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만주 요동지역을 장악했던 고구려에게 중국 세력과의 대결은 필연적이었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과 성장기에 만리장성 넘어 중국 북방의 여러 이민족과 맞서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적 위기도 있었지만, 광개토대왕와 장수왕 시대를 거치며 그들의 대결을 이겨내고 요동 지역의 맹주로 자리했다. 고구려는 그들의 왕을 태왕으로 지칭하며 독자적 천하관을 유지하는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굴림했다. 하지만 중국에 통일 왕조에 들어서면서 고구려는 한차원 높은 상대와 대결해야 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는 당시로는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는 그들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중화사상속으로 편입되지 않았다. 이런 고구려가 중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북방 이미족들과 연결되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
지금은 우리 영역이 아닌 만주지역을 호령하던 고구려는 인접 이민족과 중국 왕조들과 국경을 접하면서 그들과의 대결이 불가피했다. 고구려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보다는 강하게 맞서며 영토를 넓히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런 고구려의 성장 배경에는 오랜 세월 계속된 중국의 분열이 있었다. 한나라 멸망 이후 위 진 남북조, 5호 16국의 혼란 속에 고구려는 만주지역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남으로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며 한강유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6세기 삼국 중 가장 늦게 고대 국가로 발전한 신라가 진흥왕 시기 국력을 강화하면서 고구려를 위협했다. 진흥왕의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함께 공격했고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신라는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독자적으로 한강..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을 재조명했던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이 다시 고대사의 각 장면들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고대 왕국 고구려였다. 그 시작은 광개토대왕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왕은 얼마 없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함께 광개토대왕이 그중 한 명이다. 그만큼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우리 고대사에서 중요했다. 광개토대왕이 재위했던 391년 ~ 413년은 국내외로 격변의 시기였다. 멀리 유럽에서는 로마가 395년 동. 서로마로 분열되면서 절대 왕국이었던 로마제국이 사라졌고 중국은 위 진 남북조, 5호 16국의 혼란기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이 세운 5호 16국의 왕조는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며 수시로 충돌했다. 여기에 고구려는 남쪽..
1987년은 1970년대부터 이어진 군사 독재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국민들의 열망이 폭발한 폭풍 같은 시기였다. 1979년 12. 12 군사 반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은 힘으로 이를 제압하려 했지만, 분출되는 국민들의 열망을 막을 수 없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그해 6월 29일, 국민들이 요구했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끈 정권의 6.29 선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공권력에 희생되고 큰 고통을 받았다. 87년 6월 민주 항쟁은 그런 희생이 쌓이고 쌓여 이뤄낸 성과였다. 그리고 그해 6월의 열기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한 청년의 죽음이 있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6월 항쟁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
1987년 1월 한 젊은 대학생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 조사를 받던 도중 목숨을 잃었다. 그의 이름을 박종철, 그의 죽음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운동권에 소속된 학생이었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과 함께 하는 선배의 소재를 추궁당했다. 그는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이어졌다. 박종철은 경찰이 원하는 답을 하지 않았고 가혹한 고문이 이어졌다. 결국, 박종철은 물고문 도중 질식사로 그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박종철의 죽음은 이어진 6월 민주 항쟁과 6.29 선언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 개헌까지 민주화 여정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당시까지 절대 무너질 것 같았던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는 데 있어 박종철 고..
1980년대 제5공화국 시대의 궤적은 따라가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 305회에서는 우리 정치사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 과정에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이어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의 막전 막후 이야기도 함께 다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영어 약자인 YS, DJ라는 애칭으로 자주 불릴 만큼 긴 세월 정치 지도자로 그 자리를 지켰고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1970년대와 80년대 독재세력에 맞선 민주화 투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구심점이지 동반자이기도 했고 정치적 라이벌로 치열하게 대결하기도 했다. 두 정치 지도자는 14대 김영삼, 15대 김대중 대통령까지 차례로 대통령에 자리에 오르며 각각 절정을 맞이했다. 정치인 김영삼, 김대중의 남긴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