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반려묘 그리고 각종 반려동물들은 현대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웬만한 집에 가면 반련 동물을 키우는 이들과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식물까지 그 범주에 들어간다. 이 중 반려묘, 고양이는 기존 반려동물과 달리 그 주인에게 집사라는 명칭이 붙는다. 반려동물 하면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떠올리지만, 고양이들은 주인이 그들을 떠받들어야 하는 밀당의 고수들이다. 고양이 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주인들을 힘들에 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성격 또한 깔끔하고 민감하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고양이는 고대로부터 사람들과 함께 한 반려동물이었다. 인간과 함께 한 기간이 매우 길다. 조선 시대 숙종 임금은 대표적인 애묘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고양이는 각종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되..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의 경쟁하는 토요일 저녁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면서 잔잔한 흐름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큰 변화를 맞이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진행자였던 김영철 배우가 7월 9일 방송된 178회 보령시 편을 끝으로 하차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178회 말미 짤막하게 그동안의 소회와 시청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프로그램을 떠났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이제 그의 이름을 빼고 동네 한 바퀴로 또 다른 시즌을 시작할 예정이다. 방송에서는 김영철 배우가 함께 했던 방송을 중심으로 스페셜 방송을 할 예정이지만, 그의 하차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달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그램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
충청남도 서해안과 접해 있는 원 삼국시대 마한에서 그 지역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다. 일설에는 보령이라는 이름이 자연재해가 적어 붙어졌다고도 한다. 그만큼 예로부터 살기 좋고 풍요로운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보령시는 긴 해안선이 있고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긴 모래사장이 있는 대천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몰린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축제인 보령 머드축제가 매년 여름 열린다. 보령 머드축제는 지역의 대표적 축제로 보령을 상징하고 있고 보령을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하도록 했다. 이 보령시는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78회에서 찾았다. 178회는 그동안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출연한 김영철 배우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
경기도 중북부에 자리한 도시 의정부시는 경기 북부지역의 행정, 교통 중심지로서 오랜 세월 자리했다. 의정부시에는 경기도 북부청사와 경기도 교육청 제2청사, 의정부 지방법원, 경기도 북부경찰청 등 다수의 관청들이 있다. 의정부시는 북으로 군사 접경 지역과 접하고 남으로는 서울시와 경기를 접해 6.25 한국전쟁 후 군사도시로서의 기능도 담당했다. 실제 최근까지 미군 기지가 의정부에 있었다. 의정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중요한 행정기관인 의정부와 그 맥을 같이 하는데 조선시대 각 행정관청은 물자 공급과 경비 충당을 위해 논밭인 둔전을 지방에 두고 관리했다. 지금의 의정부는 조선시대 의정부의 둔전이 있었고 그것이 지역명의 유래가 됐다고 하는 게 정설이다. 그 외에 야사라 할 수 있지만, 조선 태조 이성계가 아들 ..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일 관계에 있어 가장 큰 이슈는 과거사 문제다. 최근 한국 대법원의 일제 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합의 파기 등의 이슈가 생기면서 대립의 양상이 더 극한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과거 한. 일 수교 협정과 위안부 합의 등으로 과거사 문제가 정리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그 협정과 합의가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물이고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직접 피해자들은 배제되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에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등의 피해를 입은 이들이 제대로 된 배상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 공론의 장도 없었다. 일본은 이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역사를 ..
우리 근. 현대사에서 인천은 서양의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교류를 한 개항장으로 그 의미가 있다. 비록 개항이 1876년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이었던 강화도 조약의 산물이었지만, 인천은 그때 합의한 부산, 원산에 이어 3번째 대외에 문을 연 항구였다. 인천은 그 위치가 수도 서울과 인접해 있어 서구 문물의 전파 속도가 빨랐고 파급력도 컸다. 가장 먼저 철도가 들어왔고 전기, 전화가 들어왔다. 다수의 외국 상인들이 인천을 기반으로 무역활동을 했다. 이미 조선 후기부터 인천은 국제 무역항의 면모를 보였다. 그 속에서 인천은 시대 변화와 함께했다. 하지만 인천은 그 발전과 함께 일제 강점기 일제 수탈의 최 일선에 있었던 아픈 역사도 있다. 조선 후기에는 경제 침탈의 전진기지였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조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