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나라는 진시황제의 진나라다. 그 진나라의 이름은 지금 중국을 부르는 영어 이름 차이나의 근원이기도 하다. 진시황제는 최초로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게 했고 통일 왕조에 걸맞게 각 지역별로 달랐던 각종 제도와 도량형, 문자, 사회 시스템을 통일하며 중국을 하나의 문화권과 경제권, 행정권 속에 포함토록 했다. 진시황제의 무리한 토목공사와 법가 사상에 근거한 지나치게 가혹한 법의 통치에서 파생된 폭정으로 인해 진시황제에 대한 휴대의 평가는 부정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의 중국을 만드는 데 있어 그의 업적은 매우 크다. 진시황제는 중국을 통일 후 각 지역을 연중 순시하며 업무를 보고 쉬지 않았던 지독한 워크홀릭이기도 했다. 그는 그만큼 능력도 있었고 강한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
이방원의 칼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이방원은 상대가 머뭇거리는 사이 먼저 칼을 빼들었고 상대를 제압했다. 역사에서 1차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이방원의 쿠데타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빠르게 정도전 등 이성계 측근 공신 세력들을 제거했고 군권을 장악했다. 그 위세에 대신들도 쉽게 이방원에 장악됐다. 이성계는 궁궐에 사실상 유폐됐다. 이성계는 강하게 분노했지만, 이미 권력을 장악한 이방원에 대항할 수 없었다. 고려 시대 왜구와 홍건적 등 수많은 외적들을 격퇴했고 북방을 호령했던 장군,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창업 군주 이성계는 그의 아들에 의해 사실상 왕위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성계를 지켜주고 힘이 될 이들은 사라졌고 이방원에 뜻을 함께 했다. 그의 곁에서 아무도 없었다. 그가 누군가를 지켜줄 수도 없었..
서울에서 서초구과 방배동은 대표적인 부촌이다. 높은 빌딩 숲이 있고 다양한 문화 예술 시설이 모여있다. 높은 아파트 가격은 이 지역의 부를 상징한다. 이렇게 화려하고 보통의 삶과 다를 것 같은 곳이지만, 서초구 방배동은 오래된 주택단지들이 곳곳에 자리한 강남 같지 않은 강남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네 이름이 서초구 관악구를 경계하는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의미의 방배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이곳이 예로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동네임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 방배동의 모습도 옛 지명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61회에서는 방배동의 주택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채웠다. 이른 아침 동네 산의 산책로를 걸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
2,000년대 초반 온 국민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최악의 연쇄 살인범 구영춘(유영철), 남기태(정남규)가 잡혔다. 그들의 범죄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잔혹했다. 그들의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오로지 살인을 통해 만족과 쾌락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불우했던 유년기의 기억, 사회적 소외 등으로 인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의 항변은 범행을 전혀 합리화할 수 없었다. 엄청난 사건을 해결했지만, 송하영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연쇄 살인 사건을 더 많은 트래픽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는 언론, 범인을 잡는 성과에만 찬사를 보내는 경찰 조직의 모습에서 송하영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는 처절하게 그 악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조선의 역사에서 왕세자는 차기 권력 1순위였다. 아버지 왕이 있고 왕이 되기 위한 수업도 체계적으로 받았다. 그 왕세자가 중전에게서 태어난 적장자라면 그 권위는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적장자의 왕가나 민간에서도 그 위치가 매우 절대적이었다. 현시점에서도 장남은 그 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권위가 크다. 하지만 그 적장자의 자리가 세자 그리고 왕위로 이어진 사례는 이외로 많지 않다. 중전으로부터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던 경우도 있고 차기 권력을 놓고 벌어진 암투 과정에서 밀리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불행도 있었다. 실제 가장 완벽하다 할 수 있는 계승 절차를 밟아 왕위에 오른 이들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숙종, 순종 정도로 요약된다. 이 중 단종과..
제2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쟁 범죄로 기록되어 있는 홀로코스트는 전쟁 기간 독일의 독재자인 히틀러가 이끄는 집권당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 나치가 중심이 되어 나치 독일과 그들의 점령지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학살된 이들은 1,000만명이 넘고 그중 600만명이 유대인이었다. 나머지는 슬라브족과 장애인, 성소수자, 집시, 나치에 반대한 정치범, 전쟁 포로들이었다. 나치의 민간인 학살은 매우 계획적이었고 집요했다. 그런 대학살을 주도한 건 히틀러와 나치 친위세력이었지만, 많은 부역자들과 협력자들이 그 일에 함께 했다. 마치 국가 산업과도 같이 학살이 이루어졌다. 그런 최악의 전쟁 범죄 주동자들은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처벌을 받았고 다수가 처형됐다. 뉘른베르크는 독일 중세 역사 흔적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