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은 현대사에서 격변을 가져왔던 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유신헌법을 통해 사실상 종신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던 절대 권력자 박정희가 그의 최 측근의 총탄에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분명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이후 맞이한 절대 권력의 붕괴는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대한민국의 또 다른 군사 독재의 시대에 맞이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비극이 역사로 남았다. 그리고 그때의 아픔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 사살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잃었고 이후 친일파..
세도정치는 조선 후기 암울한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 세도 정치는 개혁 군주였던 정조 사후 그의 아들인 순조 임금부터 헌종, 철종에 이르기까지 안동 김씨로 대표되는 특정 가문과 그와 관계된 특정 집단들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한 시기를 말한다. 60년 넘게 지속된 세도정치 기간 조선은 이들의 극심한 부정부패에 시달리며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졌다. 소수의 특정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정치 시스템은 사실상 마비됐고 과거제도와 같은 공정한 관리 등용 역시 무의미해졌다. 권력의 독점은 왕권마저 무력화시켰다. 순조 이후 헌종과 철종은 허수아비에 불과할 정도로 세도정치의 힘은 막강했다. 세도정치가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기반으로 부당한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매관매직으로 대표되는 그들..
지난 1월 12일은 우리나라 독립 운동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가 김상옥 열사의 일본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사건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이사건은 일제의 우리 민족 탄압의 중심이었던 종로경찰서를 직접 공격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 거사를 실행한 김상옥 열사는 젊은 나이에 그 삶을 다하고 말았다. 우리 독립 운동의 큰 전환점은 1919년 3.1 만세운동이었다. 우리가 3.1절이라고 부르는 전국적인 만세 운동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 강제 합방으로 인해 나라를 잃었던 조선의 국민들이 성별, 계층, 종교를 망라해 일제에 맞서 항거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암행어사는 과거 사극에서 자주 사용됐던 소재 중 하나였다. 비리와 폭정을 일삼으며 일반 국민들을 수탈하고 못살게 하는 탐관오리들을 벌주고 무고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일종의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암행어사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들이 신분을 숨기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 악을 응징하는 모습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권선징악의 드라마 소재로 그만큼 극적인 소재도 그리 흔치 않았다.실제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비밀리에 왕명을 받고 지방을 순시하며 비리 관리를 벌주고 잘못된 지방행정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다. 당연히 암행어사의 존재는 일반 국민들에게 희망이었다. 이들은 이런 사찰 업무와 동시에 민심을 살피고 왕에게 전달하는 가교 역할까지 했다.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중앙의 지방 통제를 강..
우리 역사에서 조선시대는 현대에 가장 가까운 시대로 현대들에게 친숙한 시기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드라마의 소재로 조선시대, 왕이 있는 궁궐의 이야기는 자주 사용된다. 상대적으로 많은 사료가 있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지만, 왕을 중심으로 권력을 향한 대결과 갈등, 그 안에서 파생된 다양한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도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라 할 수 있다.그리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권력의 비정함을 보게 된다. 그것에서 파생된 왕권과 신권의 대립, 신하들 간 당쟁, 왕위 계승을 위한 왕자들의 대립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대결을 불러왔다. 그 대결에서 승리한 자는 역사의 중심에 섰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거나 그의 진면모가 왜곡되는 패배자의 역사를 감수해야 했다. 이는 권력의 2인자..
조선의 역사를 배우면서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당파싸움이다. 분명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다. 대립과 분열을 강조하는 듯 한 단어의 조합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이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 사관의 영향이 강하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파를 갈라 싸우기를 좋아하고 단결하지 못한다는 식의 논리가 그것이다. 실제 우리 역사에 있어 당파싸움, 지금은 붕당정치로 칭해지는 정치권의 대립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붕당정치에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과한 부분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붕당정치의 일부분만을 보고 그것을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진 정치와 거리가 먼 당파 간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이루고 수준 낮은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