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온 국민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최악의 연쇄 살인범 구영춘(유영철), 남기태(정남규)가 잡혔다. 그들의 범죄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잔혹했다. 그들의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오로지 살인을 통해 만족과 쾌락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불우했던 유년기의 기억, 사회적 소외 등으로 인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의 항변은 범행을 전혀 합리화할 수 없었다. 엄청난 사건을 해결했지만, 송하영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연쇄 살인 사건을 더 많은 트래픽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는 언론, 범인을 잡는 성과에만 찬사를 보내는 경찰 조직의 모습에서 송하영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는 처절하게 그 악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동시대 온 나라를 흔들었던 연쇄 살인범 중 한 명인 구영춘(유영철)이 잡혔다. 송하영과 범죄행동분석팀은 치열한 분석과 노력 끝에 그의 체포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구영춘과의 거듭된 면담 과정에서 연쇄 살인범들의 심리와 그들의 행태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송하영은 구영춘과 치열한 심리전을 전개하며 그에게 말로서 강한 일침을 날리며 기싸움에서 이겨내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또 다른 연쇄 살인범 남기태(정남규)가 서울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범죄를 이어가고 있었다. 송하영은 그 사건에 더 강하게 메달렸다. 경찰들 역시 그를 추격했다. 남기태는 경찰의 추적을 비웃듯 같은 패턴의 살인을 지속했다. 심야 시간 홀로 귀가하는 여성들을 주 대상으로 했다. 힘없고 저항하기 힘든 대상을 상대로 남기태는 ..
범죄 심리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 7, 8회를 방영했다. 7회와 8회에는 2,000년대 초반 온 나라를 공포와 경악 속으로 빠뜨렸던 2명의 연쇄 살인범 유영철과 정남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두 살인마는 당시 마치 경쟁을 하듯 무고한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철저히 존재를 감추며 장기간 범행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연쇄 살인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이들의 검거를 위해 온 역량을 집중했지만, 새로운 범죄에 쉽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에 경찰은 상당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날이 지능화되고 진화하는 범죄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범죄 행동 분석, 프로파일러의 영역이 확대되는 계기였다. 7, 8회에서는 구영철이라는 이름을 나온 유영철 ..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단 시간 내 겪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그 충돌은 급격한 서구화로 그 주도권이 변화로 넘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빠른 변화가 익숙하고 그에 따라가야 함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함에 발을 동동 구를뿐이다. 연일 언론과 매스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보도되고 그것이 성공의 척도임을 알려주는 상황에서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어느새 우리는 빠른 발전과 변화, 기존 질서의 파괴가 옳다는 생각이 마음 가득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사회악의 중요한 부분인 범죄도 지능화되고 다..
이성계의 막내아들 방석이 세자가 조선의 막후 실력자가 된 신덕왕후 강씨는 강. 온 양면 책을 활용하며 위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소생인 장성한 다섯 아들의 존재는 큰 위협이었다. 이성계도 신덕왕후 강씨에게 힘을 실어줬다. 세자 책봉에서부터 신덕왕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던 이성계는 첫 번째 부인 사이에 낳은 다섯 아들을 권력에서 멀어지게 했다. 즉위식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아들들과의 만남을 거부했고 조선 건국 공신에도 아들들을 제외했다. 이성계는 아들들을 아버지와 자식이 아닌 왕과 신하의 관계로 설정했다. 신하와의 관계도 정적과도 같이 대했다. 나이 어린 세자에게 아들들은 부담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특히, 이성계 가문의 유일한 장원급제자로 문신의 길을..
위화도 회군 이후 권력의 정점에 선 이성계와 그의 세력은 새로운 왕조를 열기 위한 움직임을 빠르게 전개했다. 군권은 이성계에 의해 장악됐도 조정의 대신들과 관료 조직도 이성계 세력이 장악했다. 남은 건 그들이 왕위에 올린 공양왕의 선위와 이성계의 즉위, 새로운 왕조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순조롭던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 사대부 세력이 새로운 왕조 창조에 반대했다. 온건파 사대부 세력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우왕의 최영의 제거, 공양왕의 즉위, 토지개혁인 과전법 시행에는 동조했지만,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왕에 대한 충성을 가장 중요한 덕복이었고 새로운 왕조를 여는 건 명분 없는 일이었다. 반대로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 사대부 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