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즌을 앞두고 프로야구 각 구단의 외국인 선수 새판 짜기가 한창이다. 신규 영입 선수의 금액 제한, 세금 적용의 변수가 등장하면서 외국인 선수 영입의 트랜드가 변하고 있다. 금액 상한제 내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지명도 높은 선수들보다는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오랜 기간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외국인 선수들의 하나 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두산과 kt를 거치며 KBO 리그 통산 100승을 달성했던 외국인 투수 니퍼트는 본의 의지와 달리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나이와 부상 우려 등으로 사실상 KBO 리그에서의 커리어를 마감할 상황이 됐다. 그와 함께 너클볼이라는 생소한 구질을 바탕으로 KT의 원투 펀치를 구성했던 좌완 피어밴드 역시 내년 ..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에서 올 시즌 7위로 추락한 롯데, 롯데는 기대 이하의 성적에 대해 계약 기간 2년을 남기고 있었던 조원우 감독을 경질하고 양상문 감독 체제로의 변화를 택했다. 하지만 롯데 팬들은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이다. 성적 부진의 책임을 감독에게만 지운 것이 아닌가 하는 프런트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롯데로서는 오프시즌 기간 변화의 성공을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망스러운 시즌이었지만,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특히, 마운드에서 예상치 못한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전력에 플러스 요인이 됐다. 이 중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로 영입된 사이드암 투수 오현택은 수년간의 부상 재활 끝에 완벽하게 재기하면서 롯데 불펜의 새로운 필승 카드로 자리 잡았다. 오현택은 올 시즌 개막..
2018시즌 최후의 챔피언은 SK와이번스였다. SK는 정규리그 2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돌풍의 넥센과 정규리그 우승 팀 두산을 차례로 넘어서며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현재 우리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시스템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팀의 그 해 우승 팀으로 기록된다. 정규리그 우승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시리즈에서 정규리그 우승팀이 그 자리를 지켜냈었던 점을 고려하면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불리함을 극복한 결과물이다. 그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단기전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빅 볼 야구로 우승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기존과 다른 느낌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데에는 누구도 하지 않았던 SK의 파격이 있었다. 2년 전 2..
자동차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자동차 메이커 벤츠, BMW, 폭스바겐은 높은 가격에도 그만큼의 품질을 보장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판매되었다. 과거에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요층도 크게 확대되었고 우리 일상에서 독일 자동차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BMW의 특정 차종에서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수년간 BMW 차량의 화재건수가 크게 증가하였고 올해는 관련 뉴스가 잊을만하면 등장했다. 최고 품질이라고 자부하던 독일차의 화재 사고는 소비자들의 독일차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과는 크게 상반되는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BMW의 자세였다. 무엇보다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 미국과 비교되는 대응에 해당 차종을 소유하고..
이제 롯데의 간판선수로 자리한 손아섭이 2019시즌 롯데의 주장으로 선임됐다. 롯데는 양상문 신임 감독 체제에서 주장 역시 변화를 주며 팀 분위기를 일신했다. 2018 시즌을 앞두고 4년간 98억원의 대형 FA 계약을 체결하며 롯데에 잔류한 손아섭은 이제 팀의 리더로서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됐다. 손아섭의 주장 선임은 시기의 문제였을 뿐 예정된 일이었다. 손아섭은 2007시즌부터 롯데의 선수로 활약했고 공수에서 발전하는 선수였다. 2010시즌 이후에는 매 시즌 3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며 통산 타율 0.325를 기록할 정도로 꾸준함을 과시했다. 손아섭은 타격뿐만 아니라 도루와 수비에서도 팀 공헌도가 높았다. 특히, 타격에 비해 부족함이 있었던 수비는 이제 어느 팀 외야수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1905년 11월 17일, 그날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국의 직위가 사실상 사라진 날이었다. 그날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들은 나라 잃은 슬픔을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빗대어 1905년 을사년의 이름에서 따온 을사년스럽다라고 표현했고 지금의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이 탄생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1905년 이전 이런 표현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1905년 을사늑약의 우리 역사에서 치욕적인 날이었다. 그 늑약에 서명한 이완용을 비롯한 5명의 대신들을 을사 5적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197회에서는 을사늑약과 관련한 국내외적 상황을 다뤘다. 당시 일본은 조약에 대해 논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