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지금까지 오랜 세월 수도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서울 정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중심이었고 나라 근대화를 이끌어가는 곳으로 큰 변화를 몸소 겪어왔다. 그 덕분에 서울은 많은 것이 발전하고 새롭고 편리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와 비례해 간직해야 할 과거의 흔적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뒤늦게 그 가치를 인식하고 찾으려 하지만, 이제는 사진 속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상당수다. 우리 주변의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47회에서는 서울 정릉, 삼선동에 발걸음 했다. 시원함보다 차가움이 더 느껴지는 북한산 자락의 계곡을 따라 시작된 여정은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의..
경기도 김포는 오래전부터 벼농사가 시작된 곡창지대였고 김포쌀은 중요한 특산물이었다. 지금도 김포에는 벼농사가 활발하다. 김포는 서해안과 맞닿아 있어 어촌의 풍경도 만날 수 있고 김포공항의 비행기들이 오가는 하늘의 통로이기도 하다. 김포는 한강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 하구의 독특한 풍경이 있고 북으로는 북한과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김포는 수도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과 다양함이 가득하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서울과 가깝지만, 도시보다는 농촌의 풍경이 더 연상되었던 김포였지만, 최근에는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고 인구가 크게 늘었다. 이제는 김포만의 특징의 도시를 특색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45회에서는 김포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여정의 ..
수도권의 대도시 수원은 조선 후기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의 꿈이 함께 하는 도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직접 지켜보았고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이어진 수 맣은 위기를 극복하고 왕위에 올랐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왕권을 강화해 반대 세력을 힘으로 누르는 한편,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고 보다 나은 백성들을 삶을 위해 노력했다. 수원은 정조의 사상과 철학이 함축된 도시였다. 수원을 둘러싼 수원성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이 집약되어 건축된 신개념 건축물이었고 그 안에서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도 한양에서 수원 화성으로 대규모 행차는 지금도 그 웅장함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수원은 정조에게는 정치적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4번째 여정은 서울 서남부의 금천구의 이런저런 이야기로 채워졌다. 금천구는 과거 구로공단이라 불렸던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1970년대 대한민국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공업단지였다. 이곳에는 당시 수많은 섬유, 의류 공장을 비롯해 경공업 공장이 즐비했고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온 많은 젊은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꿈을 키워왔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금천구는 세월이 흐르고 대한민국의 산업의 첨단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경공업 단지는 쇠락했고 당시의 공장들은 하나둘 사려져 지금은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IT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이 때문에 금천구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으로 독특한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진행자는 이 금천구 전체가 내려다보이..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0번째 이야기는 한강의 지천 중랑천을 품고 있는 서울 중랑구가 주인공이었다. 중랑구는 용마산, 봉화산, 망우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랑천까지 더해 도시의 삭막함을 덜어주는 요소가 가득하다. 그 중랑구에서의 여정 역시 중랑천을 따라 시작됐다. 마침 중랑천 변에서는 장미축제가 한창이었다. 중랑천 변을 따라 조성된 장미 군락과 산책길, 정원들이 유유히 흐르는 중랑천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장미축제 기간 운영되는 꼬마 기차는 중랑천을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중랑천변에서 열리는 장미축제는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조성된 장미 군락이 조성되고 그 규모가 커지고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또 다른 축제로 자리했다. 여름의 길목에서 장미꽃 가득한 풍경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휴식..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7번째 여정은 서울의 북쪽 성북구 성북동에서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조선시대 도성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된 성북동은 도성을 둘러싼 성곽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였다. 그 안에서 과거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이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동네 한 바퀴의 시작은 거의 200년 만에 일반 시민들에 개방된 조선시대 정원인 성락원이었다. 그 기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성락원은 자연과 함께 하는 조선시대 정원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과거에는 철저히 숨겨진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그 모습을 제한적이지만, 시민들이 볼 수 있게 됐다. 성북동은 성락원과 함께 조선 시대 수도 한양을 방비했던 성곽들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한양도성 순성길이라 이름 붙여진 성곽길은 그 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