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8회에서는 1969년 9월 통과된 3선 개헌을 둘러싼 막전 막후 상황들을 그 주제로 했다. 3선 개헌은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연임을 명시한 헌법을 바꿔 3번째 대통령 출마의 길을 열기 위해 단행됐다. 하지만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일로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 개정안 통과와 국민투표를 거쳐야 했다.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박정희 대통령이 철권통치를 하던 시절이었다 해도 3선 개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상당한 상황에서 힘으로만 이를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3선 개헌안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이는 이후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며 장기 독재의 시작이 됐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유 있..
고려 말에서 조선 건국까지의 과정은 한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는 전환기였던 탓에 여러 역사적 사건들로 가득했다. 그 사건들의 중심에는 정도전과 정몽주가 있었다. 이들은 고려 말 새로운 정치세력인 신진사대부의 주축을 이루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조력자와 설계자로 정몽주는 고려는 마지막까지 지킨 충절의 상징으로 상반된 길을 걸었다. 이 둘이 왜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야 했는지 역사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2회에 걸쳐 다뤘다. 정도전과 정몽주가 정치 일선에 등장한 건 고려 말 극심한 혼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었다. 고려는 중기 무신정변 이후 긴 무신들의 집권기와 몽고 침입과 그들의 지배를 통해 국가 운영의 시스템이 파괴되고 권문세족이라는 몽고가 세운 원나라와 결탁한 소..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7회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남은 대형 토목공사였던 경부고속도로 공사와 관련한 당시 시대상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인 고속도로지만, 경부 고속도로가 가져온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중요한 배경은 1960년대와 7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함께 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며 경제발전에 가속도를 붙였다. 경제발전은 정권의 불안전한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여기에 당시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체제 속에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최 전방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발전이 체제 우위를 과시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이웃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85회에서는 국내 최대 공업도시 울산을 찾았다. 울산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축을 담당하는 자동차, 조선을 포함한 중공업과 중화학 단지가 밀집한 공업도시로 지금도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거대도시다. 흔히 대규모 공장과 현대적인 빌딩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 울산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숨은 이야기와 오랜 세월 울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 다른 역사가 숨어 있었다. 2015년 개통되어 울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국내 최장 현수교 울산대교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여정이 시작됐다. 화창한 날씨에 탁 트인 시야로 내려다본..
우리 삶에서 스포츠는 땔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에서 스포츠는 중요한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스포츠도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기 프로스포츠는 사람들의 여가 오락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어 막대한 돈이 오가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그 규모와 파생되는 금전적 이익이 상상을 초월한다. 인기 스포츠 선수는 이제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과 함께 부와 명예를 얻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삶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지만, 과거 스포츠는 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고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스포츠가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고 정치가 스포츠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나쁘다고 하지만, 스포츠와 정치는 밀접하게 관..
1995년 광복절에는 우리 현대사에 남을 사건이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조선의 본궁이었던 경복궁을 가로막고 서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가 시작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에 의한 강점기의 중요한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는 해방 이후에도 존속되어 중앙청이라 불리며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고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3년 길었던 군사독재의 시절을 끝내고 들어선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에 따라 광복 50주년이 되던 해 사라지게 됐다. 역사저널 그날 274회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에 관련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립은 1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