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물론이고 서양의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기억되고 있는 빅토르 위고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1831년 발표된 '파리의 노트르담'과 1862년에 발표된 소설 ' 레미제라블'은 지금도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읽히는 대표적인 고전 작품이고 영화나 뮤지컬, 드라마의 소재가 됐고 되고 있다. 뮤지컬로서 두 작품은 항상 많은 관객이 들어오는 등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중 '레미제라블'은 프랑스는 물론이고 서양사의 큰 전환점이 된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의 사회상과 그 속에서 각개 각층의 대변하는 인물의 삶 속에서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과 각종 모습들을 담고 있다. 무려 65만개가 넘는 단어들도 이루어진 방대한 서사와 세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에 레미제라블은 역사상 그 길이가 긴 소설로서 유명..
그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수단은 말과 그 말을 기록하는 문자, 글이다. 말과 글에는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말과 글을 함께 가지고 있는 민족은 의외로 많지 않다.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민족도 다수 존재한다. 그만큼 말과 글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 민족과 나라에 의해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다면 더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다른 문화에 동화되 그들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일도 있다. 이 점에서 우리가 말하고 사용하는 한글은 너무나 소중한 유산이다. 1446년 우리 역사에서 최고 성군 중 한 명으로 칭송되는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이 그의 재위 기간 온 힘을 다해 만든 훈민정음의 반포로 한글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 훈민정..
미. 소 냉전시대 두 나라는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을 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국지전에 개입하기도 했고 세력 확산을 위해 정치, 경제적인 움직임을 활발히 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강하게 대립을 했다. 그 사이에서 세계 각국은 두 강대국 중 선택을 강요받았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눠 함께 대립각을 세웠다. 우리나라 역시 남북이 냉전시대의 최 전선에서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 대치하는 냉전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주도하는 또 다른 기관들이 있었다. 미국의 CIA, 소련의 KGB로 대표되는 첩보, 정보기관이었다. 양국의 정보기관은 자국은 물론이고 대외에서 각종 첩보활동을 했다. 물론, 이들의 기능에는..
우리 근. 현대사의 암흑기였던 일제 강점기는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어 8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아픈 흔적이 우리 삶 곳곳에 남아있다. 일제의 잔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고 그 시대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도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역사의 가해자인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일 간의 역사 인식에 대한 차이는 국가 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일제 강점기 민족을 배신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들에게 협력한 친일 매국세력들의 청산은 여전히 우리 역사의 숙제로 남아있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를 통해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정치적 상황과 이어진 냉전시대의 도래, 6.25 한국 전쟁 등을 거치..
제2차 세계대전 후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큰 줄거리는 경제발전, 산업화였다. '한강의 기적'이라 할 만큼 한국의 경제발전은 서구 선진국의 이뤄 놓은 성과를 불과 수십 년 사이 달성할 만큼 빠르고 눈부셨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 극심한 인적 물적 수탈을 겪었고 해방 이후 6.25 한국 전쟁이는 큰 비극을 맞이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 빈곤의 시간을 지나 한국은 1960년부터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고 이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은 이후 엄청난 경제 발전에 성공했다. 정부 주도 압축 성장의 결과였다. 잘 살아보려는 일념으로 가득했던 국민들의 강한 열망과 의지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각종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한국은 선진국 진입 ..
고대와 근.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팽팽히 맞섰던 삼국시대가 먼저 떠오른다. 삼국은 경쟁과 협력 배신의 관계 속에서 함께 경쟁했다. 그 속에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독창적인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다. 삼국시대 문화, 예술의 유산은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융합되어 한층 더 독창적인 형태로 나타났고 우리 민족 문화, 예술의 원류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삼국시대의 역사 사료는 부족하고 그 기록의 상당 부분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사료에 근거해야 한다. 삼국시대 역사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 김부식의 삼국사기 역시 중국의 사료를 상당 부분 참조했고 국 유사는 삼국 시대 역사의 또 다른 면을 살필 수 있지만, 불교와 신라 중심을 기술로 한계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