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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중요한 학문적 흐름 중 하나가 실학이다. 실학은 기존의 성리학에 근거한 세계관의 한계를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유학의 한 조류다. 실학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피폐해진 나라의 현실과 그 속에서 분명해진 각종 사회 부조리를 인지한 지식인들이 더 나은 나라를 위한 연구의 산물이다. 

실학은 중국을 통해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고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인지한 이후 더 활발히 전개됐다. 서학이라 불리였던 서양의 학문은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특히, 권력에서 멀어진 몰락한 양반들에게 서학은 더 큰 관심을 받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실학이 발전했다. 양대 전란을 거치고 붕당 간 권력투쟁기를 지나 서인들이 조선 후기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상황에서 몰락한 남인들을 중심으로 실학이 더 활발히 연구됐다.

이 실학은 조선 후기 개혁군주인 정조 시대 실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조정에 등용되면서 그 세력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정조 사후 조선의 정치가 강경 노론과 그에서 파생된 세도정치기에 접어들면서 급속히 수구 보수화의 길을 걸으면서 비주류 양반들과 학자들만의 학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실학자들의 연구는 성리학을 벗어나 천문과 지리, 과학, 경제 등 실질적인 삶과 관련한 부분으로 확대됐고 성리학적 관념론을 벗어난 백성들의 삶과 사회 개혁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한 것으로 이는 지식인들의 사고의 폭을 넓히고 조선의 후기 사회 각 분야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런 실학의 역사에서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인물 중 하면이 성호 이익이다. 그는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 학문 연구와 저술, 후학 양성에 주력했다. 그에서 수학한 인물들은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다수 포함한다. 그의 호를 딴 성호학파가 형성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도 이익의 영향을 받았다. 

 

 

성호 박물관

 



이익은 인생 말년에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집대성한 저서인 '성호사설'을 집필했다. 수십 년간의 연구 성과를 문답의 형식으로 정리한 이 책은 성리학을 물론이고 다양한 학문과 민간에서의 이야기들, 경험들을 담고 있다. 이에 성호사설은 30권 30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되고 있고 그 안에는 천문, 지리, 역사, 제도, 군사, 풍속, 문학 등 망라되어 있다. 책은 분야별로 5권으로 나뉘어 있다. 천문과 지리를 담은 천지문, 여러 사물과 이야기들을 담은 만물문, 각종 사상을 담은 인사문, 유교 경전을 담은 경사문, 중국의 각종 시들을 담은 시문문이 그것이다. 

이 책은 성호 이익 개인의 저서이기도 하고 조선 후기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서의 의미도 있다. 또한, 그 내용의 방대함으로 인해 조선판 백과사전으로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성호사설에서는 민간에서 떠돌던 귀신과 관련한 이야기도 존재한다.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귀신은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고 금기시됐지만, 이익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록했다. 성호사설에서 특이할 만한 귀신은 태자귀다. 이 귀신은 어린 나이에 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은 아이나 태어나지 못하고 죽은 태아의 영혼을 뜻한다. 한편에서는 과거 아이들 사망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전염병인 마마라 불렸던 천연두에 걸려 죽은 아이의 아기의 영혼을 뜻한다고도 전해진다.  

그 이유를 떠나 이런 귀신의 존재가 민간에서 전해졌다는 건 그만큼 조선 사회에서 영아 사망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일반 백성들에게서 영아들의 사망은 자주 발생하는 비극이었다. 각종 세금 부담과 군역과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고달픈 삶을 살았던 백성들의 삶은 항상 가난했고 고단했다. 그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기는 힘들었다.

당연히 각종 질병과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과거에는 아이들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풍조 속에서 아이들이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아이들은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는 밑천이자 노동력이었다. 당연히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아이들은 양반의 자제들 외에는 가지기 힘들었고 그마저도 여성들은 후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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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사회의 혼란이나 기아 등의 상황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였다. 그 속에서 많은 아이들이 그 삶을 채 꽃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다. 태자귀는 어쩌면 비참한 아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 아이들의 죽음 상당수는 원통하고 애통한 죽음이 담겨있었고 이는 무속 신앙에서 큰 원한을 가지고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원귀, 악귀의 존재로 그려졌다. 

무속신앙에서 무속인이 길흉화복을 점칠 때 그와 함께 하는 귀신 중 상당수는 어린 귀신을 동자귀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태자귀는 조선 시대 백성들 사이에서는 매우 두려운 존재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태자귀의 존재를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했다. 성호사설에서 태자귀는 어려서 죽은 아이 귀신으로 그 귀신이 사람에 붙으면 길흉이나 미래를 알려준다고 했다. 이 태자귀가 붙은 사람은 무당이 되기도 한다. 태자귀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데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귀신이 붙게 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양반집 부인이 태자귀에 제안을 장난삼아 받아들였다가 무당이 되고 결국, 병을 앓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민간에서 떠돌던 전설을 각색한 글로 보이지만, 태자귀의 존재가 매우 보편적으로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태자귀는 사악한 주술의 하나인 염매로도 구현된다고 전해지는데 성호사설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성호사설에서는 한 어린아이를 납치 구금하고 아사 상태에 빠질 정도로 굶긴 후, 한 죽통에 먹을 것을 두고 먹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이가 죽통에 들어가면 아이를 죽여 그 영혼이 죽통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다고 했다. 이후 주술사는 그 죽통을 들고 다니면서 부잣집을 찾아다니며 태자귀를 꿰어내 그 집 사람들을 병들에 하고 낳게 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갈취한다고 했다. 

이런 염매 의식은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실체가 나오고 이를 금지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 태자귀를 만들어 주술에 이용하기 위해 아이를 유괴한 사건이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무속신앙을 악용한 나쁜 예이자 악습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탐욕과 그릇된 가치관의 산물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를 이용해 귀신을 만들고 이를 이용하려 했다는 건 어린이를 포함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일명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속에 그 소는 힘없는 어린아이가 포함되어 있다.

 

 

이익의 친필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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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태자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최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기 배우 김태리 주연의 '악귀'가 그 작품이다. 악귀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인 한 청년이 자신도 모르게 악귀에 영혼이 침범 당하고 또 다른 인격체가 되어 자신을 조정하고 그 과정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점점 귀신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그 존재가 과거 한 농촌 마을에서 염매 의식에 희생된 여자아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는 한 부잣집의 탐욕을 이루기 위한 주술을 행하는데 인신공양의 제물이 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귀신이 부잣집 장손들의 의식 속에 함께 하게 된다. 그 집안은 귀신의 능력을 함께 하며 막대한 부를 얻게 되지만, 탐욕의 깊이가 더 커지면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거나 집안의 비밀을 아는 이들에게 귀신의 힘을 빌려 살인을 행하는 악행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게 대를 이어 계속된 악행은 손자 때에 멈추어졌지만, 그 귀신은 사라지지 않았고 주인공의 의식 속에 자리하며 또 다른 살인과 함께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가문에 대한 복수에 주인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추악한 비밀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힘든 생활 여건에서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꿈을 키워가는 청년이었다. 삶은 고달프지만, 꿈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지만,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 점점 좌절하기 시작했다. 그런 약해지는 마음을 파고든 귀신은 이전에 주인공이 하지 못했던 일을 실현하게 하고 악인들을 응징하게 하기도 했지만, 그 방법은 옳지 않았다. 이는 주인공을 범죄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죽게 하는 일을 멈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할 뿐이다. 오히려 귀신의 유혹에 그와의 동행을 꿈꾸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실현할 수 없고 또 다른 존재에 종속되는 건 자신은 존재를 잃는 일이고 주인공을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드라마 악귀 포스터

 



그는 귀신의 원한을 이해하고 그에 관련한 이들을 응징하는 데 공감하지만, 그 방법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귀신에 의해 자꾸만 흔들리는 자신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제 4회를 남기고 있는 이 드라마가 어떻게 한 여자아이를 원통한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단죄하고 주인공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 드라마는 태자귀의 이야기를 상당 부분 차용했다. 그러면서 태자귀가 된 아이들을 현재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도 대신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치열한 경쟁에 내 던져진 청년들은 조선시대 보호받지 못하고 심지어 염매가 되기도 했던 아이들과 닮아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힘든 현실에 더해 그들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려 하는 이들의 유혹과 위협도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사회는 말로는 청년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기회의 문조차 잘 열어주지 않는다. 그 속에서 청년들은 좌절하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고 일부는 잘못된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는 반사회적인 행동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아이들을 귀신으로 만든 조선시대 상황과 다르지 않다. 

태자귀의 존재는 이런 잘못된 현실에 대한 경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무속신앙의 한 부분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약자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사회에 대한 원한을 쌓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진 : 성호박물관 / 위키백과 / 드라마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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