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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후 프로야구 각 구단들은 사상 유례없는 선수단 정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야구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선수들 상당수가 팀을 떠났다. 구단들은 과거의 명성과 기록들이 아닌 미래 가치와 전력에 보탬이 될지 여부를 선수 평가에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여기에 가능하면 젊고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들에게 보다 가중치를 주었다. 그 결과 30살을 넘어선 중견급 이상, 베테랑 선수들은 더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많은 선수들의 방출 통보를 받았다. 

보통이라면 그 선수 중 상당수는 타 구단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새롭게 기회를 잡은 선수들은 극 소수에 불과했다. 긴축 기조에 뚜렷한 현실에서 프로야구 구단들을 방출 선수들의 영입에 신중했고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 구단들도 많았다. 결국, 방출 선수들 대부분은 현역 선수의 꿈을 접고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선수가 있다. 지난 시즌 후 롯데에서 방출된 베테랑 좌완 투수 고효준이 그렇다. 1983년생으로 당장 은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기존 소속팀에서 방출된 투수였던 그는 극히 낮은 재취업의 확률을 이겨내고 최근 LG와 선수 계약을 했다. 1군 최소 연봉 수준인 5천만을 뛰어넘는 1억 원이 계약 조건이었다. 얼마 전까지 은퇴를 고려해야 했던 그로서는 올 시즌 1군 마운드에 설 기회를 잡았다. 

 

고효준, 롯데 시절 투구모습



고효준의 반전은 포기하지 않거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 그의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롯데에서 방출된 직후 고효준은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며 타 구단의 부름을 기다렸다. 한참 어린 후배들과 함께 하는 KBO 주관의 체력 훈련에서 참여하며 몸을 만들었다. 고효준은 자신이 여전히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선수로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SNS를 통해 자신의 투구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그의 의지는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LG는 고효준을 테스트하고 영입을 결정했다. 

LG로서는 그의 영입을 통해 좌완 불펜진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LG는 이미 리그 상위권의 좌완 불펜 투수 진해수가 있고 젊은 유망주 좌완 투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30대 후반의 베테랑 투수를 영입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LG는 올 시즌 우승이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의 전력도 갖추고 있다. 원나우를 위해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진해수는 수준급 좌완 투수지만, 지난 시즌 홀로 좌완 불펜진을 지켰다. 필승조에서 진해수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좌완 투수로 무려 76경기에 등판했다.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 결과 진해수는 시즌 막바지 체력적인 문제를 보였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그 여파는 그대로 이어졌다. 그의 부담을 덜 좌완 불펜 투수가 절실한 LG였다. 젊은 투수들이 있지만, 선발 투수 유형이 많고 위기에서 믿고 내보낼 만한 경험이 부족했다. 고효준은 이런 LG의 수요에 부합하는 투수였다. 특별한 부상도 없고 여전히 140킬로 중반을 넘어서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LG의 고효준 영입은 팀의 필요에 의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현역 선수 생활을 연장한 고효준은 야구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2002 시즌 롯데에 입단한 고효준은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방출되고 말았다. 그는 2004시즌부터 SK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안정감 있는 투수는 아니었다. 고효준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전천후 투수로 활약했지만, 들쑥날쑥한 투구가 항상 문제였다. 빠른 공을 던지는 좌완투수의 장점이 가려지는 원인이었다. 이에 그는 점점 1군 전력에서 멀어졌고 2군에 주로 머물러야 했다. 선수 생활 지속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었다. 고효준은 SK 시절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에서 트레이드를 자청했던 일화가 있을 정도로 출전 기회에 간절했다. 

이런 간절함은 2009 시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9 시즌 선발과 불펜진을 오가는 스윙맨으로 활약한 고효준은 프로 데뷔 후 첫 10승 투수의 반열에 올랐다. 불펜 투수로는 많은 39경기 126.2 이닝을 소화했지만,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야구팬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고효준은 2011 시즌까지 100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SK 불펜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2012 시즌을 기점으로 고효준은 급격한 내림세를 보였다. 여전히 공은 위력이 있었지만, 제구 문제가 다시 도드라졌다. 불펜 투수로는 무리가 되는 이닝을 3시즌 연속 소화하면서 과부하의 문제도 있었다. 점점 그는 SK 불펜에서 다시 역할이 줄었다. 성적 지표도 급격히 나빠졌다. 이대로 끝날 수 있는 시점에 KIA로의 트레이드는 새로운 기회였다. 2016 시즌 KIA로 트레이 된 고효준은 2017 시즌 반등에 성공하며 KIA 우승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이대로 KIA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를 무난히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그렇게 순탄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2018 시즌을 앞두고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고효준은 보호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고 롯데의 선택을 받았다. KIA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그보다는 더 젊은 투수들을 먼저 보호했다. 마침 좌완 불펜 투수가 필요했던 롯데는 2017 시즌 반등에 성공한 고효준을 선택했다. 이렇게 고효준은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롯데로 돌아와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기회를 잡았다. 그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롯데에서 고효준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좌완 불펜 투수였다. 2019 시즌에는 무려 75경기에 등판하기도 했다. 좌완 불펜진이 불안했던 롯데는 승부처에서 고효준 카드를 어김없이 꺼내들었다. 2019 시즌 고효준은 팀에 최하위로 쳐진 상황에서도 팀에서 가장 많은 15홀드를 기록하며 불펜의 최후 보루 역할을 했다. 마침 2019 시즌은 고효준이 FA 자격을 앞둔 시점이었다. 고효준은 2019 시즌의 기록을 토대로 그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기대했다. 

고효준의 바람은 현실과 차이가 있었다. 2019 시즌 최하위를 기록한 롯데는 리빌딩 기조를 분명히 했고 베테랑 선수들에게 대한 비중을 점점 줄여나갔다. 30대 후반의 고효준과의 FA 협상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팀 팀 마무리 투수 손승락이 2번째 FA 협상이 결렬되며 은퇴를 선언하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손승락에 비해 커리어가 크게 밀리는 고효준은 점점 벼랑 끝으로 몰렸다. 보상 선수 규정으로 타 팀 이적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의 FA 신청은 선수 생활의 강제 종료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고효준은 롯데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FA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없는 1년 최대 1억 2천만 원으로 FA 계약이라 하기도 어려운 계약이었다. 현역 선수로의 의지가 컸던 고효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현역 선수 생활을 연장한 고효준이었지만, 2020시즌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FA 협상이 길어지면서 시즌 준비가 충실하지 못했고 1군 등판 일정도 늦어졌다. 2019 시즌의 많은 투구이닝의 후유증도 있었다. 2020 시즌 고효준은 1군에서 24경기 마운드에 올랐고 1승에 방어율 5.74의 평균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 이제는 끝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성적이었다. 롯데는 시즌 후 그를 방출 선수 명단에 올렸다. KBO 리그 홈페이지에서 그의 프로필은 은퇴선수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KBO 리그 프로필을 현역 선수로 바꾸게 만들었다. 여전히 그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좌완 투수라는 장점이 있고 선수로서의 강한 의지와 절실함이 있다. 그동안 쌓았던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좌타자들이 각 팀의 주축 타선을 이루는 현실에서 강한 구위의 좌완 투수인 고효준은 좌타자 스페셜리스트로 활용 가능한 자원이다. 이런 장점은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큰 LG가 그를 재평가하게 했다. 

힘든 여정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 고비도 있었다. 고효준은 그 고비를 넘고 또 넘어 올 시즌에도 현역 선수로 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힘겨운 경쟁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전력에 보탬이 안된다면 LG는 냉정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있다. LG는 두꺼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다. 고효준으로서는 주어진 기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분명하게 입증해야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분명 어려운 상황이지만, 고효준의 모습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라져 가는 선수가 다수 발생하는 프로야구 현실에서 흔치 않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과연 고효준이 그 희망을 계속 지켜갈 수 있을지 올 시즌 그의 투구 하나하나가 궁금하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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