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 시청자들은 음악을 매개로 한 경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음악 경연이 큰 성원을 얻으면서 각 방송국은 너도나도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고 홍보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기도 했고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모 케이블 방송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으로 그 인지도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이전에도 강변가요제나 대학 가요제 등의 음악 경연은 있었지만, 순수 아마추어들의 경연장이었다. 최근 음악 경연 대회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했다. 각 기회사들이 자사의 연습생들을 심사하고 선발하는 오디션 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단순히 한 무대에서 노래만을 부르는 방식이 아니다. 각 출연자마다 각자의 서사가 있고 연출이 더해졌다. 출연자의 기쁨, 슬픔, 분노, 경쟁구도 속 갈등..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한 이후 정국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 체제 속 20년 가까이 절대 권력을 지켰던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의 부재로 인한 일이었다. 권력 공백기였지만, 한편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도 가득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최규하는 긴급조치를 해제했다. 이를 통해 가택연금 등으로 정치 활동이 불가능했던 김영삼, 김대중 등 야권 지도자들이 정치 일선에 복귀했고 투옥 중이던 민주화운동 인사들도 풀려났다. 최규하 대통령은 1년 내에 개헌과 함께 민주주의 선거를 통한 차기 정부 이양을 약속했다. 멈췄던 민주주의 시계가 다시 작동했다.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서울의 봄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
1979년 12월 12일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물줄기를 바꾸는 사건이 발생했다. 10.26 사태 이후 비상계엄 체제에서 계엄사령관과 육군 참모총장 자리에 있었던 정승화 대장이 보안 사령관 전두환 소장에 의해 체포됐기 때문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군내 하극상이었고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이 재가를 득하지 않은 군사 반란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방을 지켜야 한 군대가 서울 중요 시설에 진출했다. 12월 12일 밤과 다음날 새벽 사이에 발생한 이 사간은 국민들은 혼란스럽게 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의 복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신군부 세력이 권력 중심에 서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2. 12 군사 반란에 대해 세심하게 다뤘다. 12. 12 군사 반란은 이를 주도하고 이를..
1979년 10월 26일은 또 다른 10년인 1980년을 앞둔 시점이었거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날이었다. 그날 청와대 인근 궁정동이 안가에서 수차례 총성이 있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사상자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최측근 인사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10. 26 사태로도 불리는 그 사건으로 1970년대 우리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지배했던 유신 체제가 막을 내렸다. 이로써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고 3선 개헌과 유신헌법 선포로 종신집권을 길을 갔던 박정희 대통령은 허무하게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97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부른 1979년 10월 26일 그날의 사건..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96회에서는 신년 특집으로 국난 극복의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번 주는 지난주 임진왜란에 이어 6.25 한국전쟁,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을 주제로 막전 막후의 이야기를 다뤘다. 1950년 9월 15일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은 6월 25일 전쟁 발발 이후 수세적 위치에 있었던 국군과 유엔군이 이를 극복하고 공세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작전으로 낙동강 전선에 몰려있던 북한군은 보급이 차단되는 한편 고립되어 괴멸될 수밖에 없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단시간 내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 3.8선을 넘어 북진을 단행했다. 개전 이후 6월도 안되어 일어난 반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중심인물은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신년을 맞이해 국난 극복의 중요한 역사 장면인 임진왜란과 6.25 한국전쟁을 1, 2부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그 1부인 295회에서는 1592년 시작되어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 중 평양성 전투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그 시점으로 돌아가 보았다. 임진왜란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당시 일본을 통일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 일본의 권력자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시작된 전쟁으로 온 국토가 전쟁터가 된 조선은 엄청난 물적, 인적 피해를 입었다. 그 피해는 이후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의 피해가 더해지며 조선 후기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이후 조선은 급속한 보수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조선을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지 못하는 은둔의 국가로 만들었고 나라 발전의 기히를 놓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