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시절의 사건 사고를 되짚어가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304회에는 1983년 10월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렸던 아웅산묘소 테러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장기간의 해외 순방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목적으로 실행되었지만, 전두환은 암살을 모면했다. 대신 고위 관료 17명이 목숨을 잃었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인명피해가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해외 순방 외교 중 테러 사건이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대통령 전두환은 1983년 10월 장기간 일정으로 인도와 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을 포함한 해외 순방을 했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와 큰 교류가 없었던 제 3세계 ..
1982년 3월 27일 이날은 우리 스포츠사에서 주목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프로스포츠 리그인 프로야구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은 프로야구 출범에 따른 기념식을 겸했고 프로야구 구단 선수들이 모두 참여했다. 큰 관심 속에 1982년 시작한 프로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역사 저널 그날 302회에서는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문화, 스포츠 정책을 재조명했다. 프로야구 출범에 대한 시도는 1970년대 이미 있었다. 재일 동포 사업가의 제안으로 논의가 있었지만, 실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프로 스포츠가 출범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고 여론의 관심도 크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1..
1970년대와 80년대 우리 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301회에서는 1980년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미명하에 초반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 인권유린의 사례였던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삼청교육대는 신군부의 권력 장악 움직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신군부는 계엄사령부의 권한은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선포했다. 그와 동시에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와 함께 국회를 폐쇄하고 유력 정치인들을 체포, 가택연금하는 등의 조치로 반대 세력을 손발을 묶었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중심된 신군부는 이를 통해 정치, 행정, 입법 기능을 모두 총괄하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다. 과거 유신독재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에 대..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9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발전과 연결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오랜 세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광주사태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었다. 당시 광주지역에서 폭동이 발생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있었다는 정도가 알려진 사건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촉진되고 군사정권이 그 막을 내린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당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에 저항한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재평가되었다. 또한, 유혈 충돌의 내용 역시 광주지역에 진입했던 계엄군에 의한 무차별적인 무력진압..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한 이후 정국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 체제 속 20년 가까이 절대 권력을 지켰던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의 부재로 인한 일이었다. 권력 공백기였지만, 한편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도 가득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최규하는 긴급조치를 해제했다. 이를 통해 가택연금 등으로 정치 활동이 불가능했던 김영삼, 김대중 등 야권 지도자들이 정치 일선에 복귀했고 투옥 중이던 민주화운동 인사들도 풀려났다. 최규하 대통령은 1년 내에 개헌과 함께 민주주의 선거를 통한 차기 정부 이양을 약속했다. 멈췄던 민주주의 시계가 다시 작동했다.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서울의 봄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
1979년 10월 26일은 또 다른 10년인 1980년을 앞둔 시점이었거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날이었다. 그날 청와대 인근 궁정동이 안가에서 수차례 총성이 있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사상자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최측근 인사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10. 26 사태로도 불리는 그 사건으로 1970년대 우리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지배했던 유신 체제가 막을 내렸다. 이로써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고 3선 개헌과 유신헌법 선포로 종신집권을 길을 갔던 박정희 대통령은 허무하게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97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부른 1979년 10월 26일 그날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