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역사저널 그날 301회] 정의롭지 못한 정권의 정의롭지 않았던 정의 구현, 삼청교육대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2. 17. 11:33

본문

728x90
반응형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301회에서는 1980년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미명하에 초반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 인권유린의 사례였던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삼청교육대는 신군부의 권력 장악 움직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신군부는 계엄사령부의 권한은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선포했다. 그와 동시에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와 함께 국회를 폐쇄하고 유력 정치인들을 체포, 가택연금하는 등의 조치로 반대 세력을 손발을 묶었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중심된 신군부는 이를 통해 정치, 행정, 입법 기능을 모두 총괄하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다. 과거 유신독재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에 대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신군부에 반대하는 시위와 저항운동이 있었지만, 권력기관과 함께 언론을 모두 장악한 신군부에 맞서기는 역부족이었다. 신군부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마지막 불꽃이었던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면서 권력 장악의 걸림돌을 모두 제거했다. 이제 그들에게 더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미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의 수장 자리에 오른 전두환은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국보위 의장이 되면서 사실상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다.

국보위는 대통령을 자문, 보좌하는 기관이라 했지만, 중요 인사 대부분은 신군부 인사들과 그들에 협력하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초 헌법적인 권력 위의 또 다른 권력기관이었다. 이는 군인 전두환이 정치인 전두환으로 변신하는 데 있어 징검다리였다. 국보위는 신군부의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기능했다. 삼청 교육대는 국보위가 설치 및 운영을 주도했다.  

 

 


계엄사령부의 포고문으로 설치 운영된 삼청교육대는 사회악을 일소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를 통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조직폭력배 등의 불량배나 범죄자들을 체포 구금하고 등급에 따라 재판을 하거나 처벌했다. 삼청교육대는 이들 중 일부를 4주간의 교화 교육을 시키는 기관이었다.

애초 2만 명을 목표로 했지만, 보안사 요원들이 각 경찰서에 상주하면서 활동을 독려하고 각 경찰서별로 할당량이 정해지고 경쟁적으로 체포가 이루어지면서 그 수는 6만 명을 넘어섰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이 체포 구금되는 일이 발생했다. 애초 불량배의 기준은 몸에 문신이 있거나 칼 등에 의한 상처가 있는 경우로 단편적이었고 주변의 신고 등으로 체포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남들과 다르게 가죽잠바를 입거나 틔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노숙자 등도 채포의 대상이었다. 그 기준은 주관적이고 자의적이었다.

가령, 행정기관 등에 민원 제기를 하거나 비협조적인 사람들도 체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변에서 악의를 가지고 그 사람을 고발해 체포될 수도 있었다. 물론, 범죄자들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정의로운 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체포된 사람들 중 30프로 정도는 전과조차 없는 이들이었다. 일상생활을 하다 체포되는 일도 다수 발생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지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모호한 기준에 의해 체포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재판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별도의 심사과정을 거처 등급이 분류되고 군사재판에 넘겨지거나 삼청교육대로 향했다. 그나마 이런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삼청교육대는 교화 교육 대상으로 분류된 이들을 순화 교육을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군대의 군기 교육대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법적 절차에 의해 죄의 유무를 따지고 처벌을 받는 게 당연했지만, 신군부는 이런 법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했다. 군대식 순화 교육을 민간인들에게 적용한다는 자체도 문제가 있었다. 애초부터 무리한 일이었다. 

삼청교육대의 소위 교육 역시 문제투성이였다. 삼청교육대에 들어간 사람들은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고통받아야 했다. 상시적인 구타와 가혹행위가 있었고 기본적인 식사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의 식사는 그들을 훈련시키는 군인들의 남은 잔반이 섞인 비위생적인 내용물로 채워졌다. 극한의 고통 속에 삼청교육대 입소자들은 하루하루는 보내야 했다.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겠다는 삼청교육대의 수칙은 당시 그곳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과거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도 주인공이 삼청교육대의 참상이 다뤄지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훈련생들 중 상당수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그곳에서 나온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고 했던 삼청교육대였지만, 그곳은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의 사지로 몰아넣은 지옥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삼청교육대였지만, 당시 삼청교육대의 현실은 철저히 은폐되고 오히려 미화됐다. 사회의 문제를 파헤치고 알려야 할 언론들은 삼청 교육대에 대한 미화 보도로 일관했다.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삼청교육대를 두고 사회 정화의 장소이고 인생 재생과 재활의 장소로 보도했다. 당시 화면 속에서 삼청 교육대 훈련생들은 문신 가득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훈련생 인터뷰 역시 새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채워져 있었다. 삼청 교육대가 범죄자들의 교화 장소라는 이미지는 대중에 알리려는 의도가 가득했다. 언론을 장악한 신군부의 보도지침을 언론들을 그대로 순응했다. 하지만 삼청교육대 훈련생 상당수는 범죄자가 아니었고 억울한 이들이었다.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을 견뎌낸 삼청교육대 훈련생들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순화 교육이 끝난 이후에도 1만여 명의 인원은 근로봉사의 명복으로 강제 노역을 해야 했다. 삼청교육대를 나온 이후에도 보호감호제 속에 그들의 삶이 제한되어야 했다. 무엇보다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은 이들에 대한 범죄자 낙인이 더 고통이었다. 행정 자료에 그대로 명시된 삼청교육대 이력은 그들의 취업 등 생업에 큰 불이익으로 다가왔다. 아무 죄도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이들에게 범죄자의 낙인은 신체적 고통 그 이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 사람뿐만 가족에게까지 이어졌다.

삼청교육대의 고통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피해자들은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 중요한 명예 회복의 길도 아직 요원하다. 1988년 삼청교육대 사건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였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례적으로 이에 대한 사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명예 회복과 관련한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었지만, 보상 규모도 크게 낮았고 무엇보다 삼청교육대 이력이 가지고 올 또 2차 피해를 우려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 방송에 출연해 당시의 참상을 증언한 피해자도 그 과정까지 오랜 세월 고통을 견뎌야 했다. 피해자가 그 사실을 알리는 데 있어 큰 용기가 필요한 게 삼청교육대 사건의 현실이다. 

전두환의 신군부와 그들이 권력을 중심이 된 제5공화국의 중요한 비전은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그 일환으로 등장한 게 삼청교육대였다. 하지만 삼청교육대는 나와서는 안되는 반인권적 기관이었다. 중요한 목적이었던 범죄 감소 효과도 크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정의롭지 못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청교육대가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삼청교육대는 그 시작이나 운영 과정이 모두 공정한 법 집행과 거리가 있었다. 국가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었을 뿐이었다. 정당한 법에 근거하지 않은 기관에서 훈련생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그 피해를 말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을 범죄자의 낙인과 함께 증오, 혐오의 대상이었다. 문제는 그들에 대한 증오, 혐오를 국가가 조장하고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삼청교육대는 부끄러운 현대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지금도 삼청교육대의 순기능에 동조하고 그때를 그리워하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부끄러운 국가의 폭력에 동조하는 일이다.  또한, 당시 고통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또 다른 가해행위다. 국가폭력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가해질 수 있다. 삼청교육대 사건은 그 위험성을 보여주었다. 결코, 미화되어서도 안되고 반복되어서는 더 안되는 사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삼청교육대의 실체를 더 연구하고 알리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이제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과 명예 회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가와 정치권 차원의 행동도 필요하다. 삼청교육대는 명분도 없고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정의롭지 않은 폭력이었다. 부끄러운 과거를 묻어두기보다는 더 드러내고 가해자들에 대한 냉혹한 역사적 평가와 함께 후대에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