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 선포된 유신헌법을 기초로 한 유신시대는 1979년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이 시기 박정희 대통령은 행정, 입법, 사법을 모두 장악하는 절대 권력을 가졌고 사실상의 종신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유신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권은 유신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바탕으로 이를 힘으로 탄압하고 억압했다. 이는 9차례에 거쳐 발효된 대통령의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 권한으로 대표됐다. 역사저널 그날 286회에서는 1975년 발효된 긴급조치 9호를 중심으로 유신시대의 모습들을 살펴봤다. 1975년 5월 발효된 긴급조치 9회는 유신 체제에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도록 했다. 긴급조치에 근거한 처벌은 사법심사의..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8회에서는 1969년 9월 통과된 3선 개헌을 둘러싼 막전 막후 상황들을 그 주제로 했다. 3선 개헌은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연임을 명시한 헌법을 바꿔 3번째 대통령 출마의 길을 열기 위해 단행됐다. 하지만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일로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 개정안 통과와 국민투표를 거쳐야 했다.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박정희 대통령이 철권통치를 하던 시절이었다 해도 3선 개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상당한 상황에서 힘으로만 이를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3선 개헌안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이는 이후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며 장기 독재의 시작이 됐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유 있..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7회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남은 대형 토목공사였던 경부고속도로 공사와 관련한 당시 시대상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인 고속도로지만, 경부 고속도로가 가져온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중요한 배경은 1960년대와 7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함께 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며 경제발전에 가속도를 붙였다. 경제발전은 정권의 불안전한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여기에 당시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체제 속에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최 전방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발전이 체제 우위를 과시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
우리 현대사의 중요 사건들을 되짚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6회에서는 1968년 1월 21일 온 나라를 큰 충격에 빠뜨렸던 1.21 사태와 그 배경을 다시 살폈다. 이 사건은 북한 특수군 부대인 124군 부대의 정예요원 31명이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도보로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 인근 500미터까지 침투하여 우리 군경과 교전을 벌인 사건으로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31명의 북한 특수군 부대 요원 중 29명이 사살되었고 1명은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유일한 생포자인 김신조는 이후 전향하여 목사가 되었고 지금도 생존해 있다. 생포된 김신조는 당시 기자 회견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 그들의 침투 목적이었음을 거침없이 밝히며 국내외 언론의 큰 주목..
우리 삶에서 스포츠는 땔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에서 스포츠는 중요한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스포츠도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기 프로스포츠는 사람들의 여가 오락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어 막대한 돈이 오가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그 규모와 파생되는 금전적 이익이 상상을 초월한다. 인기 스포츠 선수는 이제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과 함께 부와 명예를 얻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삶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지만, 과거 스포츠는 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고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스포츠가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고 정치가 스포츠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나쁘다고 하지만, 스포츠와 정치는 밀접하게 관..
1995년 광복절에는 우리 현대사에 남을 사건이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조선의 본궁이었던 경복궁을 가로막고 서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가 시작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에 의한 강점기의 중요한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는 해방 이후에도 존속되어 중앙청이라 불리며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고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3년 길었던 군사독재의 시절을 끝내고 들어선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에 따라 광복 50주년이 되던 해 사라지게 됐다. 역사저널 그날 274회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에 관련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립은 1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는 일..