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단 시간 내 겪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그 충돌은 급격한 서구화로 그 주도권이 변화로 넘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빠른 변화가 익숙하고 그에 따라가야 함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함에 발을 동동 구를뿐이다. 연일 언론과 매스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보도되고 그것이 성공의 척도임을 알려주는 상황에서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어느새 우리는 빠른 발전과 변화, 기존 질서의 파괴가 옳다는 생각이 마음 가득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사회악의 중요한 부분인 범죄도 지능화되고 다..
1863년 1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당시 미국은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 11개 주와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한 링컨 대통령 정부의 남북전쟁 중이었다. 1861년부터 시작한 전쟁은 북부 연합이 우세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이어졌고 남북 모두에 인적, 물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참혹한 대결이었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전쟁의 전세를 북부에 유리하게 바꾼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링컨으로서는 정치적으로 큰 승부수였고 결과적으로 미국이 견고한 연방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워싱턴이 미 건국의 아버지라면 링컨은 미합중국을 연 대통령으로서 미국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다.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347회에서..
최근 우리는 과거에서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고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제 과거는 낡고 버려야 하는 시간이 아닌 새로운 창조를 위한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추억하고 이를 재현하려는 흐름인 레트로는 잠깐의 유행이 아닌 중요한 유행으로 자리했다. 이 흐름속에서 과거의 대중음악과 각종 예술작품들도 재평가 받고 새롭게 창조되기도 한다. 오늘 살펴볼 만화이자 영화인 공포의 외인 구단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작품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만화가 이현세의 동명 원작을 1986년 당대 최고 인기 감독 중 한 명이었던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 단편 위주의 만화 시장에서 여러 권으로 구성된 장편 만화가 성공할 수..
우리 역사에서 마지막 왕조였던 조선시대의 역사는 1592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가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다. 그만큼 임진왜란은 사회,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1592년부터 7년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임진왜란은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왔다. 전 국토는 황폐화됐다. 산업의 근간인 농업을 지탱하는 농토의 피해는 극심했다. 그때의 피해는 조선 후기에 복구되지 못했다. 또한, 전란의 와중에 조선의 사회 시스템 전반이 파괴되고 전후 수습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에 16세기와 17세기 소빙기라 불릴 정도로 이상 저온 현상으로 대표되는 이상 기후는 농업생산을 더 위축시키고 식량난을 불러왔다. 전쟁과 이상기후는 일반 백성들의 삶을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기아와 질..
세계 역사에서 최악의 독재자로 손꼽히는 인물은 단연 나치 독일을 이끌었던 독재자 히틀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으로 전 세계의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더해 인종주의를 통치 전면에 내세웠다. 나치 독일은 편협한 민족주의에 근거해 아리아인들을 가장 우월한 민족으로 여기고 타 민족에 대한 억압과 탄압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유대인 외에도 유럽 내 소수 민족들은 나치 독일에 큰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유럽은 철저히 파괴됐다. 독일과 동맹 관계에 있었던 제국주의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고 한국을 강제 병합해 식민지로 만들었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인적 물적으로 엄청난 수탈을 당했다. 중국은 거의 전역이 전장이 됐고 수많은..
코로나 사태 전 터키는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였다. 멋진 자연과 동. 서양이 교차하는 독특한 문화 전통, 6.25 한국 전쟁 참전 등의 이유로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칭하는 현지의 우호적 분위기도 터키에 대한 친밀감을 높였다. 그중 이스탄불은 대표적 관광지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이 나뉘고 아프리카와도 연결되는 지리적 위치는 이스탄불을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로 만들었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스탄불을 소개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영상을 보면 이슬람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이스탄불은 로마제국 시대 그 이름을 바뀌기 전까지 비잔티움이라 불렸고 이후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콘스탄티노폴리스나 콘스탄티누폴리스 등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