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에서 대왕의 칭호를 받은 임금은 2명이 있다. 조선시대 한글을 창제하고 문화, 과학, 예술을 발전시키며 조선의 전성기를 열었던 세종대왕과 중국과 대결하며 고구려의 동북아의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정복 군주 광개토대왕이 그들이다. 이 중 광개토대왕은 지금은 우리 역사의 현장이 아닌 드넓은 만주, 요동 지역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대결하는 시절 고구려가 그 주도권을 잡게 했던 임금이었다. 광개토대왕은 활발한 정복활동을 통한 영토 확장 외에 내치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군주였다. 그의 업적은 만주에 남아있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비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이 광개토대왕비를 세운 그의 아들 장수왕은 고구려의 전성기를 공고히 하고 고구려의 영역을 만주, 요동을 넘어 한..
현재 지구에서 가장 보편적인 기호 식품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커피를 들 수 있다. 이슬람 지역과 지중해를 아우르던 오스만 제국 시절로 그 유래가 거슬러 올라가는 커피는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서구 유렵을 중심으로 커피 문화가 발전했다. 커피는 과거 선진국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그 저변이 매우 넓어졌다. 이로 인해 커피는 물과 차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소비되는 음료이고 그 시장의 규모가 매우 크다. 세계 커피 시장은 해마다 그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 늘어나고 있다. 실제 2018년 시즌 세계 커피 시장은 규모는 한화로 수백조 규모로 성장했다. 시장의 규모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속에서 커피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고 커피 시장에는 원두와 각종 커피 ..
광복 후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대한민국에서 그에 따른 변화와 발전을 상징하는 도시다. 우리나라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우리 경제 발전의 중심지, 이제는 세계에서 주목하는 도시로 발전한 서울이다. 이런 변화 속에 서울은 옛 모습이 대부분 사라졌다. 서울 중심부에 남은 고궁과 몇몇 한옥 마을 등이 과거 서울의 모습을 살필 수 있게 한다. 그 때문에 고궁과 한옥마을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중 북촌 한옥마을은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로 대표적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북촌 한옥마을은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고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남녀노소를 가르지 않은 도보 여행 코스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주말이면 북촌 한옥마을 일대는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조용필이 예고한 대로 11월 18일 두 곡의 신곡을 발표했다. 2013년 19집 앨범을 발표한 이후 9년 만의 일이다. 그의 신곡 '찰라'와 '세렝케티처럼'은 내년 발표 예정인 20집 앨범의 수록곡으로 그로서는 최초의 음원으로 발표하는 싱글 앨범이다. 그는 18일 그의 곡을 각종 음원 사이트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두 곡은 모두 모던록을 기반으로 조용필 특유의 락 색깔을 더한 곡이었다. 19집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던 '바운스' 와 '헬로'를 연상하게 하는 곡들이었다. 조용필은 거기에서 더 힘을 빼면서도 가사 전달을 더 명확하게 하려는 노력을 더했다. 악기의 구성을 보다 단순하게 했고 보컬을 더 돋보이게 했다. 두 곡에서 조용필은 여전한 보컬 능력을 선보였다. '찰라'에서는 코러..
2018년 데뷔 50주년 전국 투어 콘서트 이후 활동이 없었던 가왕 조용필이 돌아왔다. 지난봄 콘서트와 신곡 발표와 관련한 뉴스가 나온 이후 6개월이 더 지난 시점에 조용필은 서울 콘서트 소식을 알렸고 그 콘서트 전 2곡의 신곡 '찰나' 와 '세렝게티처럼' 음원 발매 소식을 더 전했다. 오랜 기간 그의 공연과 신곡을 기다렸던 팬들은 비로소 오랜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조용필은 대중가요 역사에서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 그 자체다. 19장의 앨범은 그의 음악적 진화를 상징하고 있고 1990년대부터 방송 출연을 거의 끊고 매달린 공연 중심의 음악 활동은 조용필만의 음악 세계를 상징하는 장이 됐다. 그의 공연은 단순히 그의 히트곡만을 전하는 것이 아닌, 그의 음악적 역량과 무대 예술의 역량이 집약되..
18세기 영국의 증기기관 발명을 기점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서구 유럽의 사회 전반을 크게 변화시켰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가 현실이 됐고 문명의 발전이 급속히 진해됐다. 이는 인류 문명의 발달사를 순식간에 뛰어넘는 일이었다. 그와 동시에 동양에 뒤처지던 서양이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치며 동양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세계 질서를 주도하게 됐다. 그와 동시에 서구 유럽에서는 기존의 사회 지도층이었던 왕과 귀족의 귄위와 힘이 떨어지고 자본가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계급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자리하게 된다. 또한, 봉건시대와 절대 왕정 시대를 거치며 억압받았던 일반 민중들도 점점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자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