을 떠올리는데 영암에도 큰 규모의 녹차밭이 조성되어 지역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었다. 초록의 빛으로 가득한 녹차밭에서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 지역을 대표하는 산 월출산 아래 ..
최근 역사와 문화의 도시 경남 김해, 진주를 거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79회에서는 세계적 규모의 포항제철이 있는 동해안의 도시 포항을 찾았다. 포항은 과거 작은 어촌마을이었지만, 대형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우리 산업화의 중심지로 큰 변화를 겪었고 지금도 철강산업을 이끌어 가는 도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큰 변화 속에서도 옛것을 지키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과 함께 했다. 그 시작은 푸른 동해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공원이었다. 이 공원은 삼국유사에 소개되어 있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 근거한 테마 공원이었다. 연오랑 세오녀는 이야기 속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일본으로 떠난 후 신라에서는 해와 ..
구로공단 하면 1960년대 그리고 1990년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업단지였다. 봉제공장에서부터 다양한 공장들이 밀집해있었고 구로공단은 산업화를 상징하는 곳이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이곳의 공장에 일하기 위해 모였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힘든 노동의 현장을 지켰다. 이후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구로공단의 공장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산업단지의 면모를 잃었다. 이제 공장의 즐비한 굴뚝은 사라졌지만, 대신 구로구에는 IT 기업들이 다수 입점한 신 산업단지로 변했다.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를 함께 하는 곳이 구로구라 할 수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75회에서는 서울 구로구에서 산업화 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과 달라진 구로구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른 아침 활기찬 출근길에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