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의 여러 사건들을 따라가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92회에서는 박정희 정권 시절 권력의 핵심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중앙정보부 수장이었던 김형욱 실종사건과 그 비화를 다뤘다. 김형욱 실종사건은 유신정권 말기였던 1979년 10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전직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홀로 파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돌연 종적을 감췄다. 이후 그의 생사를 아는 이는 없었다. 그의 실종은 긴 세월 미스터리로 남았고 여러 추측들이 남 무했다. 긴 세월이 흘러 김형욱은 법원의 사망선고가 내려졌고 법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실종 과정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2000년대 초반 국정원의 과거사 위원회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
현대사의 장면들을 다시 살피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91회에서는 1979년 8월 발생한 YH 무역 사건의 과정과 그 의미를 다뤘다. YH 무역 사건은 당시 대표적 가발 수출 기업이었던 YH 무역 187명의 노조원들이 신민당사에서 회사의 일방적 폐업과 불합리한 처우 등에 항의하던 농성장을 경찰이 급습해 이들을 연행하고 그 과정에서 노조 간부였던 김경숙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유신정권에 대한 야당과 국민들의 강한 저항을 불러왔고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 제명, 부마 민주화 항쟁, 10.26을 거치며 유신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사건의 과정은 이랬다. 한때 무역 관련 공무원이었던 장용호가 설립한 YH 무역은 작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1960년대와 70년대 대표적인 수출..
역사 예능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65회에서는 1970년대 유신 체제의 몰락 과정을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프로그램 시작은 여의도 공원이었다. 여의도 공원은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그 용도와 명칭이 변했다. 일제시대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여의도에 비행장을 설치했다. 해방 후에도 여의도는 공항으로 사용되었고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환하는 비행기가 착륙한 곳이 여의도공항이었다. 이후 여의도 공항은 5.16 쿠데타를 겨치면서 5.16광장으로 면모하여 국가의 중요 행사가 열리는 장소가 됐다. 장년층들이라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넓은 광장에서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며 즐겼던 기억이 있다. 이후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는 1981년 국풍 81이라는 국가 주도의 관제 축제..
대한민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내수 시장만으로는 성장을 대신할 수 없고 무역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수출은 경제 성장의 중요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매월, 매 분기 경제 관련 뉴스에서 수출 실적과 그에 부수되는 무역수지, 경상수지 흑자와 적자 관련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더 절실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수출 증대는 국가 생존을 위해 작게는 정권의 생존을 위해 절실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반공과 경제성장을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았다. 전후 세계 최빈국 하나였던 대한민국에서 경제성장은 꼬 필요한 과제이기도 했다. 군사정권은 경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경제발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다. 그 한편..
고려 무신정권기를 다루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 65회에서는 이 기간 있었던 고려와 몽골과의 전쟁의 과정과 삼별초의 항쟁을 되짚어 보았다. 고려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이 폭발한 무신의 난 이후 고려는 100년간의 무신정권기를 맞이했다. 이 기간 고려의 국가 운영 시스템을 붕괴되고 백성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시기 세계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몽골의 대규모 침입으로 국가적 위기가 커졌다. 당시 집권층인 무신 세력은 그들의 권력 다툼에만 몰두했고 권력 유지가 중요했다. 국가적 위기에 대한 대응도 부실했다.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으로 이어지는 무신집권기를 끝내고 등장한 최씨 정권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
고려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로 그 의미가 상당하다. 그 이전 통일신라 시대가 있었지만,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이 지도층에 있었던 발해의 존재는 통일 신라시대를 통일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시대로 구분하게 하고 있다. 통일신라의 민족 통일은 완전하지 않았다. 이후 통일신라가 긴 세월이 흐른 후 후고구려, 후백제, 신라로 다시 갈라지는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도 이를 설명해 준다. 다시 분열된 나라를 통일한 고려는 이후 거란에 멸망한 발해의 유민들까지 포함하여 민족 통합을 이뤘다. 이후 고려는 지방호족세력들의 힘을 억제하고 그 과정에서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했다. 거란과 여진의 침입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이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나라의 더 단단히 했다. 이후 고려는 세계 여러 나라와 교류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