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를 전쟁의 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엄청난 인명, 재산 피해를 남겼다. 이후 인류는 전쟁의 폐해를 확실인 인식했고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미국과 소련 양 강대국을 중심으로 냉전 체제 속에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종식되며 전쟁의 위험을 벗어난 듯했지만, 민족과 종교, 각종 이해관계 속에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최악의 전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할 수 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라고도 하는 이 전쟁은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유럽의 발칸반도 지역에 있었던 사회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
전라남도 서남부, 영산강 하구에 자리한 목포는 1897년 일찍부터 개항한 목포항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큰 번영을 누렸다. 목포항과 호남선 철도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목포역을 중심으로 목포는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였고 1940년대 부산, 인천, 원산과 함께 우리나라 4대 항구 중 하나였다. 그 이면에는 호남평야에서 나는 쌀들이 모여 일본으로 향하는 항구로 일제 강점기 수탈의 현장이라는 아픔도 있었다. 해방 후 목포는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쇠퇴기를 겪었다. 수출 각종 물동량이 부산과 인천항으로 집중되고 호남 지역이 산업화 시기 크게 소외되면서 한때 전국 6대 도시의 명성도 사라졌다. 하지만 목포는 근대화 유산으로 지정된 일제 조선 말 일제 강점기 건축물이나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새로운 역사 ..
세계사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과 관련한 가장 큰 세 가지 사건은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으로 요약된다. 이 사건들을 통해 자본가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시민사회가 형성됐고 왕과 귀족들이 중심이 된 봉건제와 전제 군주정의 구 체제는 점점 힘을 잃었다. 이후 구체제 복원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민주주의 흐름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제 전 세계 모든 나라는 그 내용이 어떠하든 민주주의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치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중 미국의 독립 전쟁은 식민 지배로부터의 독립과 세계 최초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설립과 연방제 시행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미국은 그..
2차례 왕자의 난을 거치며 세자 그리고 왕위에 오른 이방원, 하지만 그는 왕위에 오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권력 장악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방원은 아버지와 형제들들과 치열한 권력 투쟁 과정을 거치며 그들을 정적으로 돌렸다. 왕이 된 이후에는 그와 함께 했던 공신들과 가장 큰 공이 있었던 중전 민씨의 가문도 경계했다. 이방원은 국왕 중심의 강력한 왕권, 그 바탕 위에 둔 중앙 집권 체제를 구현하려 했다. 이는 왕의 권력 독점을 의미했고 권력의 분점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이방원의 권력 장악에 있어 정치적 동반자였던 민씨 가문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일이었다. 민씨 가문은 이미 이방원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상황에서 차기 권력에서도 중심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의 강력한 왕권 아래에서 ..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세계에는 또 다른 대결의 장이 펼쳐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이 강력한 블록을 형성하며 맞섰다. 미국과 소련 간 직접적인 대결은 없었지만,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 온 세계를 뒤엎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끝난 이 대결을 역사에서 냉전이라 불렀다. 전쟁은 아니지만 온 세계를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시기였다. 강대국의 직접 대결은 없었지만, 냉전 기간 미국과 소련의 사실상 대리전이라 할 수 있는 국지적, 즉, 열전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큰 화산이 폭발하지 않는 대신 주변에서 작은 화산들이 폭발하는 모습이었다. 대표적으로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를 전쟁의 비극 ..
서울과 남부 경기의 중간에 위치한 과천시는 1980년 초 서울에 집중된 정부기관을 분산하고 서울의 과밀화를 막기 위해 조성된 1세대 계획도시 겸 행정 중심의 신도시였다. 과거 과천시는 시흥군 과천면이었지만, 정부청사가 건립되고 그 배후에 아파트 등 주거 단지와 도시가 조성되면서 1986년 1월 1일 시로 승격되어 도시로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과천시는 북쪽으로 서울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자리한 관악산과 청계산, 우면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다. 도시에는 양재천이 흐른다. 그 때문에 과천시 지역 중 많은 녹지가 있고 80프로 이상의 개발제한 구역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이는 도시개발 등에 제약이 되고 있지만, 반대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가진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이유가 됐다. 과천시는 서울에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