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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란 관련 뉴스가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UAE를 방문했던 대통령이 현지에 파견된 국군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와 UAE의 친선 관계를 강조하다 이란을 적으로 규정하는 발언이 양국의 외교 갈등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그 한편에서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우리나라가 이란에 지급하지 못한 원유 수입대금의 조속한 지급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문제는 우리가 풀기 어려운 일이지만, 대통령의 발언 이후 다시 양국의 외교쟁점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이는 우리 원유 수급의 중요한 루트인 이란의 영향력이 큰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우리 선박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키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속된 양국의 우호관계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이란은 한국이 중동 특수를 누리던 1970년대 이후 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강남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테헤란로는 우리나라와 이란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란은 핵 개발 문제 등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크지만, 중동에서 여전히 영향력이 크고 미국과 관계가 개선되면 중동에서 큰 시장이 될 수 있는 나라다. 이란은 중동 지역의 강국으로 많은 인구는 시장으로 가치가 크고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는 가능성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란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란 역시 명암이 공존하는 나라다. 이란은 중동에서 이슬람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큰 나라다. 표면적으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 있지만, 실제 나라 운영의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건 종교 지도자 그룹이다. 이란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신정일치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란의 이슬람교는 매우 보수적이다. 이 지점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차별과 사상 표현 자유의 억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는 이란을 적대시하는 나라에서 이란을 비난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최근 이란에는 인권 관련 이슈가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 여성의 죽음으로 촉발된 히잡 혁명과 이란 정부의 무자비한 대응이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9월, 이란의 20대 초반 젊은 여성이 히잡 착용과 관련해 도덕 경찰의 체포되어 구금당하는 과정에서 의문사하며 시작됐다. 이 여성은 평소 지병이 있었다. 그 여성은 구금되어 있던 중 사망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이 여성은 자신의 몸 상태에 이상을 느끼고 조치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를 외면했다. 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면 이 여성은 사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공권력에 의한 사망이 명백했지만, 이란 당국은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이는 대중들의 분노로 이어졌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는 전국적인 반 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이란 곳곳에서 정부의 억압적인 통제 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점점 그 세력을 키워 민중 혁명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에 대한 오랜 불신과 불만의 폭발이라 할 수 있다.

이란의 국민들은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경제제재 여파로 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란 정부는 민생 문제 해결에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에 대한 비판을 힘으로 억압하기만 하고 있다. 반정부 성향의 야당, 언론을 탄압하는 한편, 국민들의 생활 전반을 이슬람 교리로 통제하려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도덕 경찰 제도는 매우 전근대적인 일이다.

 

 

 



이런 사회의 상황 속에 이란의 여성들은 더 큰 차별 속에 살고 있다. 히잡은 여성에 대한 억압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란은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있고, 그와 관련한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학교에서 복장상태와 두발 등을 단속했던 것 이상의 상황이 이란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히잡은 본래 의미는 가리다 나누다로 정의되는 데 점차 이 말은 점점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의 해석에 따라 여성의 의복과 복장을 지칭하게 됐다. 애초에 히잡은 연중 뜨겁고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 몸을 보호하는 의상이었지만, 점차 여성들의 노출을 극도로 제한하는 전통 복장이 됐다. 복장의 노출 정도는 각 나라마다 다르고 보수적인 국가일수록 매우 극단적인 형태를 보인다. 이에 히잡은 머리카락을 가리는 수준의 히잡부터 몸을 가리는 정도에 따른 니캅과 온몸을 가리는 부크카까지 여러 형태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히잡이 시대에 변화에 따라 다양한 의복이 공존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전 근대적인 의복이라는 점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고 히잡 착용을 강제한다는 점은 개인의 자유, 특히,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세속화된 이슬람 국가에서는 히잡 착용이 강제되지 않고 있다. 특히, 1차 세계까지 이슬람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의 후예 튀르키예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서구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고 이슬람의 전통 모자 착용을 금지하는 모자법을 제정하는 등 의복에 대해서는 매우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도 터키에 가면 사람들의 의복이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자유로움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히잡 착용은 여성들에게 의무사항이 되고 있다. 그런 국가에서 여성들은 교육이나 사회 참여, 직업 선택 등에서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 히잡을 단순히 여성들의 전통 의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히잡혁명이 지속되고 있는 이란이지만, 1930년대부터 이란은 강력한 서구화 정책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란을 지배하던 팔레비 왕조는 서구식 근대화를 주도했다. 팔레비 왕조는 히잡을 전 근대적인 상징으로 규정하고 의복과 복식의 서구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히잡 폐지를 강력한 추진했다. 팔레비 왕조는 히잡 착용 금지법을 제정하고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또한, 왕가 가족들이 이에 솔선수범하기도 했다. 보수 종교 종단의 반발이 있었고 사회 관습으로 뿌리 깊게 자리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데 따른 국민적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팔레비 왕조는 히잡 폐지를 정권 차원에서 강력히 시행했다. 히잡 착용 금지는 서구화 근대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 팔레비 왕조는 여성들의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고 교육 기회를 확대했다. 이는 근대화와 산업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의 일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등 여권 신장 정책을 강력히 시행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 이란은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친미국가가 됐고 백색혁명이라 불리는 서구식 근대화 개혁을 더 가속화됐다. 

개혁의 방향으로 국민들의 기본 권리를 신장시키고 남녀의 차별을 해소하는 등 옳은 방향이었지만, 전통적으로 나라의 중요한 기득권 세력이었던 이슬람 종단에 큰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토지개혁은 종단의 경제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었다. 이와 함께 이런 서구화 개혁이 그 한편에서 팔레비 왕조의 권력 기반을 더 튼튼히 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점도 문제였다.

백색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는 토지개혁, 세속주의 지향, 공교육 강화를 통한 문맹률 감소, 여성의 참정권과 교육권 보장 및 히잡 착용 금지 등을 내세웠지만, 서구화의 중요한 요소인 민주주의 정치 제도 발전을 등한시 했다. 팔레비 왕조는 전제 군주제 국가였다. 권력의 소수의 세력에 독점되고 이는 경제적 불평들을 심화시켰다. 서구식 식 개혁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커지고 민생이 더 악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는 팔레비 왕조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커지게 했다. 이에 기존의 이슬람 종교세력은 국민들의 반정부 여론을 등에 업고 반정부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런 정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에 팔레비 왕조는 비밀경찰을 조직해 이를 탄압하고 군비를 강화해 왕조와 권력을 힘으로 수호하는 등의 조치로 제압하려 했다. 국민적 저항은 한층 더 거세졌다. 팔레비 왕조의 사치와 권력의 부패와 무능이 심화되면서 국민들의 증권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 1978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붕괴되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근거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새롭게 시작됐다. 이는 이란을 중동지역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에서 반미 국가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이란의 민중들에 의한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은 양국의 관계를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이후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고 지금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지만, 그 역풍은 엄청났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실제 이슬라 종교지도자가 나라를 지배하는 신정일치 국가였다. 이를 통해 이란의 정치 시스템은 퇴행되고 말았다. 이에 머물지 않고 이란은 팔레비 왕조 이전의 여성에 대한 분리, 차별 정책으로 다시 시행했다. 폐지됐던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 다시 강제화됐고 여성들에 대한 교육, 사회 참여도 다시 제한됐다. 기존의 서구화 정책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히잡 착용의 강제화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는 이슬람 혁명에 함께 한 민중들의 사회 변화 요구에 역행하는 일이었다. 민생의 안정을 가져왔다면 혁명의 명분이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 후 이라크와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치렀고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 경제제재로 나라의 경제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국민들의 삶은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이는 혁명을 지지했던 국민들의 뜻과 다른 일이었다. 여기에 이란 집권층의 행태도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가 이슬람 혁명의 원인이었지만, 현재 이란의 상류층과 권력층들은 국민들의 고통과 상관없이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심지어 SNS를 통해 그들의 삶을 자랑삼아 보여주기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집권층의 권력과 부는 세습되고 있다. 이슬람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가 평등이지만, 현재 이란은 팔레비 왕조 때와 같이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혁명은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한 게 아니라 집권층의 교체만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 속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은 그들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강경 노선을 지속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의 해석을 지극히 보수적으로 하면서 국민들의 생활 전반을 통제하고 있고 대외적으로 서구 사회와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지속적인 핵 개발은 그들은 국제 사회에서 더 크게 고립시키고 있다. 러시의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가 버팀목이지만,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적인 공적이 됐고 중국은 미국과의 대립과 코로나 상황 등으로 인해 대외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우방국들의 상황 악화는 이란의 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과의 핵 합의로 대외 무역이 다시 활성화되고 원유 수출로 경제의 돌파구가 열리는 듯 보였지만, 미국 트럼프 집권 이후 핵합의가 파기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고 경제 제재가 다시 강화되면서 국가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그들이 주 수입원인 원유 수출 대금 상당수가 해외에 묶여 있다. 우리나라 역시 70억 달러 상당의 원유 수입 대금을 이란에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이란의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이란 주적 발언은 어렵게 무마시켜왔던 원유 수입대금과 관련한 갈등을 키우는 내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란의 정권은 이런 강경 노선을 지속하면서 민생을 안정시키지 못했고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이제 이란 국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히잡혁명은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피폐해진 민생을 개선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히잡은 오랜 세월 여성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억압했던 족쇄고 이를 사라지게 하는 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란의 청년들은 남녀 구분 없이 그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서고 있다. 이런 이란 국민들에게 전 세계인들도 연대하고 있다. 이란의 히잡혁명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되찾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이해관계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란 당국은 강경 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들 상당수가 공권력의 총탄에 희생됐다. 그 속에는 다수의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다.  철저한 언론 통제를 하는 이란의 특성상 알려진 수백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시위에 가담했던 상당수 인원들이 재판을 통해 사형은 선고받고 형이 집행되고 있다. 그들 외에 많은 시위대가 투옥된 상황이다.

문제는 이란 정부는 이런 상황을 촉발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버릴 마음과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원치 않는 정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란의 강력한 기득권층인 종교계는 요지부동이다. 국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는 커녕 더 악화시키기만 하는 정권의 그 존재의 이유가 없다. 선거는 그런 정권을 국민들이 바꿀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란의 선거는 불공평한 대결장이고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구조다. 선거 제도는 있지만, 정권 교체가 요원한 이란의 상항이다.

이란 국민들의 그들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다. 히잡혁명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다. 또한, 극단주의 정치를 끊으려는 투쟁이다. 이란의 히잡혁명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국제 사회도 이해 관계로 이에 접근하지 말고 인원의 관점에서 이를 바라봐야 한다. 이는 상식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이란 국민들의 의지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응원을 함께 보낸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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