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6번째 이야기는 봄 소풍을 위한 김밥 준비로 시작했다. 지금은 그 풍경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지금의 장년층들에게 학창시절 소풍은 설렘 가득한 날이었다. 그 소풍을 위해 어머니가 준비해주었던 김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진행자는 어린 시절 소풍 때 먹었던 김밥을 재현했고 그 김밥을 담은 작은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여정의 시작은 과거 소풍하면 가장 먼저 떠올렸던 장소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이었다. 1973년 개설된 어린이 대공원은 그동안 그 주인이 수차례 바뀌고 시대의 흐름 속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 어린이 대공원에는 소풍 나온 어린 학생들과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봄날을 즐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5번째 여정은 경남 창녕의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1930년대 개통되어 지금까지 보전되어 있는 창녕 남지 철교를 지나 낙동강변의 드넓은 유채꽃밭 풍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이 낙동강을 터전으로 하고 있는 창녕은 전 세계적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습지인 우포늪으로 대표되는 곳이다. 실제 이야기의 시작도 우포늪이었다. 우포늪은 250제곱 미터에 걸쳐 형성된 습지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있다. 습지의 환경보존적 가치고 커지는 상황에서 우포늪은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보전적 가치와 함께 우포늪은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멋진 풍경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우포늪만의 물안개 가득한 풍경한 일몰의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우포늪은 이렇게 자..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1번째 이야기 장소는 서울의 거대한 녹지공간 서울숲과 함께 하는 동네 성수동이었다. 성수동으로 향하기 전 노란 개나리가 산 전체를 메운 응봉산의 풍경을 살폈다. 서울의 전망과 봄꽃이 공존하는 응봉산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름이었다. 응봉산을 내려와 한강변을 뚜벅뚜벅 걷다 오래된 돌 다리를 만났다. 살곶이 자리하고 불리는 이 다리는 조선시대 수도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로였다. 이 살곶이 다리에는 아들 이방원, 태종의 왕위 찬탈에 반발해 함흥으로 떠났다 차사들의 설득에 한양으로 돌아온 태종의 아버지 이성계와 이방원이 재회한 장소라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 살곶이 다리는 한강의 지천 중랑천을 산책하는 이들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애용하는 시민의 다리로..
전국 방방곡곡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전하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9번째 여정은 봄이면 가장 이슈가 되는 벚꽃 명소 진해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진해는 대한민국 남해안의 항구 도시로 봄이면 열리는 진해 군항제의 벚꽃 풍경을 즐기려는 국내외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또한, 해군사관학교를 비롯해 대한민국 해군의 요람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벚꽃이 피는 봄의 어느 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이런 진해를 지나칠 수 없었다. 여정의 시작은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진해 경화역에서 시작됐다. 이제 기차역의 기능을 하지 않는 경화역은 대신 벚꽃 명소로 알려져 있다. 폐철길을 따라 심어진 벚꽃 나무의 벚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장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철길을 따라 양쪽으로 만개한 벚꽃..
유명하거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역의 오랜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 나서는 동네 탐방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6회에서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 창신동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이야기는 눈이 내리는 날 동대문 성곽공원에 시작됐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성곽길을 따라 만나는 서울 시내의 눈 풍경은 봄이 오기 전 겨울이 주는 마지막 선물과 같은 느낌이었다. 성곽길을 따라가다 오른 낙산공원의 풍경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멋지게 다가왔다. 낙산공원에서의 눈 풍경을 뒤로하고 성곽길을 따라 내려온 길, 성곽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났다. 이 통로는 성곽 축조 당시 만들어진 일종의 비밀 통로였다. 이 통로는 성곽안의 도성과 도성 밖을 연결해 주었다. 지금은 성곽 안은 이화동, 성곽밖은 창신동으로..
설 연휴를 앞두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찾는 곳은 인천항의 역사를 간직한 북성동과 신포동이었다. 이곳은 인천항이 개항하고 최초의 근대 철도인 경인선이 생긴 이후 여러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쇄국정책을 보리고 개항을 선택한 조선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전초 기지가 인천항이었고 최초 근대식 시설이 차례로 들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항은 서구 열강과 일제 침략의 역사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아픔도 지니고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의 남침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이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킨 인천 상륙 작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후 인천항은 수출 주도의 경제 정책에 밀려 부산항에 비해 발전이 더뎌지기도 했지만, 최근 중국과의 무역이 늘어나고 인천공항과의 연계를 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