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여름의 더위가 그 기세를 유지하고 있는 9월 첫날 그리고 첫 토요일, 조용필 데뷔 50주년 콘서트의 하반기 첫 장이 수원에서 열렸다. 그 어느 때보다 힘겨웠던 올여름 무더위와 기록적인 폭우 현재 진행형이고 올해 유난히도 비와 인연이 깊었던 그의 공연이었지만, 이날은 날씨의 심술을 피해 간 최상의 상태에서 그의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하반기 첫 공연에서 만난 조용필은 더 강해지고 화려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더 많이 준비하고 공연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공연이었다. 수원 종합 운동에서 열린 그의 공연 이모저모를 담아보았다. 상반기 때와 마찬가지로 강렬한 인트로 곡과 불꽃으로 시작한 공연 대형 멀티스크린의 화려하고 다양한 배경 화면들 이번에는 공연의 장소인 수원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추가됐..
조용필 50주년 기념 콘서트의 상반기 마지막 일정은 의정부, 의정부종합운동장이었다. 과거 의정부 공연 당시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큰 성원을 받았던 의정부는 이번에도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조용필을 뜨겁게 환영해주었다. 조용필 역시 상반기 일정을 마무리하는 공연에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잠실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날씨의 심술이 또다시 모두를 힘들게 했다. 비 예보는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비는 예보와 달리 공연 시작과 동시에 공연장에 내리기 시작했다. 자칫 공연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집중도도 떨어질 수 있었지만, 조용필은 침착했고 더 힘차게 공연에 임했다. 함께 한 관객들도 비에 아랑곳 하지않고 뜨겁게 이에 호응했다. 어쩌면 비가 와서 더 인상적이었던 조용필 의정부 공연이었다. 의정부 공연의 이모..
조용필 50주년 기념 콘서트, 그 세 번째 무대는 광주에서 열렸다. 첫 막을 연 잠실에서는 비가, 두 번째 무대 대구에서는 바람이, 이번에는 때이른 무더위가 말썽을 부렸다. 하지만 조용필, 그의 데뷔 50주년을 축하하고 그의 공연을 즐기려는 팬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조용필은 이전 두 번의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2시간이 넘는 긴 공연 내내 열정을 잃지 않았다. 팬들 역시 그 열정에 뜨겁게 성원을 보냈다. 한 여름과 같았던 6월 광주 공연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담아 올려 보았다. 강렬한 EDM 프롤로그로 시작된 공연, 오프닝 곡 여행을 떠나요로 금세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종이 꽃가루가 무대의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마치 빨리 우리 곁을 떠나간 봄이 다시 찾아온 듯했다. 조용필의 ..
가왕이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 조용필, 그의 50주년 기념 콘서트 그 시작을 알리는 잠실 공연이 5월 12일 열렸다. 5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남북 화해무드가 급속하게 조성되는 과정에서 남북 예술단의 상호 공연에서의 그의 존재감, 모처럼만의 방송 출연 등 조용필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가 많아지면서 50주년 콘서트의 대중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번 잠실 공연은 티켓 오픈 직후 표가 매진됐고 실제 현장에서 느낀 열기는 상상이상이었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였고 그의 무대에 열광했다. 조용필은 팬들과 함께 그의 음악 인생 50년을 되돌아봤고 추억을 공유했다. 그리고 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수차례 전달했다. 많은 비가 그와 팬들을 방해했지만, 공연장에서의 조용필과 팬들의 소통과 공감..
우리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인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단연 조용필이다. 수많은 가수와 음악인들이 우리 역사와 함께했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인물로서는 조용필이 으뜸이다. 여러 가수들이 국민가수의 칭호는 받았지만, 조용필은 가왕으로 통칭되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만큼 조용필의 발자취는 우리 현대 대중음악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런 조용필이 2018년 데뷔 50주년 콘서트로 돌아왔다. 그의 50주년 콘서트를 시작하는 잠실 메인스타디움 공연은 온라인 예매 사이트가 오픈된 지 얼마 안 돼 5만여 석이 전석 매진되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조용필 공연의 티켓 파워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가 2017년 대외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온 일이다. 아마도 50주년이..
지난 1월 12일은 우리나라 독립 운동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가 김상옥 열사의 일본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사건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이사건은 일제의 우리 민족 탄압의 중심이었던 종로경찰서를 직접 공격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 거사를 실행한 김상옥 열사는 젊은 나이에 그 삶을 다하고 말았다. 우리 독립 운동의 큰 전환점은 1919년 3.1 만세운동이었다. 우리가 3.1절이라고 부르는 전국적인 만세 운동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 강제 합방으로 인해 나라를 잃었던 조선의 국민들이 성별, 계층, 종교를 망라해 일제에 맞서 항거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고종황제의 갑작스러운 죽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