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방원에게 수성을 위한 길에서 중요한 문제가 등장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는 중전 민씨 집안에 대한 처리와 후계자 결정에 관한 일이었다. 이방원은 치열한 권력 투쟁과 잔혹한 숙청 등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지만, 차기 권력에 대한 걱정을 마음 가득 안고 있었다. 자칫 자신의 구축한 왕 중심으로 중앙집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면 그가 권력을 잡기 위해 흘린 피와 각종 과오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도 연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 그는 매사에 위험 세력의 발생 가능성을 살피고 차기 권력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려 했다. 여전히 두 명의 장성한 처남이 있는 민씨 가문은 이방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장인 민제는 병으로 사망하고..

서해안 변산반도에 자리한 전북 부안군은 북쪽의 김제시, 남쪽으로 정읍시와 고창군과 접해있다. 변산반도는 멋진 풍광의 해안선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부안군은 군산에서 시작하는 새만금 방조제의 끝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부안군은 그 지역 안에 산과 전북에서 가장 긴 해안선의 바다와 섬, 넓은 들판이 함께 있어 산들바람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66회에서는 천해의 자연과 함께 하는 동네 부안을 찾아 그곳의 이모저모와 사람들을 만났다. 부안의 바다와 접한 해안가 산책로를 걸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주로 남부 지방의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활엽수인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 걸었다. 멋진 해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변산반도 일대의 해안은 서해..

흔히 고대 역사를 배우면서 청동기 시대를 기점으로 신분제가 만들어지고 사회 계층이 생겨났다고 배운다. 신석기 시대 농경이 시작되고 그에 따른 잉여 생산물 발생, 그에 따른 경제력 차이가 부의 불균형을 만들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그보다 못한 자들을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하층민이 된 이들은 노예가 됐다. 여기에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국민들 상당수도 노예로 전락했다. 노예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재산, 가축처럼 취급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임이 부인되는 노예에게 인격이 있을 리 없었고 인간으로서의 기본권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노예는 소유의 대상이었고 양도, 매매의 대상이었다. 그 노예의 삶은 보통 대를 이어 세습됐고 그 굴레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인류 공통의 ..

충청남도 북쪽의 아산만과 접하고 있는 아산시는 동쪽으로 천안시, 서쪽으로 당진시와 예산군, 남쪽으로 공주시, 북쪽으로는 안산만을 공유하는 평택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아산시의 역사는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이 통합하여 도농복합도시가 되면서 시작됐다. 아직 청년의 나이에 있는 젊은 도시다. 아산시는 대기업을 포함해 다수의 제조업체들이 있는 제조업의 도시고 KTX 천안 아산역을 포함해 장항선 철도가 지나고 수도권 1호선의 종착역인 신창역이 있다. 이렇게 제조업과 교통의 요지인 아산시는 충남에서 천안 다음의 제2의 도시고 충청권 전체로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도시가 됐다. 최근에는 신도시가 조성되어 점점 더 그 인구가 늘어가는 추세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나날이 성장하는..

이방원과 아버지 이성계의 대결은 내전, 조사의의 난으로 이어졌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왕위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가 사랑했던 신덕왕후와 그의 아들들을 살해한 이방원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성계는 태상왕의 자리로 밀려나 있었지만, 복수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이성계는 젊은 시절부터 그의 중요한 정치, 군사적 기반인 동북면 일대에서 군대를 모았고 아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여전히 이성계의 권위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북면과 그들에 동조하는 서북면의 군사까지 더해진 군대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이방원은 중앙군을 파견해 그들을 제압하려 했지만, 백전 백승의 장군이었던 이성계의 지휘를 받는 군사들의 위세는 쉽게 꺽이지 않았다. 비록 왕위에서 물러났지만, 창업 군주로서의 권위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

전라남도 서남부, 영산강 하구에 자리한 목포는 1897년 일찍부터 개항한 목포항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큰 번영을 누렸다. 목포항과 호남선 철도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목포역을 중심으로 목포는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였고 1940년대 부산, 인천, 원산과 함께 우리나라 4대 항구 중 하나였다. 그 이면에는 호남평야에서 나는 쌀들이 모여 일본으로 향하는 항구로 일제 강점기 수탈의 현장이라는 아픔도 있었다. 해방 후 목포는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쇠퇴기를 겪었다. 수출 각종 물동량이 부산과 인천항으로 집중되고 호남 지역이 산업화 시기 크게 소외되면서 한때 전국 6대 도시의 명성도 사라졌다. 하지만 목포는 근대화 유산으로 지정된 일제 조선 말 일제 강점기 건축물이나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새로운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