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사의 중요한 장면인 위, 촉, 오의 삼국시대를 소설 삼국지를 중심으로 소설과 실제 역사를 함께 살피며 재 조명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 321회에서는 유비와 손권의 관계를 유비를 중심으로 다뤘다. 유비와 손권은 조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삼국지에서 가장 뜨거운 전투였던 적벽 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에 승리했다. 조조는 적벽대전의 패배로 중국을 통일하려는 야망을 접어야 했다.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형주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 지역으로 중국에서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다. 형주 지역은 중국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이 지역을 차지한다는 건 천하삼분지계를 통해 삼국이 형성된 시점에서 삼국 경쟁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과거..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 여름 특집으로 중국의 고전 삼국지와 그와 관련한 중국사를 살피고 있다. 조조를 중심으로 한 삼국지 초반부에 이어 320회에서는 위촉오의 삼국시대를 도래하게 하는 결정적 사건인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당시 시대상을 되짚었다. 중국 후한 말기 왕권의 약화됐고 각 지방의 군벌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 혼란이 시기가 찾아왔다. 중국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역은 황화 유역의 화북지역을 놓고 조조와 원소가 대결을 펼쳤다. 삼국지의 첫 번째 대전인 관도대전이었다. 이 전쟁에서 조조는 원소에 승리하며 화북지역을 장악했다. 후한 왕조는 존속했지만, 그들의 실권이 없었다. 조조가 대승상의 자리에 올라 권력의 일인자가 됐다. 그와 함께 조조는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조조는 그와..
경기도 중부에 위치한 안양시는 관악산과 삼성산이 주변을 감싸는 분지 지형으로 도시에는 안양천을 포함한 하천이 흐른다. 마치 서울과 흡사한 지형의 안양은 북쪽으로는 서울 금천구와 관악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시흥과 광명, 동쪽으로는 과천과 의왕, 남쪽으로는 군포, 안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일산, 분당과 함께 1기 신도시로 조성된 평촌 신도시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안양의 지명은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안양사라는 사찰을 건립한 데서 유래됐다. 안양이 도시로서의 독자적 발전을 하게 된 건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이고 안양역이 생기면서부터다. 이후 철도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도심이 형성됐고 안양은 지역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안양시는 근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한 ..
충청남도 남부의 내륙에 자리한 부여군은 금강 지류의 비옥하고 넓은 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농업이 흥한 풍요의 땅이었다. 금강을 따라가며 만날 수 있는 자연경관도 수려하다. 부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 지금의 공주에서 사비, 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면서부터다. 부여는 그 이후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수도였다. 사비시대 백제는 나라를 다시 부흥하고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을 발전시켰다. 비록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각종 유적과 유물은 백제의 옛 영화를 기억하게 하고 있다. 부여 지역의 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등의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고대 왕국 백제의 흔적을 담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립했던 고대 삼국시대는 치열한 전쟁의 역사였다. 삼국은 각각의 전성기에서 대결의 주도권을 잡았지만, 통일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 국가의 세력이 커지면 나머지 두 국가가 연합해 이를 견제하면서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연합과 배신이 혼재하는 냉혹한 국제 정세의 모습도 있었다. 이런 삼국의 대결은 대립을 정리하고 삼국을 통일해야 끝날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었다. 그 삼국 통일을 이룬 국가는 신라였다. 신라는 지리적 불리함으로 삼국 중 고대국가로의 발전이 가장 늦었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고대 국가의 중요한 요소인 왕권 강화, 불교, 율령 등 체제 정비 역시 가증 늦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그 세력이 밀려 어려움을 겪었..
전라남도 무안은 목포와 다도해 지역 섬들을 품고 있는 신안, 나비축제로 유명한 함평군을 경계로 하고 있는 전남 남동부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넓은 해안선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고 높은 산이 없는 육지 지대는 넓은 평야와 함께 한다. 이런 입지조건 탓인지 무안은 청동기 시대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을 비롯해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농업과 어업에 유리한 입지 때문이었다. 여기에 무안은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의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대표적인 항일 농민 운동인 암태도 소작쟁의가 이 지역에서 일어났다. 친일 지주의 수탈에 반대해 일어난 이 지역의 농민운동은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큰 지지를 얻었다. 이에 일제 경찰은 지주와 농민들의 분쟁을 중재했고 소작료 인하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