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북동쪽 내륙에 자리한 구례군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남 하동군과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전북 남원군, 남쪽으로는 전남 광양시와 순천시, 서쪽으로는 전남 곡성군과 접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노고단이 구례군에 포함되어 있다. 구례군에 자리한 고찰인 화엄사는 조계종 대표적 사찰이기도 하다. 섬진강은 구례군과 하동군이 함께 공유하는 지역의 하천이다. 하동군에 서는 대표적 장인 화계장터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영남과 호남 사람들이 뒤섞인 상권이 형성된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59회에서는 봄이 오는 길목의 구례군을 찾았다. 구례군을 대표하는 섬진강 풍경을 따라 걸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섬진강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우왕 때 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국제 뉴스에 중심으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접하고 있고 넓은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밀 생산지다. 이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를 놓고 제2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쟁이었던 독. 소 전쟁 당시 나치 독일과 소련이 혈투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서유럽의 집단 방위 체제인 나토가 동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러시아가 충돌하는 갈등의 장소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원했고 친 서방 노선을 걸었다. 그들과 국경을 접한 러시아는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이런 두 진영 간의 대립은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졌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향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
베트남전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발발한 6.25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미군이 해외 파병된 전쟁이었다. 우리나라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전투병을 파병했다. 미국은 인도차이나반도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전쟁에 나섰고 1964년부터 1973까지 10여 년 동안 베트남전을 지속했다. 이 기간 베트남과 인근 국가에는 제2차 세계대전 보다 많은 폭탄이 쏟아졌고 당시 최고의 첨단 무기가 사용됐다. 막대한 인명, 재산 피해가 있었다. 이런 엄청난 희생에도 미국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사실상 패전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베트남의 공산화됐고 인근 라오스와 캄보디아도 그 길을 걸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현대사의 큰 오점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두고 가장 그림자가 긴 전쟁이라는 말을 평가를 하는 이유..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은 그의 뛰어난 자질과 함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수립한 강력한 왕권이 있어 성군이 될 수 있었다는 게 보통의 평가다. 세종대왕은 건국 후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왕권과 신권의 대립했고 왕자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있었다. 이는 유혈 충돌로 이어졌고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조선을 설계한 개국공신 정도전도 권력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조선 건국한 이성계 역시 사실상 아들 이방원에 밀려 권자에서 물러나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했다. 치열한 권력 투쟁을 이겨낸 이방원은 정도전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정승들이 주도하는 정치 시스템인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왕이 주도하는 6조 직계제를 채택하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다. 왕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은 외척이든 공신이든 숙청했..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중구 명동은 근.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간 속에 서울의 대표적 상업지역으로 그 명성을 이어왔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집단 거주지이기도 했던 명동은 명례방으로 불렸던 명동은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보급된 이후 천주교 신앙 공동체인 명례방 공동체가 자리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지금의 충무로 일대인 혼마치와 더불어 일본인들의 주거지가 있었다. 그 시절 명동은 메이지초 명치정으로 불렸다. 해방 이후 지금의 이름인 명동이 됐다. 긴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한 명동은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지리적 입지 탓인지 일제 강점기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큰 명성을 얻었고 그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명동은 국내 최대 백화점 본점이 자리하고 있고 각종 유행과 패션을 선도하는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단 시간 내 겪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그 충돌은 급격한 서구화로 그 주도권이 변화로 넘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빠른 변화가 익숙하고 그에 따라가야 함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함에 발을 동동 구를뿐이다. 연일 언론과 매스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보도되고 그것이 성공의 척도임을 알려주는 상황에서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어느새 우리는 빠른 발전과 변화, 기존 질서의 파괴가 옳다는 생각이 마음 가득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사회악의 중요한 부분인 범죄도 지능화되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