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소 냉전시대 두 나라는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을 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국지전에 개입하기도 했고 세력 확산을 위해 정치, 경제적인 움직임을 활발히 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강하게 대립을 했다. 그 사이에서 세계 각국은 두 강대국 중 선택을 강요받았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눠 함께 대립각을 세웠다. 우리나라 역시 남북이 냉전시대의 최 전선에서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 대치하는 냉전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주도하는 또 다른 기관들이 있었다. 미국의 CIA, 소련의 KGB로 대표되는 첩보, 정보기관이었다. 양국의 정보기관은 자국은 물론이고 대외에서 각종 첩보활동을 했다. 물론, 이들의 기능에는..
우리 근. 현대사의 암흑기였던 일제 강점기는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어 8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아픈 흔적이 우리 삶 곳곳에 남아있다. 일제의 잔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고 그 시대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도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역사의 가해자인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일 간의 역사 인식에 대한 차이는 국가 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일제 강점기 민족을 배신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들에게 협력한 친일 매국세력들의 청산은 여전히 우리 역사의 숙제로 남아있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를 통해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정치적 상황과 이어진 냉전시대의 도래, 6.25 한국 전쟁 등을 거치..
제2차 세계대전 후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큰 줄거리는 경제발전, 산업화였다. '한강의 기적'이라 할 만큼 한국의 경제발전은 서구 선진국의 이뤄 놓은 성과를 불과 수십 년 사이 달성할 만큼 빠르고 눈부셨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 극심한 인적 물적 수탈을 겪었고 해방 이후 6.25 한국 전쟁이는 큰 비극을 맞이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 빈곤의 시간을 지나 한국은 1960년부터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고 이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은 이후 엄청난 경제 발전에 성공했다. 정부 주도 압축 성장의 결과였다. 잘 살아보려는 일념으로 가득했던 국민들의 강한 열망과 의지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쌓인 각종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한국은 선진국 진입 ..
고대와 근.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팽팽히 맞섰던 삼국시대가 먼저 떠오른다. 삼국은 경쟁과 협력 배신의 관계 속에서 함께 경쟁했다. 그 속에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독창적인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다. 삼국시대 문화, 예술의 유산은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융합되어 한층 더 독창적인 형태로 나타났고 우리 민족 문화, 예술의 원류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삼국시대의 역사 사료는 부족하고 그 기록의 상당 부분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사료에 근거해야 한다. 삼국시대 역사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한 김부식의 삼국사기 역시 중국의 사료를 상당 부분 참조했고 국 유사는 삼국 시대 역사의 또 다른 면을 살필 수 있지만, 불교와 신라 중심을 기술로 한계점이..
경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거품경제, 버블경제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다. 버블경제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의 가치가 실물경제의 성장 이상으로 지나치게 상승한 상황을 말한다. 버블경제의 심화는 자산 가치를 왜곡하고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실물경제의 발전에 연동하지 않는 자산 가치의 상승은 필연적으로 하락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경제 성장의 둔화시키고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하는 부작용이 수반된다. 이런 버블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일본을 든다. 일본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 경제의 큰 호황기를 보냈고 이 기간 일본은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으로 엄청난 무역 흑자를 지속했다. 그 시기 일본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 대국이 됐다. 넘치는 자금은 그들의 ..
의.식.주는 인간의 삶에서 있어 중요한 3요소다. 옷과 먹을 것과 집은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문제였다. 이 중 '의' 즉, 옷이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의미가 있다. 당연히 먹거리는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요소이고 집은 날씨의 변화와 천적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다. 선사시대를 기준으로 옷은 먹을 것과 집 이상의 가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석기 시대에도 돌로 만든 도구를 사용해 실을 뽑고 옷을 만들어 입었다. 선사시대인들에게도 의복을 만들어 입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이는 연약한 피부를 외부의 각종 위험 요소들로부터 보호하는 의미도 있고 자신을 가꾸고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복은 화려해지고 자신의 신분과 직위를 상징하는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