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실이 무전기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독특한 소재와 더불어 마지막까지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추측과 의견들이 분분했던 드라마 시그널이 16부로 여정을 마쳤다. 주인공 살리기 청원까지 불러일으켰던 드라마는 앞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질 여지를 남긴 열린 결말로 마감됐다. 드라마의 중심축을 이루는 사건이었던 인주시 집단 성폭행 사건은 박해영의 형에게 씌워진 누명이 벗겨졌고 사건 조작을 주도했던 김범주 국장은 단죄됐다. 드라마 초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던 유괴사건은 과거에서 이미 범인이 체포돼 미제 사건으로 남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주인공 이재한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이재한은 15년 후 미래에서 온 무전을 통해 위험을 사전에 감지했고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김범주 국장의 함정에서 벗어..
자칫 장희제에 의해 불태워질 위기에 처했던 장영실의 새로운 물시계는 마지막 순간 장희제의 양심이 발동하며 극적으로 보존됐다. 장희제는 자신을 몰래 미행해왔던 김학주에 위해를 가하면서까지 물시계를 지켜냈다. 장희제 역시 장영실 물시계의 독창성과 그 기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격물 진흥이라는 대의를 장희제는 저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장희제는 함께 물시계 제작과 천문 연구를 하고자 내민 장영실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장희제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물을 그대로 두고 칩거에 들어갔다. 위기를 벗어난 장영실의 물시계는 마침내 세종과 대신들에 공개됐다. 그의 혁신적인 기술에 세종은 물론이고 여타 대신들도 찬사를 보냈다. 이는 그동안 격물 연구에 반대하던 대신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조선의 표준시간을 알려..
조선 천문 프로젝트가 정치적 문제로 좌절된 이후 은둔의 삶을 살았던 장영실이 다시 돌아왔다. 당연히 그를 시기하고 제거하려 했던 대신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편경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 그의 관직 재 등용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리학을 숭상하는 조선에 있어 아악은 성리학적 이념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문제는 아악을 구성하는데 있어 음의 표준이 되는 편경이 음 구현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아악의 근본을 흔드는 것으로 조선왕실에는 큰 근심이었다. 각 분야에서 나라의 표준을 만드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었던 세종에도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세종은 아악의 책임자 박연으로 하여금 정확한 음을 구현하는 편경 제작을 하도록 했..
세종과 장영실이 주도한 조선 천문 연구가 허무한 끝을 맞이했다. 평소 세종의 과학 진흥정책에 대해 반대하던 일부 사대부 세력들은 조선의 비밀 천문 연구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임금이 그 일을 주도하는 탓에 직접 반대는 못 했지만, 연구를 막기 위해 보이지 않게 움직였다. 이 상황에서 명나라가 조선의 천문연구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더 급하게 돌아갔다. 주변국들의 천문 연구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는 명나라에 이 사실이 알려졌다는 건 심각한 외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는 명나라가 조선을 불경죄로 겁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고 군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일이었다. 하연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나라의 안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들어 비밀리에 조선 천문 연구소를 없애려했다. 당연히..
세종의 명에 의해 비밀리에 시작된 천문 연구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천문 연구소가 만들어졌고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간이 등 관측 기구도 만들어졌다. 또한, 이 연구를 이끌던 장영실은 세종에 의해 면천되어 노비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세종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에게 관직을 내려 힘을 실어주었다. 노비 신분을 벗어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던 장영실은 이를 뛰어넘어 양반이 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하지만 그의 직책은 천문 연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천문 연구에 부정적인 이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장영실과 서운관의 연구자들은 각자의 직책을 수행하며 비밀 연구를 지속했고 명나라 천문 서적에서 예측하지 못한 일식을 예측하는 등 조선만의 역법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다. 이들의 ..
부친 장성휘의 죽음과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명나라행의 실패로 실의에 빠진 장영실은 부친인 장성휘의 절친한 벗이었던 이천과 한양으로 향하게 된다. 관노의 신분이었던 장영실로서는 자신의 명나라행을 막은 이천의 처분에 따라 자신의 거취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장영실은 한양으로 가는 도중 수 차례 도망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천의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백성들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그 마음을 접었다. 이천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혼란기에 자신의 가문이 조선 태조 이성계 의해 멸문되다시피 한 아픔이 있었다. 누구보다 조선 왕조에 대한 증오심이 큰 그였다. 이천은 그 마음을 억누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선 건국에 힘을 보탰던 인물이었다. 아울러 이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