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외신은 충격적인 뉴스로 일제히 보도했다. 당시 동. 서독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양국 정부나 관계 당국이 아닌 양 측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동독과 서독의 국민들은 장벽 위에서 함께 만나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망치와 해머, 심지어 중장비를 동원해 장벽을 부수기도 했다. 수십 년 세월 베를린을 갈라 놓았던 콘크리트 장벽은 한순간 사라졌다. 이 사건 이후 독일은 1990년 10월 긴 분단의 세월을 끝내고 통일 독일로 거듭났다. 이런 베를린장벽 붕괴를 놓고 많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말한다. 실제 베를린 장벽 붕괴는 여러 우연과 실수, 사건이 결합된 사건이었다. 동독 당국의 말실수와 이를 오해한 한 언론사의 오보, 마침 베를린 장벽 인근에서 ..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은 1970년대 정부 주도의 강남 개발과 주택 공급 정책에 따라 생겨난 동네다. 당시만 해도 논과 밭, 하천변의 땅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지역이 됐고 각종 고속버스 터미널과 지하철, 고속도로 사회 인프라와 각종 오피스 빌딩, 중요 기관들이 들어섰다. 여기에 대표적인 명문 고등학교들이 밀집한 8학군이 더해지며 반포동은 사회 저명인사들과 엘리트들이 사는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반포동은 고가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최근에는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며 일대 아파트 가격 및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등 대한민국 최고 부촌으로서의 입지를 더 확실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최고 반포동이 생겨났을 당시부터 이어진 50년 역사의 흔적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의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수개월간 지속된 전쟁에서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고 그 피해는 누적되고 있다. 전쟁의 참상이 시시각각 전해지면서 침략자 러시아 그리고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에 대한 분노도 커지고 있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은 대 러시아 경제제제를 강화하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대한 군사적,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개전 초기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침략자와 맞섰고 많은 곳에서 러시아의 공세를 이겨내며 영토 밖으로 러시아 군대를 밀어내는 성과를 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는 거의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는 공세의 초점을 ..
이방원에게 수성을 위한 길에서 중요한 문제가 등장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는 중전 민씨 집안에 대한 처리와 후계자 결정에 관한 일이었다. 이방원은 치열한 권력 투쟁과 잔혹한 숙청 등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지만, 차기 권력에 대한 걱정을 마음 가득 안고 있었다. 자칫 자신의 구축한 왕 중심으로 중앙집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면 그가 권력을 잡기 위해 흘린 피와 각종 과오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도 연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 그는 매사에 위험 세력의 발생 가능성을 살피고 차기 권력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려 했다. 여전히 두 명의 장성한 처남이 있는 민씨 가문은 이방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장인 민제는 병으로 사망하고..
서해안 변산반도에 자리한 전북 부안군은 북쪽의 김제시, 남쪽으로 정읍시와 고창군과 접해있다. 변산반도는 멋진 풍광의 해안선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부안군은 군산에서 시작하는 새만금 방조제의 끝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부안군은 그 지역 안에 산과 전북에서 가장 긴 해안선의 바다와 섬, 넓은 들판이 함께 있어 산들바람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66회에서는 천해의 자연과 함께 하는 동네 부안을 찾아 그곳의 이모저모와 사람들을 만났다. 부안의 바다와 접한 해안가 산책로를 걸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주로 남부 지방의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활엽수인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 걸었다. 멋진 해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변산반도 일대의 해안은 서해..
흔히 고대 역사를 배우면서 청동기 시대를 기점으로 신분제가 만들어지고 사회 계층이 생겨났다고 배운다. 신석기 시대 농경이 시작되고 그에 따른 잉여 생산물 발생, 그에 따른 경제력 차이가 부의 불균형을 만들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그보다 못한 자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하층민이 된 이들은 노예가 됐다. 여기에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국민들 상당수도 노예로 전락했다. 노예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재산, 가축처럼 취급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임이 부인되는 노예에게 인격이 있을 리 없었고 인간으로서의 기본권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노예는 소유의 대상이었고 양도, 매매의 대상이었다. 그 노예의 삶은 보통 대를 이어 세습됐고 그 굴레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인류 공통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